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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부지역의 대표적인 오름, 근처에는 4.3때 사라진 다랑쉬마을이 있었다.
▲ 다랑쉬오름 제주 동부지역의 대표적인 오름, 근처에는 4.3때 사라진 다랑쉬마을이 있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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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에 오를 때마다 입속에서 맴도는 노래가 있습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 녘의 땅
어둠 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다…….'

제주에 유채꽃이 들어온 것은 60년대라고 하니, 1948년 제주 4.3항쟁을 연상시키는 노랫말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오류가 노랫말의 상징성을 감소시키지 않는 것을 보면 제주의 노란 유채꽃에 익숙해진 우리의 감성을 충분히 제주 4.3의 아픔으로 다가가게 하는 노랫말인 것 같습니다.

용눈이오름의 초입에서 바라본 부드러운 오름의 곡선
▲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의 초입에서 바라본 부드러운 오름의 곡선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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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부지역에는 오름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오름이 다랑쉬오름이요, 다랑쉬오름의 동남쪽에 있는 용눈이오름입니다. 다랑쉬오름 근처의 다랑쉬마을은 제주 4.3항쟁을 겪으면서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으니 제주동부지역의 오름에는 역사의 아픔이 깊게 새겨진 셈입니다. 완만한 오름은 말이나 소를 방목하기도 좋습니다. 몽골의 침략과 삼별초 항쟁 때에도 이 지역은 고난받는 땅이었을 것입니다. 권력을 쥔 자들 혹은 역사는 좌파 혹은 우파, 문신 혹은 무신 등으로 나누어 포장하고 평가하지만, 이 땅에 사는 민중들은 구구절절한 모진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용눈이오름 양지바른 곳에 있는 무덤들
▲ 용눈이오름 용눈이오름 양지바른 곳에 있는 무덤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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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양지바른 곳에는 무덤이 많습니다.
제주의 무덤은 오름뿐 아니라 돌담으로 경계 지어진 밭에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망자들이 살아있는 후손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앙적인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고난의 땅일수록 섬기는 신이 많다고 합니다. 미개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살기가 퍽퍽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라도 뭔가를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힘든 삶, 그 속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신들의 이름을 미개인들의 혹은 저급한 미신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면 민중들의 깊은 아픔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제법 돌담이 잘 쳐진 무덤에는 신이 드나드는 문(신문 神門)이 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신인데 그 낮은 돌담 하나 넘지 못할까 싶지만, 돌담 넘는 수고를 덜면서까지 복을 비는 그 마음이 얼마나 구구절절한 것인지 와닿습니다.

오름마다 우거진 억새들
▲ 무덤 돌담과 우거진 억새 오름마다 우거진 억새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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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오름마다 억새가 우거졌습니다.
본래 자연적인 제주의 오름은 나무가 없는 초지였다고 합니다. 주로 억새 같은 것들이 오름을 감싸고 있었겠지요.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면 마을을 지키고자 오름에 올라 적들의 동태를 살폈을 것입니다. 몸 숨길 곳이라고는 억새 우거진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적의 목표물이 되어 억새 우거진 곳에서 죽어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피에 젖은 유채꽃'이라기보다는 '피에 젖은 억새풀'이 역사적인 정황으로는 더 적합한 표현이겠지요. 피에 물든 제주 오름의 억새의 빛깔, 그것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 같습니다. 작은 억새줄기마다 죽어간 원혼의 붉은 피가 맺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억새의 줄기도 그리 날카로워 살을 베어 붉은 피를 내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름과 나목들
▲ 제주중산간 오름과 나목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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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그냥 아름다운 풍광만 바라보면 한없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 어느 곳, 한구석도 아프지 않은 곳 없습니다. 그 아픔과 아름다운 풍광이 함께 들어오면 '미치도록 아름다운'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왜, 제주에 미치고, 바람에 미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주의 억새와 하늘
▲ 억새와 하늘 제주의 억새와 하늘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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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제주도라도 추위가 예외가 아니었나 봅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을 보낸 억새들의 빛깔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습니다. 깊은 고난이 그들을 더 부드럽게 한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깊은 고난을 이겨낸 만큼 사람도 부드러워집니다. 이제 곧, 봄이 오면 저 억새들 쓰러져 흙으로 돌아가고 푸릇푸릇 연록의 부드러운 억새들이 제주의 오름을 물들여갈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초록 물 맘껏 먹은 보리싹과 검은 돌담과 노란 유채도 한바탕 잔치를 벌일 것입니다. 그 따스한 어느 봄날 즈음에 그곳에 서 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제주도,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억새, #4.3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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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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