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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제일 높은 산 정상에서 보는 경치
 태국에서 제일 높은 산 정상에서 보는 경치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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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북부는 산악지대다. 오늘은 타일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가기로 했다. 도이 인타논(Doi Inthanon)라는 곳이다. 산 높이가 2565m라고 하니 백두산(2744m)보다 조금 낮은 산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을 호텔에서 얻은 관광지도 하나 달랑 들고, 자그마한 오토바이에 아내를 태우고 길을 떠난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치앙마이에서 100킬로 정도 떨어졌다는 것뿐이다. 주유소에 들려 휘발유를 가득 채운다.

도시를 벗어나니 곧게 뻗은 도로가 나온다. 오토바이로 장거리 여행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나는 조심스럽게 오토바이를 운전한다. 도로가 붐비지는 않지만, 우리를 추월하며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는 엄청나다. 아마도 120킬로 이상 속도로 달리는 것 같다. 가끔 지나가는 트럭이 엄청난 속도로 옆을 지날 때에는 목숨의 위험마저 느낀다. 운전 조심하라는 포스터가 중간 중간에 설치되어 있지만 속도 제한 표시는 보이지 않는다.

1시간 이상 털털거리며 달려 국립공원 쪽으로 들어서는 곁길로 들어선다. 길가에 있는 식당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잠시 쉰다. 국립공원에는 폭포가 여러 개 있다. 식당 주인아저씨에게 어느 폭포가 좋으냐고 물으니 매야폭포(Maeya water fall)가 가장 좋으리라고 일러준다.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난 듯, 이런저런 정보를 준다. 심지어는 묻지도 않았는데 화장실이 뒤쪽에 있으니 이용하고 가라는 친절도 잊지 않는다. 도시에서 좀 떨어져서일까? 정이 넘친다.

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조금 떨어져 있기에 들리지 않을 생각을 했던 매야폭포를 찾아 떠난다. 시골길이다. 자동차도 드물게 다니는 한적한 도로를 달려 폭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태국 사람보다 10배 이상의 입장료를 외국인에게 요구한다. 다행인 것은 이곳에서 파는 입장권은 국립공원 입장권이기 때문에 다른 국립공원에 갈 때에 표를 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좁은 골짜기를 천천히 걸어 폭포를 향한다. 오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 피곤함이 상쾌한 숲속 향기와 함께 스러진다. 물소리와 함께 폭포가 보인다. 아침에 깨끗이 빗질을 해 놓은 길을 따라 폭포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폭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 웅장하다. 지금은 건기라 물이 많지 않을 터인데도 많은 양의 물이 웅장하게 떨어지고 있다. 내가 이제껏 가 본 폭포 중에 가장 멋있는 폭포가 아닌가 한다. (참고로 나는 나이야가라 폭포를 비롯해 유명하다는 폭포는 사진으로만 봤다). 사진기에 폭포를 열심히 담는다. 옆에는 전문 사진작가처럼 보이는 젊은이가 망원렌즈로 폭포를 다양한 각도에서 찍고 있다.

건기임에도 물이 많이 흐르고 있는 매야폭포(Maeya Waterfall)
 건기임에도 물이 많이 흐르고 있는 매야폭포(Maeya Water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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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입구에서 먹을 것을 파는 가게.
 폭포 입구에서 먹을 것을 파는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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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돌아가는 오솔길 옆에 제법 큰 나무가 오색 천으로 치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골에 큰 나무나 돌을 서낭신으로 모시는 풍습이 생각난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지하고 그 무엇에 기대는 모습이 아름답다. 사람들이 계곡에 앉아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니 옛날 도봉산 골짜기가 생각난다. 주차장에 내려와서 산골 아가씨가 파는 군고구마와 옥수수로 점심을 때우고 제일 높은 산을 향해 길을 떠난다.

중간에 나오는 폭포들을 무시하고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유명한 절도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있으면 들리기로 하고 일단 정상을 향해 오토바이를 달린다. 계속 올라가는 길이다. 이런 식으로 2565m를 올라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오토바이가 힘이 없어 언덕을 올라가며 앓는 소리를 낸다.

정상 가까이 가니 웅장한 절이 보인다. 2000m를 넘는 산이라 그런지 무척 춥다. 안에 티셔츠 하나 더 껴입은 것밖에 없는 나는 살을 떼어내는 듯한 차가운 바람에 진저리를 치며 오토바이를 운전한다. 준비 없이 길 떠난 것을 후회하지만, 너무 늦었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경사는 더욱 심해진다. 1단으로 간신히, 사람 걷는 속도 이상의 속력을 내지 못하며 오토바이는 산등성을 오른다. 가끔 아내는 내려서 걸어야 할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오토바이가 과열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휘발유가 다 떨어졌다는 신호까지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인간이 할 수 없는 막판에 이르면 신을 찾는다고 했던가? 그러나 휘발유 떨어졌다고 신을 찾기는 그렇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직 정상은 아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웅장한 절이 있다. 태국에는 산이 조금만 높든가 경치가 좋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예외 없이 절이 있다. 주차장에 공짜로 태워준다는 차가 보인다. 정상까지 태워주는 자동차라 생각하고 차에 올랐다. 그러나 이 차는 절에 가는 관광객을 태우려고 주차한 차다. 절에서 더 많은 입장료 수입을 올릴 목적으로 주차장에 차까지 대기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차다. 교회를 비즈니스라고 비꼬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절도 그러한 비꼼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단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목표다. 절은 돌아갈 때 들려도 된다. 정상에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상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절에 온 것이라는 말에 실망감이 그만큼 더 크다. 이제 5킬로 정도만 더 가면 된다고 한다. 경사는 더욱 심하다. 휘발유는 거의 다 떨어지고 추위는 엄습하고, 정말 사서하는 고생치고는 너무하다. 언덕길을 간신히 오르니 차들이 주차해 있다. 정상이다. 오토바이를 세운다.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다.

커피숍이 있다. 정상에 왔다는 기쁨보다는 따뜻한 커피가 더욱 그리워진다. 양지바른 곳을 찾아 따끈한 커피를 마시니 조금 추위는 가라앉지만, 아직도 몸은 떨린다. 정상에는 각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빈다. 그러나 관광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대형 버스가 이곳까지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관광객으로는 중국 사람이 가장 많다. 중국 경제가 성장했음을 느낀다. 일본인, 한국인에 이어 지금은 중국인이 세계를 누비며 관광을 하고 있다.

커피숍 테이블 바로 앞에 나뭇가지에 바나나 몇 개 꽂혀 있다. 산새들이 바로 코앞에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바나나를 먹는다. 물론 사진기 셔터를 들이대는 것은 상식이다.
어느 정도 몸을 녹이고 숲속으로 난 조그만 길을 걷는다. 짧은 숲속 길이지만 깨끗하고 깊은 산속에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정상 좋은 위치에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중성자 연구소(Princes Sirindhorn Neuntron Monitor) 건물이 들어서 있다. 중성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지리적으로 이곳이 좋은 모양이다.

산 정상에거 사람이 갖다 놓은 바나나를 맛있게 먹고 있는 새
 산 정상에거 사람이 갖다 놓은 바나나를 맛있게 먹고 있는 새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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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도 돌아보고 아내를 모델로 사진도 찍고 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이제는 돌아갈 걱정이 앞선다. 정상에 있는 여행 안내소에 휘발유 넣을 수 있는 장소를 물으니 13킬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 한다. 내려가는 길이라 휘발유를 많이 먹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앞선다. 특히, 오늘 저녁은 크리스마스 이브라 이곳에 놀러 온 직장 동료와 저녁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7시까지는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

서둘러 내려간다. 정상에 있는 유명하다는 절과 내려가는 길에 들릴 생각을 했던 폭포도 포기하고 올라올 때와 달리 급경사를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전망대 (view point)라는 곳이 있다. 잠시 오토바이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본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 위에서 눈 아래 펼쳐지는 다른 산들이 굽어본다. 사진 몇 장 찍고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다시 추워진다. 조금 더 내려가니 기념품과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있다. 혹시나 해서 들려 휘발유 파느냐고 물으니 11킬로를 더 내려가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온 거리가 2킬로인 셈이다.

다시 내려간다. 조금 더 내려가니 올라올 때 보았던 제법 규모가 큰 장터가 있다. 다시 오토바이를 세우고 기름 넣을 곳을 묻는다. 1킬로미터만 더 내려가면 된다고 한다. 한국 시골에서 예전에 길을 물으면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한 참 더 간 후에 길을 물어도 조금만 더 가야 한다고 한다. '조금'이라는 개념이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이 달라서 겪는 에피소드다. 옛날 한국 시골에서 길을 안내하던 것에 비교하면 이 동네 사람들은 아주 정확하게 킬로미터까지 이야기하며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아마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일 것이다. 

장터에는 이 동네에서 나오는 특산물로 넘쳐난다. 싱싱한 야채가 즐비하고 딸기 그리고 한국에서 보던 먹음직스러운 곶감이 있다. 아내는 야채들이 싸고 싱싱하다고 하면서 우리가 이곳에 산다면 야채를 많이 사고 싶다며 아쉬워한다. 우리는 곶감 한 봉지 사들고 휘발유를 넣는 곳으로 떠난다.

산 속 장터에 있는 공중전화부스에서 노는 아이들
 산 속 장터에 있는 공중전화부스에서 노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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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준 대로 정확하게 1킬로를 더 내려가 왼쪽으로 난 길로 꺾으니 주유소가 있다. 동네 구멍가게 옆에 있는 주유소이긴 해도 주유 펌프가 두 개나 있다. 특이한 것은 돈을 음료수 자판기 같은 곳에 넣게 되어 있다. 우리를 보고 온 주인(?)은 우리에게 자동 기계를 가리키며 돈을 넣으라고 한다. 100바트(3500원 정도)를 넣으니 주유소 기계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100바트 숫자가 점점 내려가며 휘발유를 넣는다. 최첨단 주유 펌프를 시골 산 속에서 구경한 셈이다. 오토바이에 휘발유가 가득하다.

다시 치앙마이로 오토바이를 재촉한다. 약속 시각에 맞추어 호텔에 가려고 속도를 낸다. 도로에는 서서히 어둠이 자리 잡는다. 자그마한 오토바이로 60-70킬로미터의 속도를 내며 밤 도로를 질주한다. 위험한 운전이다. 그러나 다른 태국 사람들도 오토바이로 나와 같은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 호텔 로비에서 사람을 만나 식당으로 향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지만 서양 사람이 찾는 식당을 제외하고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오늘 오토바이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아니면 아직도 나에게 젊음이 남아 있어서일까? 가끔씩 무모한 짓을 아직도 하며 세상을 살고 있다. 

산 정상에서 본 아름다운 꽃
 산 정상에서 본 아름다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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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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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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