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40년 전의 일이다.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분신자살한 청년, 전태일. 그의 외침 때문일까. 이후 노동 환경은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공장'을 위험하고 부정적인 공간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대학 졸업자에게 생산공장은 3D의 기피하고 싶은 공간이 된다. 헉? 3D? 입체영상이 아니라 '위험하고(Dangerous), 더럽고(Dirty), 어려운(Difficult)' 생산현장을 말한다.

 유학비용 마련을 위해 창원공단에서 일하는 김지혜씨.
유학비용 마련을 위해 창원공단에서 일하는 김지혜씨. ⓒ 김지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공장을 찾아가 매일 땀 흘리며 노동의 참가치를 맛보고 있는 대학생이 있다. 마산대 치위생학 전공의 김지혜(22)씨. 그는 지금 경남 창원의 창원수출단지에 위치한 노키아 공장에서 일한다.

"저는 캐나다에서 치위생사로 활동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서 스스로 공장에 취직했어요."

공장에서 그의 업무는 불량 휴대폰을 찾아 바로 고치는 것. "제가 학교에서 사용하던 치위생 장비랑 비슷해서 처음부터 적응을 쉽게 했어요."

공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역시 식사시간이죠. 사내 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는데 학교 급식보다 훨씬 좋아요. "

공장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깨어졌다. "제 또래라면 누구나 대학에 진학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막상 공장에는 그렇지 못한 또래도 많았죠. 그때문에 처음에는 무척 서먹서먹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오히려 제가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학교를 더 오래 다녔다고 세상을 더 아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는 얘기였다.

기계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사실과 많이 달랐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히려 일 하면서도 동료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심지어 야간 근무할 때에는 노래를 듣고 부르며 작업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답했다. "그래야 능률이 오르거든요."

그러나 힘든 일도 많았다. 매주 주간과 야간을 돌아가면서 근무하는데 교대하는 날이면 너무 피곤해 집에 가 푹 쓰러졌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러다 보니 공장에서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비록 단순 피로 때문이었지만 그는 첫 월급 중 30만 원의 거금을 자신의 병원비로 사용해야 했다.

숙련공이 아니다 보니 실수도 많았다. "휴대폰은 수출하는 나라의 언어(키맷)를 지판에 깔아야 하는데 다른 나라 언어와 조립해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 보내야 할 휴대폰이었는데 그만 아랍어 문자를 조립했다는 것이었다.

김씨의 좌우명은 '당당하게 살자'. 그의 좌우명처럼 그는 생산공장의 거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덕택에 그는 캐나다로 떠날 돈을 충분히 모았다고 했다. 그의 당당한 세상 도전이 또 다시 기대된다.


#김지혜#치위생사#캐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