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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6진으로 소말리아 해역에서 작전중인 해군 '최영함'
 청해부대 6진으로 소말리아 해역에서 작전중인 해군 '최영함'
ⓒ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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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해군통역장교로 군복무를 했다. 그 시절 동료들과 농담 삼아 주고받았던 질문이 있었다. "과연 이순신 제독 같은 분을 사령관으로 모신다면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동료들의 답변은 "분명히 많이 힘들 것"이었다.

군 생활을 하던 당시 동료들은 끊임없는 점검과 훈련, 전술연구를 실시하던 이순신 제독이 사령관이라면 군 생활이 몇 배는 바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순신 제독처럼 군의 본분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령관이 있다면 보람 있게 따를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들도 덧붙였다.

옥포해전 후 적의 수급을 확보하여 전공을 임금께 알리기에 급급했던 원균과 달리 이순신은 장졸들에게 항상 이렇게 당부했다.

"수급에 신경 쓰면 목전의 싸움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대들의 공은 내가 장계에 낱낱이 적어 올릴 테니 오직 싸움의 승리에만 전력하라."(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제10권 참조)

이는 군의 본분에 가장 충실하고자 했던 이순신 군인정신의 핵심이다.

싸움의 승리에만 전력하고 그 외의 정치적 판단과 공로의식의 허위를 배격하는 자세. 이 자세야말로 전술적 판단에 맞지 않는 조정의 출전명령에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물론 이로 인해 이순신은 백의종군까지 하게 됐다. 그렇지만 오로지 전술적 판단으로 싸움의 승리에만 '올인'하는 것이야말로 군인이라면 반드시 배워야할 기본자세 중의 기본자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언론에 공개된 군 세부작전... 아찔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청해부대원들은 이 기본자세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주일 가까이 끈질기게 해적을 쫓아 납치된 우리 선원들을 무사히 구조했다. 평소 훈련과 준비를 하지 않은 부대라면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입체적으로 펼쳐진 미 해군과의 연합작전도 청해부대의 작전준비태세가 높은 수준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싸움의 승리와 임무완수에 모든 걸 거는 우리 군의 자세를 보여준 쾌거였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한국에 작전성공 소식이 전해진 지난 금요일(1월21일) 이후 언론보도에 터져 나오던 군 세부작전 상황을 듣고 있자니 해군장교 출신으로서 아찔할 정도였다.

필자는 청해부대가 창설(2009년 3월)되기 전에 해군통역관 자격으로 대(對)해적작전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이라크 자이툰부대의 군수물자 운반선을 호송하는 대해적작전이 청해부대가 창설되기 전에 이미 있었다.

군 생활 중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작전이 바로 그 작전이었다. 당시 인도양과 말라카해협을 항해하며 매일 해적진압훈련을 했다.

이번 교신상황 공개와 자세한 전술 브리핑을 보면서 새록새록 그 때 기억이 떠올랐다. 경험상 보안사항으로 통제해야 할 내용들이었다. 군에서 작전 세부사항을 공개하면서까지 승리의 공을 치하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승리소식이 전해진 주말에 서해에서 이루어진 언론용 작전상황 재연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주말에 UDT 대원들까지 동원한 해상 이벤트가 과연 다음 작전 시 청해 부대원들의 무사안전과 임무성공을 바라는 군 수뇌부의 결정이었는지 의문이었다.

작전승리 '공'은 한 명이 독차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3월 30일 오후 해군 초계한 '천안함' 침몰사고 현장인 백령도 인근에서 작전중인 '독도함'에 승선해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3월 30일 오후 해군 초계한 '천안함' 침몰사고 현장인 백령도 인근에서 작전중인 '독도함'에 승선해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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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브리핑에서는 보안상 자세한 교신상황은 공개할 수 없다며 버티던 군 당국이었다. 그런데 칭찬받을 만한 이번 작전성공에 대해서는 군 당국이 자발적으로 작전 동영상까지 전면 공개했다. 먼 바다에서 고생한 부대원들의 차기 작전 보안을 심각히 저해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이 군 당국이 과연 같은 군 당국인지 헛갈렸다.

군에서 작전승리의 공은 그 누가 독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삼국지' 시대의 일기토(一騎討, 장수가 일대일로 싸우는 것)나 조폭 두목끼리의 '맞짱'도 양 진영의 기세와 팽팽한 심리전에 따라 그 승패가 좌우될 수 있다. 하물며 전후방이 없는 현대전이라면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해적과의 싸움은 먼 바다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싸움은 여기에 있는 우리 군 당국의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

무조건 '과'는 덮고 선택적으로 '공'을 부풀리고자 하는 안이한 정신으로는 어떤 싸움에서도 이기기 쉽지 않다. 군인이라면 헛된 공로의식이나 정치적 판단 없이 오로지 싸움의 승리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공과의 선택적 홍보에 대한 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군인이 정치적 판단을 하도록 강요하는 임진왜란 당시의 선조 같은 이들이 지금도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눈치와 세력을 살피며 진급과 일신의 안위만을 좇는 건 참된 군인의 자세가 아니다.

그건 정세를 이용해 사욕을 채우고자 했던 12·12 '올드보이'들의 후안무치한 정신일 뿐이다. 그 썩어빠진 정신은 이번 교전 중 사망해 소말리아로 보내지게 되는 일부 해적들과 함께 떠나보내는 것이 옳다. 청해부대의 끝없는 건승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아시아위클리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데만작전, #소말리아해적, #UDT, #청해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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