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날에만 볼 수 있는 특집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을 설레게 했던 특집이 있었다면 단연 MBC에서 준비한 <세시봉 콘서트>이었다.
이 콘서트는 대중음악계에 전설적인 발자취를 남겼던 조영남·송창식·윤형주·김세환의 이야기와 노래가 어울렸던 <놀러와> '세시봉 특집'의 연장선에 있다. 설 연휴에 맞춰 총 2부로 나뉘어 이틀간 방송이 됐던 만큼 다양한 이야기들과 많은 노래, 그리고 추억과 감동을 남겼다. 그렇다면 그들이 불렀던 그 많은 팝들과 가요들은 과연 어떤 곡들이었을까. 방영됐던 시간 순서대로 하나씩 짚어보았다.
[1부] '질베르트 베코'에서 시대의 표상 '김민기'까지첫 시작은 연 노래는 컨트리, 포크음악으로 유명한 미국의 듀오인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의 1960년 정규 음반인 'The Fabulous Style of the Everly Brothers'에 실린 'Let It Be Me(내 곁에 있어주오)'였다. 원곡은 프랑스의 가수·작곡가인 질베르트 베코(Gilbert Bécaud)가 1955년 'Je t'appartiens'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된 곡이었지만, 에벌리 브라더스를 거치며 어쿠스틱기타를 통해 감미롭게 부르는 것이 원형이 되어 버린 곡이다.
그 다음 불렸던 곡은 우리에게 CCR과 비치보이스(Beach Boys)의 곡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Cotton Fields(목화밭)'이다. 원곡은 전설적인 흑인 블루스·포크 뮤지션이자 실제 루이지애나 출신인 리드 벨리(Lead Belly)의 곡이이며 전체적으로 흥겨운 곡 분위기와는 달리, 흑인 남부 목화밭에서 고단한 노동을 강요받았던 당시 흑인들의 삶이 추억어린 어린 시절과 함께 감싸져있는 곡이기도 하다. 1969년 비치보이스의 음반인 '20/20'을 통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과거 송창식과 윤형주가 결성한 트윈폴리오의 '웨딩 케이크'는 알려진 대로 미국의 유명 여가수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가 1969년 발표한 컨트리곡인 'The Wedding Cake'를 번안한 곡이다. 실제가사는 결혼 후에 겪을 여러 현실적인 이야기들과 추억을 담담하게 읊는 이야기지만, 트윈폴리오의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그 누군가의 가슴 절절한 사랑노래로 탈바꿈했다.
이어지는 곡이었던 '하얀 손수건'은 세계적인 그리스의 여가수이자, 70년대 한국가요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바 있는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의 동명의 곡인 'Me T'Aspro Mou Mantili'의 번안곡이다. 아울러 세시봉의 막내 김세환에게 실질적인 명성을 얻게 해준 곡인 '옛 친구'는, 이후 이장희와 함께하며 선 굵은 '비'라는 곡과 아울러 윤형주가 작곡한 상큼한 멜로디의 '좋은걸 어떡해'와 비교되며 김세환의 목소리를 느끼기에 제격인 노래다.
반면 세시봉의 큰형님인 조영남이 불렀던 'Green, Green Grass of Home(고향의 푸른 잔디)'은 우리에겐 탐 존스(Tom Jones)의 곡으로 잘 알려진 곡이다. 컬리 풋먼(Curly Putman)에 의해 작곡되고, 1965년 미국의 컨트리 가수인 포터 와고너(Porter Wagoner)와 로큰롤의 전설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의 음반인 'Country Songs for City Folks'에 실렸으나, 영국의 탐 존스가 부르기 시작하며 더 알려진 명곡이다.
고향을 찾는 행복한 정경이 펼쳐지다가 후반부에 이 모든 것은 꿈이었으며, '간수와 슬픈 신부님의 얼굴'이라는 가사에서 화자가 곧 사형을 당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끝내는 상당히 처절한 곡이기도 하다. 물론 조영남은 이날 방송에서 화자가 '고향을 그리며 출소를 기다리고 있다'는 순화된 뉘앙스의 내레이션으로 대체했다.
윤형주가 세시봉의 '대학생의 밤'에서 처음 불렀다는 곡이라고 밝힌 'Lost Love(잃어버린 사랑)'는,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였던 바비 다린(Bobby Darin)이 1958년 'Queen of the Hop'의 플립사이드에 실은 곡이다. 이 곡은 1968년 트윈폴리오에 의해 국내에서 더욱 유명해진 곡인데, 방송에서 보았듯 송창식과 윤형주를 묶어준 결정적인 노래이기도 하다. 또한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송창식이 함께하며 불렀던 첫 곡인 '한번쯤'과 뒤이어 프러포즈 곡으로 생각했다던 '맨 처음 고백'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우리 가요사의 명곡이다.
뒤이어 '작업송'을 불러달라던 MC들의 성화에 조영남이 부른 'Save the Last Dance for Me(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곡은, 우리에겐 'Stand By Me'라는 곡으로 더 유명한 벤 이 킹(Ben E. King)이 함께했던 '드리프터스(The Drifters)'가 1960년 처음 녹음한 노래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 곡은, 62년 동명의 정규음반에 실리면서 세계적으로 드리프터스가 알려진 계기를 만들어준 곡이기도 하다.
트윈폴리오 결성 이전에 듀오가 아닌 트리오로 시작하려 할 때에 멤버인 이익균이 함께 뭉쳐 불렀던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성자의 행진)'은 우리에게 초창기 뉴올리언스 재즈를 이끌었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부른 버전으로 유명한 곡이다. 너무나 즐거운 리듬의 행진곡이지만, 실제는 뉴올리언스 지역의 장례식 때 울리던 곡이기도 하며, 성도들이 행진할 때 그 무리에 들어가길 원한다는 종교적 의미가 깊게 베인 성가다.
그리고 세시봉 1부의 마지막은 '시대의 표상'인 김민기의 '아침 이슬'을 게스트인 양희은과 함께 부르며 막을 내렸다. '아침 이슬'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꺼낼 필요가 없기에 그냥 생략하는 것이 옳을 듯싶고, 다만 세시봉 멤버들과 양희은이 한자리에 모여 이 노래를 부르는 그 장면 자체는 역사적인 만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부] 청춘의 표상 '클리프 리처드',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2부의 첫 시작을 알렸던 곡은 87년 발표된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였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방송된 EBS <스페이스 공감> 송창식편에서 당시 함춘호와 함께한 버전을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이 곡이야 말로 세대를 뛰어넘는 '흥'이 담긴 곡이라 생각했다. <세시봉 콘서트>에서는 윤도현과 장기하가 함께하며 노래를 했는데, 사실 이 곡은 그 누가 불러도 송창식을 뛰어넘기는 어렵다는 걸 들을수록 확신하게 되는 무대이기도 했다. 아울러 과거 그가 한국의 존 포거티(John Fogerty)였다는 수식어는 오히려 존 포거티에게 영광이었다는 생각도 동시에 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함께해준 후배들에게 가스펠, CCM으로 널리 불려지는 'Do Lord, Remember Me'를 아카펠라로 부른 세시봉 멤버들은, 이후에 송창식과 조영남이 함께 부르는 'Detroit City(디트로이트 시티)'가 이어졌다. 1963년 미국의 컨트리 가수 바비 베어(Bobby Bare)가 부른 이 곡은, 대니 딜(Danny Dil)과 멜 티리스(Mel Tillis)가 만든 곡으로 역시 가족, 연인, 그리고 목화밭이 있는 고향을 공업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고향에 보낸 편지에는 디트로이트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썼지만, 실상은 보잘것없는 자동차 정비공이라는 시대상을 반영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후에 윤형주가 선창한 바비 에드워드(Bobby Edwards)가 1961년 발표한 'You're the Reason(당신 때문에)', 같은 해에 발표된 컨트리 가수 돈 깁슨(Don Gibson)의 'Sea of Heartbreak(상심의 바다)', 역시 또 같은 해에 발표된 '청춘의 상징'과 같은 곡인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의 'The Young Ones(젊은이들)'을 세시봉 막내 김세환이 부르며 팝 메들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자그마치 30년 만에 무대에 등장한 이장희가 세시봉 친구들과 둘러앉아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부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1974년 최초 녹음된 원래의 조합으로는 처음 같이 무대에서 노래한다는 이장희의 고백만큼이나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장희가 쓴 세시봉 멤버들을 향한 러브레터 이후에, 김세환이 부른 '비'는 그동안 밝고 경쾌한 이미지의 김세환과는 상반되는 이장희 스타일임을 직감하는데, 특히 김세환과는 어울리지 않는 길고도 날카로운 기타사운드와 강한 드럼이 인상적인 곡이다. 또한 조영남에게 히트곡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이장희가 만든 곡인 '불꺼진 창'과 1973년 이장희 2집에 실린 '비의 나그네', 역시 같은 음반에 실린 '애인'을 윤형주와 송창식이 불러 보이며, 당시 번안곡이 대세였던 한국의 포크음악계에 자신의 자작곡으로 승부한 이장희의 놀라운 음악적 성과를 세시봉 멤버들이 대신해보였다. 뒤이어 배우 윤여정의 생일날 제일 처음 발표됐다는 '창밖에는 비 오고요'가 울리면서 이장희와 세시봉의 추억의 한 면은 방송을 본 모두에게 진한 추억과 감동을 선사했다.
이후 턱시도를 말끔하게 차려입고 등장한 세시봉 멤버들이 아카펠라로 처음 부른 미국의 민요 'Good Night Ladies(잘 자요, 아가씨들)' 이후에는 흥겹고 빠른 곡들을 이어나갔다. 그 첫 번째는 1956년 미국 초기 로커빌리, 로큰롤 뮤지션인 진 빈센트(Gene Vincent)와 그의 밴드인 블루캡스(Blue Caps)의 로큰롤 고전 'Be-Bop-A-Lula'가 울렸고, 두 번째 곡으로는 레이 찰스(Ray Charles)가 1959년 발표한 히트곡이자 소울의 효시와도 같은 곡인 'What'd I say?(뭐라고 말할까?)'가 이어졌다.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레이(Ray)>에 제이미 폭스(Jamie Foxx)가 영화 맨 처음에 노래하는 이 곡은, 실제 레이 찰스가 순간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노래인 만큼 굉장히 열정적이고 또한 관능적인 곡이다. 특히 백킹 보컬 레이레츠(The Raelettes)와 레이 찰스가 주고받던 부분은, 조영남의 리드와 관객들의 호응으로 대신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이어가며 색다른 맛을 선사했다. 그 후에는 '샘 더 샘 앤더 파라오스(Sam The Sham&The Pharaohs)'의 1965년 히트곡이자, 멤버인 도밍고 사무디오(Domingo Samudio)의 곡인 'Wooly Bully', 아울러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트위스트 붐을 일으켰던 곡인 처비 체커(Chubby Checker)의 1961년 발표곡 'Let's Twist Again(다시 트위스트를 춰요)'가 이어지며 화려한 메들리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세시봉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음악은 피지의 민요이자 호주의 포크밴드 시커스(The Seekers)가 불러 크게 히트했던 'Isa Lei'의 번안곡 '우리들의 이야기'가 장식했다. 피지에서도 이별할 때 불렸다던 이 노래는, 윤형주의 아름다운 가사가 덧입혀져 설 특집 <세시봉 콘서트>의 아련한 향수를 더욱 진하게 남기게 만들어 버리면서 막을 내리게 만들었다. 프로그램 말미에 세시봉 큰형님 조영남은 이들 멤버들을 만날때면 언제나 설레인다고 고백한 것처럼, 이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했던 이 멤버들을 보는 우리의 심정도 아마 영원히 그렇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을 남겨 둔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