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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이라 의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이라 의원.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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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제 이름이 '아라' 아니냐고 하는데…"  

이제 다문화가족 20만 명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생소하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말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선 다문화가족 출신으로는 처음 정계에 진출한 인물이 화제였다. 몽골 출신의 이주 여성으로서 경기도의회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라(34․한나라당)씨. 그의 등장은 환영 받을 만했고 실제로 환영받았지만 아직은 역시 우리에게 생경한 모습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에서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왔던 그가 당당히 '정치활동'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당선 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이라씨였다. 자연인으로 경험한 것과 정치인으로서 경험하고 느낀 점은 분명 다를 것이다. 도의회의 여성가족평생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해 온 그간의 소회와 품고 있는 그의 비전을 듣고자 분당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한국 사람에겐 '아라'가 더 익숙해서 그래요"라며 마침 그를 찾아온 한 방문객의 말을 뒤로 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라씨는 "상황이 이래서 미안해요, 남편이 척추 수술을 받아 간병을 하느라 그동안 외부활동을 자제 했어요"라는 말로 근황을 전했다. 그는 지난달 11일 청와대 초청으로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했던 것 외에는 '공식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뷰도 자제해 왔다고 하면서도 막상 질문을 던지자 또박또박 진중하게 답했다.

"팔십사? 에이티 사!"... 자연스럽게 다가온 한국

몽골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중국에서 1년 동안 유학까지 했던 그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였다.

"한국에 대해선 드라마, 아리랑 티비 방송을 통해 접하거나 한국을 다녀온 몽골 분들의 얘기를 듣는 게 전부였어요. 남편을 만나면서 한국에 가서 살아야 하나 고민했고 결심을 하게 됐어요."

몽골에서 여행업을 하던 남편을 당시 한국 남편을 두고 있던 친구 소개로 만나 결혼까지 했다는 이라씨. 초반엔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문화적인 장벽, 특히 술을 전혀 못하는 이라씨는 한국의 술 문화 때문에 처음에 고생을 많이 했었다. 한국 음식 만드는 게 서툴러서 명절 때면 설거지만 해야 했던 일도 유쾌하지 않았다고.

언어적인 문제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라씨는 "본래 성격이 활달하고 말 많이 하는 편인데 말을 못하니까 답답했어요. 그래서 외부 출입을 자제했죠"라고 당시 느낌을 말했다. 이후 서강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익히면서 친구들을 하나 둘 사귀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서서히 한국 사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과도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쓰며 대화했다는 그는 "대화에 대한 추억들이 많아요. 하도 섞어 쓰다 보니까 숫자를 말할 때 '팔 십 사'를 제가 '에이티 사'라고 해 웃음바다가 된 적도 있어요"라며 추억하기도 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과 상의한다는 이라씨는 멘토와도 같은 남편이 친정 부모님을 잘 모시는 모습에 한국을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어르신들을 모시는 생활방식은 배울 것이 많았어요, (그런 걸 보면) 한국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또 그러니까 그만큼 발전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덧붙여 "한국에서 피는 목련이나 개나리들, 그리고 모든 길가에 핀 흰색과 빨간색 철쭉들이 너무 예뻐요"라며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정치,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정치인으로 공적 활동을 하고 있기에 이라씨를 마냥 한국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귀화인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간의 정치 활동에 대해서도 분명 평가받고 이야기를 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라씨는 "몽골에 있을 땐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몽골은 땅은 큰데 인구는 적은 나라예요. 거기에 있을 땐 내 일만 하고 먹고 살면 되지 생각했죠"라고 정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이라씨는 2007년도 서울출입국사무소에 '결혼이민자 네트워크'가 생기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부회장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주민 가족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을 위한 온라인 카페도 맡아 운영해왔다. 그러던 와중에 성남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눈에 띄었고 마침 지방선거 관련해 다문화출신 인물을 추천해달란 한나라당의 요청에 공천후보로 추천받게 되었다.

"왜 한나라당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한나라당을 좋아하는 분도 있고 싫어하는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처음 제안을 한 곳이었고 다문화 관련해서도 관심 많고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이 있어요. 그래서 결심을 했죠."

비례대표로 당선된 후 6개월이라는 짧은 의정활동을 거치며 많은 점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는 이라씨가 본 한국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지방선거 이후 여소야대의 구도로 재편(112개 지역구 가운데 63.4%인 71곳이 민주당)된 경기도 의회는 서울시와 함께 단체장과의 마찰이 잦았던 곳 중 하나다. 개회 초부터 의장단 및 상임위원 등을 뽑는 원구성 과정에서 단상점거 등의 사태가 있었고 무상급식,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등 각종 현안 처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여·야간 충돌이 있었다.

이라씨는 지난해 9월 1일 4대강과 GTX 등과 관련한 특위 구성 당시 민주당과 의견충돌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점거했을 때 함께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경험에 대해 그는 "당황하긴 했죠. 한나라당에서 하자는 대로 따랐지만 그러는 것보단 서로 이야기 하고 화해하는 게 맞다고 봐요"라고 말하며 "몽골에선 (정치인들이) 가끔 서로 싸우는 모습을 TV에서 보긴 했지만 국회를 점거하는 일은 거의 보지 못했어요"라고 덧붙였다.

최근 경기도는 김문수 도지사와 의회가 (무상급식 예산안 관련) 대타협을 한 가운데 올해 다소 순탄한 과정이 예상되지만 서울시는 첨예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그는 "싸우고 난 뒤라도 국민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경기도 의회의 최근 모습처럼) 서로 협조하면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죠"라며 "국민의 편한 삶을 위해 국회의원이 존재하잖아요. 그러한 유권자를 위한 마음과 초심을 항상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젠 다문화시대 "다수가 소수를 보듬는 사회 돼야..."

"(다문화출신 중에서도)정치는 물론 다양한 사회활동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요."

2008년 15세 이상 남·여 천 명에게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구원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란 질문에 '사회적응 위한 한글과 문화 교육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31.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편견 없는 사회분위기 조성'과 '직업 훈련 및 취업알선'이 각각 27.8%와 19.1%로 그 뒤를 이었다.

강연 중인 이라 의원
 강연 중인 이라 의원
ⓒ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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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6개월 간 활동 중에서 다문화가족 관련 세미나,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많이 듣고 배우고 있다는 점을 자신의 주요 성과로 꼽았다. 이라씨는 우리나라 다문화가족 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론 "많이 나아진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듯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진짜 필요한 사업은 늘리거나 지속해야죠. 예를 들면 통번역 사업을 한다고 하면 며칠 동안 배우는 프로그램은 말이 안 되죠. 몇 달로 늘려서 해야 해요. 시간도 하루에 한 두 시간씩 며칠을 하기보단 일주일에 두 번 하더라도 6개월 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느냐…. 다문화가족 여성은 취업이 가장 문제예요. 경제활동을 하고 싶은데 그러면 아이를 봐줄 곳이 없다는 문제가 있죠. 이렇게 연결되는 문제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자격증 문제도 있는데 다문화 여성들이 실습은 잘하는데 필기는 언어 때문에 자꾸 시험에서 떨어져요. 운전면허처럼 다양한 자격증 필기시험들을 영어나 러시아,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도 볼 수 있게 돼야 해요."

홀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 사실에 대해 "부담스럽다"는 소회를 밝히면서도 진중하게 정치 문제, 정책 문제를 지적하던 그는 "지난 지방선거 때 '이주여성후보자 만들기' 운동이 있었는데 저 혼자밖에 되지 않았어요"라고 아쉬워하면서 "정치뿐만 아니라 각자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며 다문화가족 출신들의 활발한 사회 참여에 대한 강한 기대를 보였다.

이라씨는 "혼자서는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라고 하며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한민족'이라는 관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기까지 했다.

"한국 사회도 이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어요. 몽골이나 중국은 소수민족이란 게 있죠. 우리문화와 다른 게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받아들이기 쉽진 않겠지만 다수가 소수를 좀 보듬어 주는 면이 있어야 하는데... 물론 짧은 시간 내에 발전을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개개인이 (다문화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쉽게 변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다문화가족 분야만큼은 전국구 … 동료들도 인정한 열정

정치 경력도 전무했고 문화권도 다른 이라씨가 도의회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동료 의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의정일정을 소화중인 이라 의원
 의정일정을 소화중인 이라 의원
ⓒ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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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씨와 함께 여성가족평생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계일(한나라당․성남7선거구) 의원은 이라씨를 '공부 많이 하는 의원'이라고 추켜세웠다. 안 의원은 "(이라 의원은) 언어도 완벽하게 구사하고 책도 많이 읽는데다가 다문화관련해선 직접 찾아다니며 전국적인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며 그 능력을 인정했다. 조광주(민주당․성남3선거구) 의원 역시 "이라 의원이 다문화출신이라 다문화가족 문제만큼은 애정을 갖고 앞장서서 일하는 분"이라고 평했다.

미소짓고 있는 이라 의원
 미소짓고 있는 이라 의원
ⓒ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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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씨의 정계 진출을 적극 추천했던 문영보 성남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지원센터 초창기 시절에 홈페이지가 없었는데 이라씨가 직접 카페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했다"며 "다문화 관련 봉사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자기계발 하는 모습에 (공천후보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또한 문 센터장은 "도의원으로만 활동하는 줄 알았는데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면서 "많은 이민자 여성들에게 희망이 된 듯하다"며 정도를 걷고 소신껏 활동하란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편 이라 의원은 시각디자인 전공 과정 수료 후 사회복지과로 다시 편입 시험을 쳐서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올해는 활동하면서 사회복지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다"고 목표를 밝힌 그는 "물론 임기기간동안은 다문화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할 것"이라면서 "경기도에 다문화과가 생겼는데 다문화 관련 사업이 충분한 결과 보도록 예산문제에 신경 쓸 것이다. 또한 다문화 가정과 공무원 정치인들 사이 연결고리가 되어 의견이나 지식을 전할 수 있게 하겠다"며 의정활동 계획을 전했다.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서 이라씨는 "현재 다문화 관련한 전국적인 자료를 쉽게 찾기가 어렵다, 이후 자료와 관련 서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다문화종합정보센터를 세우고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이선필입니다.



태그:#다문화가족, #이라, #경기도의회, #김문수,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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