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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오늘(2월 4일)부터는 봄입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뒤에 맞이하는 봄이라 더 그리운 봄입니다. 그러나 '입춘'인데 아직도 지난 겨울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있습니다. 그래도 '볼 것 많은 봄'인데 봄의 전령들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나 봅니다. 그래도 서운해 할 수 없는 것은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웠다는 것을 아는 까닭입니다. 이제 겨우 며칠 한낮에나 영상의 기온을 찾았을 뿐인데 벌써 봄소식을 보려고 한다면 욕심일 것입니다.

 

그래도 보고 싶어 가까운 숲길을 서성거렸습니다. 아직은 동장군이 "봄소식은 어림없다!"고 하는 듯합니다. "아니, 봄!"이라고 동장군에게 보여주고 싶어 겨우내 봄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른 봄 피어나는 봄꽃들의 가지 몇 개를 취했습니다.

 

 

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 연분홍의 철쭉, 붉은 피보다 더 붉은 꽃을 피우는 명자나무가지, 겉으로 볼 때에는 별 볼일 없는 꽃눈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봄'을 보는 순간 '봄은 이미 왔구나!' 합니다. 입춘, 그냥 입춘이 아니라 정말 입춘이구나 싶습니다. 이제 겨우 산수유는 눈꽃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지만, 이내 활짝 꽃눈을 열면 노란 폭죽이 터지듯 산수유의 노란 꽃이 피어나는 봄날이 올 것입니다.

 

 

겨울눈은 겨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지난 봄에 생긴 것입니다. 여름에 부지런히 자라고, 겨울을 보낼 힘도 비축해 두고, 가을이면 잠시 자라는 것을 멈추었다가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잡니다. 그러다 봄이면 피어나는 것이지요. 지난봄과 여름과 가을의 기억을 되살리며 피어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추운 겨울도 눈비늘은 넉넉하게 맨 몸으로 그들이 품은 꽃을 지켰습니다. 겉보기에는 예쁘지도 않고 볼품이 없는 겨울눈, 그들이 있어 봄에 꽃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러합니다. 가장 밑바닥 인생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그들은 예쁘지도 않고 볼품이 없다고 천시하는 현상이 사회 곳곳에 만연합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를 자연을 통해서 봅니다.

 

 

겨울눈을 감싸고 있는 비늘이나 털이나 그 외에 겨울눈 속으로 바람이나 찬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여러 가지 장치들(송진 같은 것들)도 볼품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없었다면 봄에 피어나는 꽃도 연록의 새싹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레이첼 카슨이 말했던 '침묵의 봄'을 이미 우리가 맞이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그랬다면, 그것이 인류에게 마지막  겨울이었겠지요.

 

 

어떤 색깔의 꽃을 피우든지 꽃눈 속에 들어있는 색깔은 연록색입니다. 그러니까 '녹색'에서 모든 색이 시작된다고 봐도 되는 것이겠지요. 저 꽃눈 속에 들어있는 색깔은 연록의 색 한 가지뿐인데, 노란 산수유도 피어나고, 분홍철쭉도 피어나고, 붉은 명자도 피어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온통 노랗거나 분홍이거나 붉지만도 않습니다. 꽃술의 색깔도 암술과 수술이 다릅니다. 그 작은 꽃눈에 그 많은 것들을 죄다 담고 있으니 그야말로 꽃눈은 수납의 장인입니다. 그렇게 작은 공간에 그 많은 것들을 담고 있으려면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허세로 갖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이겠지요.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인간, 그들은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이번 겨울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다양한 기후변화와 유난히도 추웠던 한반도의 겨울도 결국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것이지요. 구제역이나 신종플루 같은 것도 물론 더 가지려는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에서 배워야 합니다. 자연이 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것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무줄기를 반으로 잘라보았습니다. 가느다란 줄기지만 물관부와 형성층과 체관부 등 갖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물론 더 세세하게 나눌 수도 있겠지만 나뭇가지의 중간에 보면 연록의 색깔이 선명한 곳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나무의 몸 구석에 물을 공급해주는 물관부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나무의 생명을 좌지우지 한다고 해도 좋은 곳이지요. 그곳의 색도 연록색입니다. 생명, 그 상징의 색이 연록의 색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 건강하애 나무 전체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그 부분에 해당하는 세대는 청소년들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나라는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라기에 좋은 나라인지요?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신음하는 아이들, 과연 이 나라의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 봄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잠시 덮어야겠습니다. 외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면 혹한의 겨울을 모두 잊고 꽃 피어나듯이 역사의 봄이 오면 또 그러하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올해는 무척이나 겨울이 추웠습니다. 그래도 봄은 옵니다. 역사도 반역의 역사인 듯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도 거꾸로 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입춘입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견(立春大吉 建陽多見)입니다.


태그:#입춘, #산수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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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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