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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 난생 처음 본 발가락 모양을 한 가지 열매.
 산속에서 난생 처음 본 발가락 모양을 한 가지 열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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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는 오토바이가 아니라 작긴 하지만 자동차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간단한 짐을 자동차에 싣고 길을 떠난다. 태국에는 '치앙'이라는 이름이 많다. 지난 사흘간 묵었던 도시 이름도 '치앙마이(Chiang Mai)'고 우리가 가는 목적지도 '치앙라이(Chiang Rai)'다. '치앙(Chiang)'이라는 단어에 특별한 뜻이 있을 것이다. 게으른 나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가는 길에 관광코스의 하나인 온천이 있기에 온천을 향해 자동차를 달린다. 오토바이보다는 편해도 자동차로 낯선 시내를 운전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특히 오토바이가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며 자동차 사이를 누비고 다니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사실 나도 어제까지 오토바이로 자동차 사이를 누비고 다녔던 것을 잊고 투덜거린다. 인간은 자신을 중심으로 남을 평가하는 동물인가 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자기중심으로 상대편을 가장 많이 평가하는 정치가들이 '역지사지'라는 말을 즐겨 쓴다. 오토바이를 보고 투덜거리는 나도 정치가가 될 소질이 있는 것 같아 쓴웃음이 나온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관광버스들이 서 있는 곳이 있어 우리도 차를 멈추었다. 종이우산을 만드는 곳이다. 종이우산을 생각하면 일본의 공예품만 생각하던 내 생각을 뒤엎는 곳이다. 태국에도 각가지 색으로 치장한 종이로 만든 우산이 많다. 우산 만드는 곳에는 가지각색의 현란한 그림으로 장식한 우산들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우산살 하나하나에 손으로 풀을 부치며 정성 들여 그림을 그려 넣는 등 하나의 우산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비 혹은 태양을 가리기 위한 우산이 아닌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아름답게 만든 우산이 전시되어 있다.
 아름답게 만든 우산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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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천을 향해 떠난다. 좁은 길을 따라 찾아온 온천 입구에 있는 주차장은 관광버스를 비롯해 많은 자동차로 가득하다. 간신히 한 자리 찾아 주차하고 온천장으로 들어선다. 온천장이기에 온천욕을 할 곳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수영복을 가지고 들어갔으나 수영장이나 목욕 시설은 없고 발만 담글 수 있는 곳밖에 없다. 그나마도 사람들로 붐벼 빈자리 찾기도 쉽지 않다. 공휴일이라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온천장 한가운데에는 온천수가 분수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온천수가 비처럼 사람들을 적신다. 물안개가 만들어내는 무지개도 멋있다. 한국에서 보지 못하는 이곳의 풍경이라면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계란을 넣어 온천물에 삶는 모습이다. 15분 정도 온천물에 담그면 삶은 계란이 된다고 옆에 있는 사람이 귀띔해준다.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삶은 계란을 먹는 이색적인 경험을 한 후 다시 길을 떠난다.

공휴일을 맞아 온천을 찾은 사람들. 물이 뜨거워 발을 담그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공휴일을 맞아 온천을 찾은 사람들. 물이 뜨거워 발을 담그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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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적지 치앙라이(Chiang Rai)를 향해 가는데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Flight of the Gibbon'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산속을 군대에서 유격 훈련하듯이 줄을 타며 즐기는 곳이다. 이름을 그대로 번역하면 원숭이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즐거움을 맛보라는 곳이다. 우리는 산속을 거닐고 싶은 마음에 이정표를 따라 'Flight of the Gibbon'이라는 장소를 찾아 핸들을 돌린다.

도로는 점점 우리를 산속 깊숙이 안내한다. 가는 길에 멋지게 생긴 리조트가 있다. 들어가 보니 시냇물이 흐르는 경치가 좋은 곳에 나무로 멋지게 지은 휴양지다. 잠시 리조트에 들어가 산책을 하고 다시 산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간다. 길이 점점 좁아지며 언덕길도 가팔라진다. 

산이 많은 태국 북부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좋은 휴양지가 많다
 산이 많은 태국 북부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좋은 휴양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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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ght of the Gibbon'이라는 장소에 도착하니 젊은이들의 암벽등반이라도 하는 것처럼 헬멧도 쓰고 대단한 장비를 몸에 걸치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은 군대 가서 공짜로 하는 것을 이곳에서는 비싼 돈을 내면서 하고 있다. 세상사라는 것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고역도 되고 즐거움도 되는 것인가 보다.

산속 깊은 곳에 온 김에 물소리를 들으며 지낼 생각으로 근처에 방을 알아본다. 방은 우리나라 시골 민박 수준인데 1500바트(5만 원 정도)를 요구한다. 우리가 치앙마이 사성 호텔에서 푸짐한 아침과 함께 지냈던 호텔 수준의 금액이다. 바가지 쓰는 기분이라 거절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자동차가 있으니 가는 길에 우리가 묵을 방 하나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첫 번째 나온 리조트에는 방이 없다고 한다. 또 내려가면서 방을 찾는다. 두 번째 나온, 우리가 잠시 쉬면서 산책을 했던 좋은 위치에 있는 리조트에도 방이 없다고 한다. 난감하다. 잘 곳이 없으니 산속을 산책하는 것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인숙 같은 그 민박집까지 돌아가 바가지요금을 내면서 하룻밤 묵기도 싫다.

치앙라이까지 거리를 계산을 해보니 오후 7시쯤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속에서 하루를 묵으며 산책하는 것을 포기하고 치앙라이까지 올라가기로 한다. 아내가 지도를 보며 안내하는 길을 따라 속도를 내며 운전한다.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가속기를 조금 깊숙이 밟는다. 태국은 속도 제한이 없는지 고속도로에도 속도 제한 표시가 없다. 자그마한 자동차가 속도를 내며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길을 과속으로 달린다. 밤거리, 낯선 산길 도로이기에 평소보다 운전에 더 집중한다. 

오후 7시를 조금 넘겨 치앙라이(Chiang Rai)에 도착했다. 밤이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시내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불나방처럼 불 밝은 거리를 육감으로 찾아가며 숙소를 찾는다. 관광버스 한 대가 서 있고 시계탑도 있고 조금은 지저분한 식당이 즐비한 거리에 도착했다. 주차하고 일단 식당에 들어가 태국 사람들이 흔히 먹는 국수로 저녁을 해결한다. 식당 건너편에 허름한 호텔이 있다. 시설은 좋지 않으나 하룻밤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호텔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선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이 현란한 조명으로 장식된 시계탑 주위에서 사진을 찍는다. 오후 8시가 되자 시계탑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호텔에 사진기를 두고 나와 사진을 찍지 못하는 섭섭함은 있지만 우리도 관광객의 한 사람이 되어 이국 풍경을 즐긴다. 아마도 이 시계탑도 관광코스 중 하나인가 보다.

어젯밤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사진기를 들고 시계탑으로 걷는다. 출근길 아침거리는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게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붐빈다. 교통경찰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한다. 재미난 것은 교통정리를 하다 말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다. 아마도 사적인 전화일 것이다.   

치앙라이의 관광 명소 시계탑.
 치앙라이의 관광 명소 시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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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 옆에서 교통 정리하며서 사적인 전화를 하고 있는 경찰관
 시계탑 옆에서 교통 정리하며서 사적인 전화를 하고 있는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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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을 사진기에 담고 주위를 걷는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태국에 흔한 술집 간판이 눈을 끈다. 아침이라 문이 닫혔어도 밤에는 흥청거렸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여자가 있는 술집임을 눈치챌 수 있는 Lady Bar라는 간판이 있는가 하면 건너편에는 Boys Bar라는 간판이 있다. 동성애들이 모이는 술집일 것이다.

태국에서 키 크고 늘씬하게 생긴 여자는 거의 여장을 한 남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 들렸던 방콕 근처에 있는 빳따야(Pattaya)라는 해변에서는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남자(?)들이 아름다운 몸맵시를 뽐내며 쇼를 하는 곳도 있다. 태국에서는 성전환에 대한 반감이 한국보다 사회적으로 용납하는 분위기다. 그래서일까? 태국은 외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하려고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치앙라이(Chiang Rai) 낯선 도시를 거닐며 아침을 먹으려고 식당가를 서성인다. 한 식당에 들어가니 탁신 전 태국 총리의 사진으로 벽을 덮고 있다. 쿠데타로 쫓겨난 총리이다. 탁신 총리와 식당 주인이 인사를 하는 사진, 총리가 이 허름한 식당에서 국수를 먹는 사진 등이다. 얼마 전만해도 탁신 총리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현 정부 간의 마찰로 많은 사람이 죽었던 일이 있을 만큼 현 정부와는 앙숙인 총리이다. 이러한 경력이 있는 탁신 전 총리의 사진으로 온 식당을 장식해도 장사에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 장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사진으로 도배를 하는 것이 아닐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주 들렸던 설렁탕집까지 세무 조사를 하는 국가보다 툭하면 쿠데타가 일어나는 태국이 더 민주주의 국가인가? 헷갈린다. 

벽을 온통 탁신 전 총리의 사진으로 장식한 식당. 탁신 전 총리는 북쪽 지방에서 인기가 많다.
 벽을 온통 탁신 전 총리의 사진으로 장식한 식당. 탁신 전 총리는 북쪽 지방에서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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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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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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