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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8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희망대장정 보고회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얘기를 나누다 손짓하고 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8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희망대장정 보고회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얘기를 나누다 손짓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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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8일 오전 8시 55분]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이후 장외투쟁에서 자신의 분노를 나타낼 때 자주 쓰는 표현이 '거적때기'다.

지난달 3일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명박 대통령의 메시지도 없이 '그저' 신년인사차 찾아왔을 때 "메시지가 없다면 돌아가라"면서 "대통령은 '웃기네' 할지 모르지만 제1야당 대표가 오죽하면 길거리에서 거적때기를 깔고 그렇게 하겠느냐"고 쏘아붙였다. 사전에 정진석 수석을 만날지 말지까지 최고위원들과 논의했던 손 대표는 공개된 자리에서 작심하고 쏘아댔고, 정 수석은 얼굴이 벌개졌다.

2차 장외투쟁 기간인 지난달 9일 <한국경제신문>과 한 심야 인터뷰에서도 "제1야당 대표가 시청 앞에서 거적때기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이 국민들 눈에 뭐가 보기 좋겠느냐"고 말했다. 자신의 장외투쟁에 대해 "이 정권의 독재본색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에서였다.

그는 설 연휴가 끝나는 6일에 다시 '거적때기'를 언급했다. 한나라당의 김무성 원내대표와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날 오찬회동에서 '14일부터 2월 임시국회를 열고,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대표의 회담이 이번 주 내에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해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것에 대해 논의하는 '긴급' 최고위원회 자리에서다.

이날 최고위원회가 긴급하게 열린 것은 손 대표는 물론 당 최고위원회가 두 원내대표의 합의 내용을 두 사람의 기자회견 전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손 대표, '김무성-박지원 합의' 기자회견 전에 몰랐었다"

손 대표 쪽의 핵심 당직자인 A의원은 "박지원, 김무성 두 원내대표가 오후 2시에 기자회견 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사전에 공유된 게 없어 손 대표에게 연락했더니 손 대표도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날 오후 정진석 정무수석이 '이명박-손학규 회담'과 관련해 손 대표의 양승조 비서실장과 통화하면서 "급히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민주당 분위기는 더욱 냉각됐다.

손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국회의장 사과나 받자고 거적때기 깔고 장외투쟁을 한 줄 아느냐, 지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국회에 들어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예산안 날치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가 2월 국회 등원의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것이 손 대표의 기본인식이고, '의원직 총사퇴' 주장까지 했던 박주선 최고위원이나 천정배 최고위원도 같은 생각이다.

손 대표는 또 이 대통령이 '예산안 날치기'에 대한 유감 표명 없이 자신과의 회담은 물론 국회 정상화를 얻어내려는 것에 대해 "손학규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대통령이 사과 안 하면 내가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도 했다.

손 대표의 측근인 차영 당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박 원내대표와 논쟁을 벌이다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차영 "청와대에서 '등원 이후에 만나는 것으로 하자'고 통보해왔다"

차 대변인은 7일 "어제(6일) 오후에 청와대 비서실에서 '등원 이후에 만나는 것으로 하자'는 통보를 해왔다"고 전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예산안 날치기' 문제에 대해 사과할 뜻이 전혀 없음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손 대표의 비판은 직접적으로는 청와대를 향하고 있지만, 박지원 원내대표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A의원은 "철저하게 의회에 무게들 두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로서는 구제역 파동 등 야당이 공격할 이슈가 많기 때문에 국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겠지만 손 대표와 사전협의 없이 이 대통령과의 회담문제를 먼저 언급하고, 구체적인 개원날짜까지 정해서 공표한 것은 그의 오버"라고 비판했다. 2월 국회 등원 문제는 원내대표 권한의 영역이긴 하지만 장외투쟁 중인 '비상상황'에서 대표와의 협의 없이 날짜가 잡혔고, 당 대표 고유의 권한인 대통령과의 회담문제도 대표 쪽이 아닌 원내대표가 먼저 언급한 것에 대한 지적이다.

그는 또 "설령 손 대표가 동의했다고 해도 최고위원회의 동의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박 원내대표는 파트너로서 김무성 원내대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을 수 있겠지만, 김 원내대표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지난 '예산안 날치기' 때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청와대를 비판했다. 그는 7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김무성 대표가 (6일 오찬 때)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과 통화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 대통령과 손 대표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오찬 이후에 청와대 기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 쪽 관계자는 "우리도 대통령의 사과 없이 그냥 들어가자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대통령이 미리 사과하겠다고 예고할 수는 없겠지만 야당대표와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예산안 날치기' 문제에 대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계속 국회를 비우고 있는 것에 대해 의원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굉장히 큰데, 손 대표도 당의 대표로서 판단의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지원측 "상황이 어려울 때는 개척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6일 오후 국회 정상화 및 영수회담 관련 오찬회동을 끝내고 김무성 원내대표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국회로 들어오고 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6일 오후 국회 정상화 및 영수회담 관련 오찬회동을 끝내고 김무성 원내대표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기자회견을 하기위해 국회로 들어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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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지원의 오버'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상황이 어려울 때는 누군가 개척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서, 손 대표에게 사전에 보고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박 원내대표는 손 대표에게 수시로 보고하고 있는데, 6일의 경우 김무성 대표가 운전하는 차를 같이 타고 국회 기자회견장으로 왔기 때문에 통화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7일 이례적으로 당대표 등의 모두발언도 비공개로 하면서 약 3시간 동안 의원총회를 열어 등원 문제 등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였다. 박 원내대표에 "예산안날치기를 당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영수회담도 마치 우리가 구걸하는 것처럼 돼버렸다"(이용섭), "여야 원내대표가 '형님, 동생'식으로 너무 쉽게 등원문제를 풀었다"(강기정), "영수회담은 원내대표의 영역이 아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지만 이번 경우는 원숭이가높은 나무를 넘으려고 했던 격"(강봉균)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나 손 대표는 "어찌 보면 엎질러진 물"이라며 "지금 와서 국회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면 우습게 된다"며 등원론에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부부나 친구간에도 의견이 갈릴 수도 있다. 박 원내대표도 김(무성) 원내대표의 진정성과 청와대에 있을지도 모를 한 줌 성의를 믿고 합의를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와의 갈등이 있었음을 드러내면서도 그를 다독인 것이다.

박 원내대표도 "당이 단합해도 어려울 때 이런 모습을 보인 데는 저의 불찰도 있다"고 인정했다.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국회 등원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원이 다수였으나 최종 결정은 지도부에 일임키로 했으며, 영수회담과 국회 등원 문제는 조건으로 삼지 말고 상호 분리해서 대응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전했다. 전 대변인은 '지도부'는 "손 대표와 박 원내대표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손 대표가 등원론쪽에 섰다는 점에서 2월 국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 원내대표는 많은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최소한의 성과는 얻은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상황을 손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심각한 갈등으로 보고, 일부 언론은 '한 유력 예비주자의 측근'을 인용해 "원내대표 본인은 부인하지만 자기의 존재감을 키워 대권후보로서 기반을 쌓으려다 이번 문제를 일으킨 것 아니냐"는 기사까지 내보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찰'은 기본적으로 원내대표와 원외 당대표의 입장 차이 수준이지 '손학규 대 정동영' 같은 구조적인 갈등관계로 보기는 어럽다는 게 중론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권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MBC TV <일요인터뷰人>에 출연해 대권도전 의사를 묻는 질문에 "집권을 위해서 벽돌 하나 놓는 역할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통령감이 못 됩니다"라고 답했다.


태그:#손학규, #박지원,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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