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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진관에 하루 종일 앉아 있다 보면 볼펜이나 껌을 팔러 오시는 장애인분들이 제법 많다. 이런 분들을 그냥 보낼 적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팔아드리려고 애를 쓰기도 하는데,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아달라면 곤혹스럽기가 짝이 없다.

제법 오래 전에 200원짜리 모나미 볼펜을 한 자루에 1000원씩이나 달라며 그것도 최소한 두 자루는 팔아줘야 된다며 생떼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분을 앉혀놓고 차 한 잔을 대접해드리며 일장 연설을 했는데 씨알이 먹혔다.

천 원짜리가 모여 만원이 되고 십만 원이 되지요.
▲ . 천 원짜리가 모여 만원이 되고 십만 원이 되지요.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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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깡패입니까 아니면 거지입니까? 정당한 값을 받고 팔아야지 200원짜리 볼펜을 1000원에 팔면 도둑놈 심보이거나 볼펜을 빌미로 사람들의 싸구려 동정심에 구걸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 산다면 그만이지 손님인 저에게 눈을 부라리고 인상을 쓰시면 어쩌시려고요? 200원짜리 500원에 판다면 그것마저도 못마땅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내 말대로 볼펜을 조금 더 많이 가지고 다니는 수고를 하시더라도 지금 아저씨가 받는 볼펜 값의 3분의 1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 달 후에 지금과 비교를 해보아 벌이가 많이 못하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든지 어쩌든지 해 보세요.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나는 200원짜리 1000원에 살 생각은 없습니다. 차라리 그냥 도와드리면 모르되 아저씨는 어차피 물건을 파는 사람이니 우리 서로가 정당하게 제값 주고받으며 거래를 합시다.

그 대신 볼펜만큼은 다른 곳에서 안 사고 꼭 아저씨에게서 사겠습니다. 저는 아저씨가 장애인이니 뭐니 이런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저와 똑같이 일을 하고 장사를 해서 먹고사는 사람일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아저씨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고 세상을 향해 당당해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불쑥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며 볼펜을 사시란다. 얼마느냐고 물으니 300원이란다. 가만히 보니 옛날의 그 아저씨다. 둘이 마주보고 한참을 웃다가 어찌된 일이냐 물으니 내 말대로 해보았단다. 한 달 후에 계산을 해보니 수입의 차이가 별로 없더란다. 그래서 500원 받으라는 데서 200원을 더 내렸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는 자식들에게도 떳떳해졌단다. 구걸하는 사람이 아닌 볼펜 장수라 생각하니 하늘을 올려 봐도, 자식들을 보아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더란다.

이날 저녁 나는 이 장애인 아저씨께 칼국수 한 그릇을 정말 맛있게 얻어먹었다. 허름한 담벼락의 빛깔도 고운 능소화처럼 아저씨의 그 당당함에 감사합니다. 입 안에서 터지는 빨간 석류 알처럼 아저씨의 홍조 띤 얼굴이 상큼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 하세요.


태그:#볼펜 한 자루, #장애인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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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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