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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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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최고은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분이 살다갔다고 한다. 숨을 거둘 때 그녀는 고작 서른 둘, 삶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녀는 단편영화의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로 밥벌이를 했다.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얼마나 좋은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가 죽은 뒤 쏟아져 나온 언론 보도를 통해 그녀가 <격정 소나타>의 감독이었으며 이 영화가 지난 2006년 제4회 아시아국제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하며 그녀가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또 누군가 일찍 죽을 수도 있다. 우리를 새삼 놀라게 하는 것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고 있던 그녀가 '굶주린 채' 죽어갔다는 점이다.

"그동안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이것은 그녀가 이웃 주민의 집 대문에 남겨놓았던 쪽지의 일부라고 한다. 저 글귀 중에서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와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사이에 무언가의 말이 빠진 듯 어색하다. 고인에게 누(累)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저 말들 사이에 "너무 배가 고파요!"라는 말을 넣어주고 싶다. 어쩌면 저 말이야말로 그녀가 정말 외치고 싶던 외마디 비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굶주린 채 죽어가는 동안에는 아무도 몰랐고 지난 달 29일 그녀가 죽고 열흘이 지나서야 수십 군데의 언론에서 이 비보를 전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생활고에 관해, 저 마지막 굶주림에 대해서 침묵했지만 그녀는 분명 굶주린 채 죽어갔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죄의식을 피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저 굶주린 예술가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죄인이 아닐까. 그래서 그녀의 죽음 앞에 명복을 빈다는 말조차 쉽사리 할 수 없다.

예술계의 관행? 내가 겪은 두 가지 사례!

그녀의 죽음을 두고 누군가는 내게 '승자독식의 먹이사슬 구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구조를 '관행'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말했다.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까. 불현듯 내가 겪었던 두 가지 대비되는 사례가 떠올랐다. 비록 내가 영화 업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문학계도 그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어느 문학잡지에 평론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의 일화다. 원고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잡지사측에서 연락을 해왔다. 원고료를 대신해 정기구독을 받으라는 이야기였다. 문학전공자로서 난생 처음 받은 청탁으로 인해 가졌던 설렘과 긴장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즉각 그 제안을 거절하고 고료를 받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지금까지도 잡지를 계속 보내온다. 그러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도착하는 그 잡지를 보면 반가움에 앞서 씁쓸한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잡지가 어떤 악의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이것을 '관행'이라고 일컫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잡지사에서 보낸 원고청탁서의 일부를 소개한다.

"원고료는 ○회 ○○원입니다. 지금까지는 연재가 끝나는 시점에서 원고료를 드렸는데요, 각 호마다 원고료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말씀해주시면 원고료 지급하는 데 참고하겠습니다."

몇 푼(?) 안 되는 저 원고료를 받기 위해 잡지사에 쭈뼛거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저 말이 참 고마웠지만 오늘에 이르러 최고은 감독의 죽음 앞에서 그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 한편, 잡지사의 형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인쇄비나 유통(배송)비를 제외하면 1만원 남짓한 잡지 값에서 수익을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원고료를 정기구독으로 대신하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일 게다. 또 이러한 궁핍한 현실 때문에 우리의 적잖은 잡지들이 동인지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배고픈 예술가들을 단 한 번만이라도 돌아보자

오늘날 예술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일까. 예술은 꽉 막힌 우리 출근길을 뚫어주지 못한다. 또 수출되는 물류의 운송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도로를 닦고 강에 보를 쌓는 일이 우리의 영혼마저 맑게 해줄 수 있을까? 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해서는 예술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내일을 위해 나는 주변의 배고픈 예술가들을 단 한 번만이라도 돌아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쓸쓸히 죽어간 그녀에게 무슨 말이 소용 있을까마는 이 말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얼마 전 세상을 등진 고(故) 박완서 선생님께서 죽음을 예비하여 남기셨다는 말씀을 다시 되뇌어본다.

"문인들은 돈이 없다. 내가 죽거든 찾아오는 문인들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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