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굉장히 오래된 호떡집이 있습니다. 60여 년의 역사와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곳.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 유난히 더 생각나는 곳. 새카맣고 달콤한 호떡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흐릅니다." - 노톨(인터넷 블로그)"보통 호떡하면 기름에 튀긴 것을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곳은 특별합니다. 호떡을 기름 없이 구워내기 때문입니다. 보기만 해도 기름기 하나 없이 담백해 보입니다. 이제 택배로 전국 배송까지 한다는군요." - 바닷가우체통(인터넷 블로그)"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 손잡고 왔던 곳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업 중이더군요. 이제는 제 딸을 데리고 와 추억의 호떡을 먹습니다." 김서형(군산 나운동·37세) 이름만으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가 있다. 바로 '중동호떡'이다. 참으로 오래된 맛. 사람들은 이곳을 추억의 맛집, 어머니와 손잡고 왔던 곳, 오래된 호떡집 등등으로 기억하고 있다. 올해로 67년. 무려 반세기 이상을 군산 역사와 함께한 중동호떡은 여전히 호떡을 구워내고 있다. 이젠 군산의 명물이 된 중동호떡집을 찾아가 봤다.
오전 10시. 손님이 뜸한 이른 시간에 찾아갔음에도 호떡집 안은 분주했다. 5분마다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문지방 닳게 찾아오는 손님. 게다가 서울로 보낼 호떡 주문량을 소화해내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팔을 걷어 부친 이년욱(69세) 사장은 "즐거운 비명이여~"라며 호떡을 빚느라 바빴다. 따로 인터뷰할 시간도 없이 호떡을 구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호떡 사러왔다가 눈 맞아서 결혼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이집 인기가 대단했지~ 암만." 7년째 이곳에서 일한 이모가 한 마디했다. 호떡 사러왔다가 결혼을 했다? 얼토당토 없는 말 같지만 실제로 그랬다. 70~80년대 채석장과 목재가공업체들이 들어서 있을 때 이곳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퇴근 무렵, 호떡 사려고 모인 청춘 남녀들이 긴 시간을 기다리다 눈이 맞은 것이다. 그 옛날, 이 집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이 된다. 그렇다면 이 집 호떡 맛이 어떻기에 한결같이 사랑받는 것일까.
이 집의 호떡은 보통 호떡과는 전혀 다르다. 보통 호떡은 철판에 기름을 치고 튀겨내지만, 이 집의 호떡은 기름을 치지 않고 철판에 구워낸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밀가루 반죽의 정도와 불의 온도다. 이것이 조합이 되어 철판에 눌어 붙지 않고 먹기도 좋은 호떡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호떡을 먹기 위해 사람들은 거리를 멀다하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30년 전에는 20원 하던 호떡이 현재 한 장당 700원짜리 귀하신 몸이 되었지만 외지에 이사를 간 사람들도 전화주문을 통해 이 호떡의 맛을 계속 먹고 싶어 한다. 그래서 택배 배송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해방이 되자마자 우리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 호떡 굽기였지. 우리 내외가 가업을 이어받은 지도 언 40여 년이 흘렀어. 그저 한결 같이 중동호떡을 사랑해주시는 손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중동호떡이 있다고 생각혀."
아버지 이봉수씨의 뒤를 이어 받은 년욱씨는 아내 송영화(65세)씨와 현재 중동호떡집을 지키고 있다.
지난 40여 년을 지켜낸 호떡집이지만 위기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아내 영화씨는 최근 위수술과 척추수술을 했고, 년욱씨는 오래전부터 다리가 불편했다. 년욱씨는 지금도 다리에 혈전이 있어 압박스타킹을 신지 않으면 거동이 불편하다. 이 부부의 바람이 있다면 몸 건강히 오래오래 호떡을 굽는 것이다.
"호떡 하나가 구워져 나오기까지 여간 수고가 들어가는 게 아니여. 새벽에 일어나 반죽 내리치는 일부터 시작해 방망이로 밀어서 호떡 모양을 만드는 일까지 일일이 손으로 하니깐 한시도 쉴 틈이 없지. 그래도 찾아오는 손님이 반가워 힘든 줄 모르고 지금껏 살았고만. 남들은 손님 많다고 떼돈 번지 알지만, 이 호떡 팔아 우리 자식들 키우는 데 다 썼지. 이제는 모두 출가시키고 손자손녀 재롱 보는 재미로 살어. 이제는 멀다하지 않고 찾아와 주는 단골 고객이 반갑고 고마워 호떡 굽는 일을 멈출 수 없고만."
중동호떡의 맛을 전국방방곡곡에 알리고자 기술 전수도 여러 차례 한 년욱씨는 그동안 먹고 살기 힘들어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에게 로얄티를 받지 않는 가맹점 아닌 가맹점으로 호떡 굽기를 전수하기도 했다. 기술을 전수할 땐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군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년욱씨는 자신이 그랬듯, 그분들의 삶이 호떡으로 인해 활짝 피길 간절히 바랐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호떡 굽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년욱씨. 그가 빚는 건 단순한 호떡이 아니다. 이 호떡 속엔 사람들의 향수와 추억이, 그리고 군산의 역사가 녹아내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