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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은 도시락 이야기

모로코의 꽃 1
 모로코의 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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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꽃 2
 모로코의 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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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에서 탕헤르까지 A1 고속도로는 대서양을 따라 나 있다. 이 도로는 라바트, 물레이 부셀함, 라라쉐, 아실라를 지나 탕헤르로 이어진다. 우리는 버스로 5시 30분 달려 탕헤르 여객항에 도착, 오후 2시 타리파행 페리를 탈 예정이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두 번 휴식을 취하게 되는데 두 번째 휴게소에서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기로 되어 있다.

휴게소에서 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모로코는 겨울인데도 꽃이 한창이다. 기온이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기 때문이다. 1월의 평균 기온은 최저가 7도고 최고가 17도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 한 달에 8일 정도 된다. 그러므로 식물이 자라고 꽃이 피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이다. 국화과의 꽃도 보이고 부겐빌레아도 보이고 선인장과의 꽃도 보인다.

두 번째 휴게소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이 점심이 바로 한식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안혜영 가이드가 사연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카사블랑카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여행사가 하나 있다. 이 여행사 사장은 다른 일로 카사블랑카에 처음 왔다고 한다. 무역일 수도 있고, 해운일 수도 있고, 어업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모로코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하면서 이곳에 눌러 살게 되었다고 한다.

휴게소에서 만난 야쟈수
 휴게소에서 만난 야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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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부는 카사블랑카에서 잘 살았고, 모로코를 찾는 한국인이 늘면서 현지여행사를 차리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짜고 현지를 안내하면서 여유 있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국내에 계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혼자되어 모로코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고부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어머니에게는 모로코 생활이 징역살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행사 사장이 한국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음식을 먹어 본 사람들이 모두 어머니의 음식솜씨에 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인 관광객에게 음식을 제공하면 어떻겠냐는 안을 낸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도시락 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여행사 사장 어머니께서 모로코에서 사는 재미를 찾았다고 한다. 일거리 있어 좋고,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며느리에게 한국 음식 가르쳐줘서 좋고, 돈 벌어서 좋고.
 
우리 팀은 새벽에 카사블랑카를 떠나면서 그 도시락을 받아왔다고 한다. 우리는 휴게소의 야외 테이블에 네 명씩 앉아 도시락을 하나씩 받아 든다. 밥그릇 하나, 반찬 그릇 하나다. 그 동안 현지식과 중국식에 익숙해져 한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 반찬 그릇을 열어 보니 완전히 한식이다. 총각김치, 양배추김치, 고추 절임, 오이지무침, 고등어조림, 달걀말이까지 있다.

총각김치의 시원한 맛, 고추 절임의 알싸한 맛은 일품이다. 양배추김치도 배추김치만은 못하지만 씹히는 맛이 좋다. 오이지와 고등어 거기다 달걀말이까지 감히 생각도 못했던 반찬들이다. 또 한국에서 가지고 온 깻잎에 고추장 볶음에 김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진수성찬이다. 모두들 만족해한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하면서 한국음식점을 방문한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이처럼 한식 도시락을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아르간 오일을 아시나요?

아르간 오일
 아르간 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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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탕헤르를 향해서 출발한다. 그런데 잠시 후 국내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 TV를 통해 나온다. 아르간 오일(argan oil)에 관한 것이다. 양과 염소가 아르간 나무에 올라가 잎을 뜯고, 여인들이 아르간 열매를 채취해 맷돌 같은데 갈아 기름을 짠다. 그런데 그 기름이 참기름이나 올리브오일보다 더 걸쭉해 보인다. 기름은 이처럼 여인들에 의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짜지기도 하지만, 기계를 통해 압착이나 용매를 통해 추출하기도 한다.

아르간 오일에는 필수 지방산, 천연 토코페롤(비타민 E), 페놀, 카로틴, 스퀄린 성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방산 중 80%가 불포화지방산으로 올리브오일보다 산화가 훨씬 안 된다고 한다. 지방산의 구성도 올레인산 42.8%, 리놀렌산 36.8%, 야자유에 많이 들어있는 팔미틴산 12.6%다. 아르간 오일은 현재 빵과 샐러드에 발라 먹는 식용으로, 미용과 화장용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아르간 나무
 아르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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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간 나무는 모로코 서남부 아가디르(Agadir)의 수스(Sous) 강변 반사막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아르간 나무는 10m까지 자라며 나무의 수명은 200년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다음해 6-7월까지 성숙된다. 7월에 열매가 검게 건조되어 떨어진다. 열매 안에는 단단한 씨가 1-3개 들어 있다. 이것을 가공하면 아르간 오일이 되는 것이다.

아르간 오일에 대한 비디오를 본 다음, 안혜영 가이드는 카사블랑카의 여행사 사장으로부터 받은 아르간 오일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아르간 오일은 식용이 아니라 얼굴에 바르는 미용용이다. 60㎖ 짜리로 30유로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45,000원 정도다. 최근에 탤런트 김남주가 사용한다고 해서 국내에도 유명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에서는 훨씬 비싼 값에 팔린다고 해서 몇 개 샀다.  

탕헤르 출신의 유명인에는 누가 있을까?

하지(성지순례)를 떠나는 13세기 이슬람교도들
 하지(성지순례)를 떠나는 13세기 이슬람교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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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탕헤르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몇 가지 생각을 했다. 탕헤르 출신의 세계적인 인물은 없을까? 아 그러고 보니 세계적인 여행가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8/69)가 이곳 출신이다. 그는 1304년 2월25일 탕헤르 율법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1325년 메카로의 순례(Haji)를 떠난다. 그는 육로로 북아프리카를 횡단해서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에 닿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마스쿠스와 메카를 거쳐 메디나까지 순례를 했고, 내친 김에 이라크와 이란 지역으로 여행했다. 그는 이후 24년 동안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등을 여행하고는 다시 모로코로 돌아왔다. 1349년에야 이븐 바투타는 페스를 거쳐 탕헤르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신 걸 알고는 다시 이베리아 반도의 그라나다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 이슬람 왕국이었던 알 안달루스(수도: 그라나다)는 기독교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과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이븐 바투타는 1351년 가을 탕헤르에서 다시 남쪽으로 길을 떠나 마라케시와 사하라 사막을 넘어 말리의 팀북투까지 여행했다. 1354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븐 바투타는 당시 모로코 왕이던 아브 이난 파리스의 권고로 여행기를 쓰게 되었다. 이때 그의 여행담을 기록한 사람이 이븐 주자이(Ibn Juzayy)다. 이때 나온 책의 원제가 <도시의 아름다움과 여행의 경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A Gift to Those Who...)>이다.

이븐 바투타의 무덤
 이븐 바투타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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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것을 간단하게 <릴라(Rihla)>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하면 '여행'이란 뜻이다. 이 여행기는 1355년 완성되었다. 여행기를 완성한 후 이븐 바투타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재판관에 임명되었으며, 1368/69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무덤이 현재 탕헤르 구도심에 있는데, 진위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프랑스의 낭만파 화가 유진 들라크루아(1798-1863)도 1832년 외교적인 사명을 띠고 모로코와 북아프리카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는 이때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1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주로 북아프리카인들의 삶과 관련된 내용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모로코에 사는 유대인의 결혼'(1837-1841), '탕헤르의 광신도들'(1838), '모로코 왕'(1845), '마굿간에서 싸우는 아랍 말들'(1860)이 있다.

들라크루아가 그린 '탕헤르의 광신도들'
 들라크루아가 그린 '탕헤르의 광신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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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는 북아프리카인들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다. "여기 문 앞에 그리스 로마 사람들이 있다. 흰 천으로 몸을 감싼 아랍인들이 마치 카토나 브루투스 같다." 들라크루아는 북아프리카에서 파리의 문화와는 다른 원초적인 문화를 체험했던 것이다. 

밤이 아름다운 마을 미하스를 보는 재미

탕헤르-타리파를 운행하는 페리 FRS
 탕헤르-타리파를 운행하는 페리 F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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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를 떠나는 일은 들어오는 일보다 훨씬 수월했다. 통관수속도 보안수속도 일사천리다. 관광객보다는 오히려 관광버스에 대한 감시가 심하다고 한다. 모로코 사람들이 버스를 통해 유럽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현지 가이드인 사이드와 작별인사를 하고 배에 오른다. 그 큰 덩치에 선글라스를 끼고 손을 흔드는 모습이 참 선해 보인다.

나는 아쉬움이 남아 탕헤르 구시가지를 자꾸 되돌아본다. 언덕 위로 보이는 하얀집과 파란 바다가 잘 어울린다. 항구에는 우리가 타고 갈 빨간 페리 FRS가 기다리고 있다. 바다 너머로는 우리가 갈 에스파냐 땅이 어렴풋이 보인다. 1시간쯤 지나자 배가 타리파 항으로 들어선다. 몇 일만에 돌아오지만 등대도, 구쓰만 성도 낯이 익다. 배에서 내려 나는 바다 건너 모로코 땅을 다시 한 번 의미심장하게 되돌아본다.

미하스 중심에 있는 '바위의 성모 광장'
 미하스 중심에 있는 '바위의 성모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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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파에서 다시 버스를 탄 우리는 이내 미하스(Mijas)로 달려간다. 미하스는 마르베야, 말라가와 함께 지중해변 코스타 델 솔의 심장부를 이루고 있는 도시다. 해발 450m 고지에 있어 지중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벽이 온통 하얗기 때문에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비교되기도 한다. 그런데 미하스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6시다. 미하스에 땅거미가 내려 벌써 어두워졌다.

우리는 미하스의 중심가 '바위의 성모 광장(Plaza Virgen de la Pena)'에서 관광을 시작한다. 이곳 미하스 바위의 성모에는 독특한 역사가 있다. 1548년 한 수도사에 의해 미하스의 성벽에서 성모 마리아 상이 발견되었다. 이슬람교를 신봉하던 무어왕조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800년 동안 바위 속에 숨겨져 있다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조금 다른 전설이 있다. 후앙과 아순시온 베르날 자매가 1586년 성을 산책하다가 성의 종탑 위에 비둘기가 한 마리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비둘기가 갑자기 성모 마리아로 변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성당을 짓고 그 이름을 '바위의 성모 은둔지(Ermita de la Virgen de la Peña)'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성당은 지금 엘 콤파스 도로 성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바위의 성모 은둔 성당
 바위의 성모 은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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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하스의 중심 상가를 지나 바위의 성모 은둔 성당으로 간다. 여러 번 계단을 올라가니 그곳에 돌로 지은 성당이 나타난다. 성당 앞에는 큰 바위가 우뚝하고 그 위에 성모 마리아가 세워져 있다. 성모 마리아 뒤로는 종탑이 보인다. 조명을 받아 푸르른 기운이 도는 성당에서 신성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미하스 마을과 멀리 지중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밤인지라 어둠 속에 반짝이는 등불들만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다시 광장으로 내려가 버스를 타고 말라가의 호텔로 가는 일만 남았다. 말라가 그곳은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그라나다 왕국 시절 항구도시로 번성했고, 19세기에는 산업이 발달했다. 스페인 내전 때는 진보적인 공화파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밤에라도 그런 말라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까? 내일은 안달루시아 이슬람 문화의 진수 코르도바와 그라나다를 관광하도록 되어 있다.  


태그:#아르간 오일, #이븐 바투타, #들라크루아, #미하스, #바위의 성모 은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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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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