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바로 앞에 위치한 롯데손해보험빌딩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오는 2월 28일자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런데 실제 이들의 계약 해지 사유가 노동조합에 가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용역업체 측은 "계약기간이 만료된 것이지 노조에 가입한 것이 해고사유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사가 노조 탈퇴 강요... 관리소장이 상품권으로 회유"
청소노동자들은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적은 월급, 부족한 물품 지급 등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용역업체인 '휴:콥' 측은 "롯데손해보험과 아직 도급계약을 맺지 못했는데 계약을 맺으면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고 답변했다.
계속된 요구에도 사측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월 25일 민주노총 산하 공공노조에 가입했다. 그러자 지난 1월 31일, 롯데손해보험과 도급계약을 맺은 휴:콥은 23명의 노동자들에게 근로계약 종료통지서를 발송했다.
통지서 내용에 따르면 '휴:콥' 측은 "롯데손해보험과 휴:콥 측의 도급계약이 2월 28일부로 만료됨에 따라 청소노동자들과의 계약도 종료됨을 알린다"며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해고를 통보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다음 날인 1월 26일 '휴:콥' 본사 자산관리사업부의 박아무개 이사가 노동자들을 만나 "90만 원으로 월급을 올려주겠으니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이틀 후인 1월 28일에는 관리소장이 1월 31일자로 근로계약이 종료된다는 통지서를 노동자들에게 보여준 후 "어차피 쫓겨나게 된 거 자발적으로 나가라"며 사직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관리소장이 들고 온 사직서에는 이미 청소노동자들의 이름과 주민번호가 이미 인쇄돼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이 이마저도 거부하자 1월 31일, 관리소장이 다시 청소노동자를 모아놓고 상품권을 보여주며 "사직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여기 10만 원 상품권조차 못 받는다"고 다시 사직을 회유했다. 이들이 다시 거부하자 용역업체는 이날 23명의 노동자들에게 근로계약 종료를 최종 통보했다.
한 달에 3일 쉬고 75만 원 받는 청소 노동자
롯데손해보험빌딩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은 열악했다. 이들의 평균 출근 시각은 오전 5시 30분. 노동자들과 용역업체 양측에 확인 결과 이들이 맺은 계약서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은 합쳐서 3시간'이라고 규정해놓았다.
그러나 청소노동자들은 "아침에 쓰레기통 비우고 화장실 청소하면 4시간 정도는 걸리는데 오전 7시에 출근하면 회사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일을 다 끝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 층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양은 아침에만 100리터 쓰레기봉투 3~4개 정도. 하루 종일 나오는 쓰레기봉투의 수는 100리터 기준 총 200개 정도인데 이를 압축기계로 눌러도 80개가 넘는다고 한다.
쓰레기통을 다 비운 후 청소노동자들은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다. 각 층마다 있는 남녀 화장실의 칸수는 각각 7~8칸. 남여 화장실을 청소하고 나면 어느새 오전 9시에서 9시 30분이 훌쩍 넘는다.
이들은 "업무량이 너무 많으니 용역업체 측에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니 '일찍 출근하는 것은 너희 사정'이란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롯데손해보험빌딩의 규모는 층당 약 500평이며 지상 21층 지하 2개 층이다. 지하에 입점한 수입 상가를 담당하는 6명을 제외하고 17명이 21층 전체 청소를 맡고 있다. 이들 중 지하에서 근무하는 6명의 노동자들은 한 달에 단 3일만 쉴 수 있다.
김아무개씨는 "지하에서 일하면 수입상가가 문을 여는 토요일과 국경일에도 나와서 일한다"며 "한 달에 한 번 대청소하는 일요일에도 나오니까 한 달에 단 3일 쉬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지하가 아닌 층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매달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쳐 5일 이상 쉬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즉 이들에게 주어진 휴일은 3일에서 5일 안팎인 셈. 심지어 지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지상층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보다 더 많이 일하는데도 별도의 초과수당도 없이 모두 75만 원만 받는다.
근로계약서· 임금내역서도 받지 못한 청소노동자들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를 본 적도 없었고,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매달 월급고지서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기자가 확인한 이들의 월급 내역들은 A4용지에 출력되어 있었다. 이마저도 노조에 가입 후인 1월 27일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최아무개씨는 "월급고지서를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사측에서는 '월급이 너무 적은데 다른 사람이 볼 경우 (당신이) 창피할까 봐 일부러 안 주는 것이다'고 말하더라"며 "우리가 나이도 많고 무식하다고 무시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근무량에 비해서 월급이 너무 적다"며 월급 인상을 요구해왔다. 물론 지난해 4월 이후부터는 월급이 3만~5만 원 정도 올랐다.
하지만 이들은 "1년씩 계약을 맺는 업체 특성상 매년 계약이 끝난 후 퇴직금과 연차수당을 같이 지급해 왔는데 이 연차수당을 미리 지급한 것일 뿐 월급이 오른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실제 월급내역에는 약 5만 원의 금액이 '연차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지급되어 있었다.
이와 관련, 용역업체 측은 "노동자들이 월급이 너무 적다고 해서 연차수당을 미리 드려서 금액을 올려줬다"고 해명했다. 실질적인 임금 인상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용역업체 휴:콥 "노조가입 때문에 해고한 것 아니다"휴:콥 측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노조 가입 때문에 갑자기 해고한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 만료 때문"이라며 "2010년 8월부터 롯데손해보험 측과 6개월 자동계약 연장인 상태에서 도급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노동자들과 체결한 근로계약도 만료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조측의 교섭 요구와 관련해서는 "회사 내부 사정 때문에 교섭장에 나가지 못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휴:콥 측은 자산관리사업부 박아무개 이사가 노동자들을 만나 노조 탈퇴를 강요했다는 주장과 관련, "(현장) 확인차 청소노동자들을 방문한 것"이라고 밝혔다. "차후 롯데손해보험과 도급계약이 성사된 후 현재의 노동자들과 재계약을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고용승계문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롯데손해보험 총무팀의 한 관계자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휴:콥 측과의 계약은 2010년 1월 31일부로 만료된 상태이며 현재 새로운 청소 용역업체 입찰을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김태완 공공노조 서경지부 조직부장은 "지난 9일 교섭을 위한 만남을 요청했으나 사측에서 당일 교섭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현재 민주노총 롯데손해보험지부와 간담회를 열어 이번 사안에 대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재우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