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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무개 전 한신건영 경리부장이 지난 2008년 6월 한 법무법인에 법률상담한 내용. 이는 정 전 부장이 검찰수사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관련된 실마리가 들어 있다.
 정아무개 전 한신건영 경리부장이 지난 2008년 6월 한 법무법인에 법률상담한 내용. 이는 정 전 부장이 검찰수사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관련된 실마리가 들어 있다.
ⓒ 법무법인 위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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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의혹 사건의 핵심 증인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가장 신뢰했던 인물로 알려진 전직 경리부장은 지난 7일 열린 6차공판에서 검찰의 편에 서서 진술했다.

정아무개 전 부장은 "제가 돈을 누구에게 가져다 줬는지 어디에 썼는지 진술한 적이 없다"며 '9억 원 사용처 진술'을 특정하지 못하면서도 "9억여 원을 만들어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는 주장을 끝까지 유지했다.

그렇다면 왜 정 전 부장은 이렇게 모순되게 진술하거나 "나도 당황스럽다"고 토로하면서도 검찰 공소사실 내용만은 고집스럽게 인정한 것일까?

한신건영 부도 직후 '법률상담'... "공금횡령으로 고발될까요?"

이러한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가 발견됐다. 한신건영이 부도한 직후인 지난 2008년 6월 정 전 부장이 한 법무법인과 법률상담한 내용이 그것이다.

<오마이뉴스>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 전 부장은 지난 2008년 6월 4일 법무법인 '위민'의 '무료법률상담'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건설경기가 악화돼 한신건영이 최종 부도처리(2008년 3월)된 지 3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본인의 실명으로 글을 올린 정 전 부장은 먼저 "투자금의 배액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2007년 1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원금만 7억2000만 원 정도 투자하게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정 전 부장은 "그러던 중 회사가 부도나고 (한만호) 사장이 매번 '네가 자금담당이니까 회사가 어려워지면 네가 먼저 니 돈을 챙겨라'고 말씀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 환급(부가세)분을 챙기게 되었다"고 자신의 채권을 일부 회수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 전 부장의 채권 회수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도 이러한 의심을 품고 법률상담을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

정 전 부장은 "그때 제가 돈을 빌려준 곳은 한신건영이었고, 제가 적을 두고 있던 곳은 태원디엔씨였고, 제가 환급분을 챙긴 곳은 케이씨산업개발이었다"고 말했다.

즉 정 전 부장이 7억여 원을 투자한 곳은 한만호 전 대표가 대표이사로 있던 한신건영이지만, 자신은 태원디엔씨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케이씨산업개발에서 채권을 회수해갔다는 얘기다.

정 전 부장은 "바지사장으로 되어 있던 사람들이 현재엔 자기들이 현 회사 사장인 것처럼 행동하고 내용증명으로 회사 공금 횡령 도주사건으로 고발조치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며 "이것도 회사공금 횡령에 속하나요?"라고 물었다.

이어 정 전 부장은 "실제 주인(한만호 전 대표)도 가만히 있고 현재 제가 받을 돈이 아직 3억 원 가까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 이것이 공금횡령으로 고발조치될 수 있을까요?"라며 "고발조치된다면 어떻게 조치해야 할까요?"라고 법률상담을 요청했다.

검찰에 가장 적극 협력한 김씨, '공금횡령에 따른 손배' 소송 압박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정 전 부장이 자신의 채권을 회수한 곳으로 지목한 케이씨산업개발의 '바지사장'이 한 전 대표의 운전기사였던 김아무개씨라는 점이다.

한 전 대표의 운전기사였던 김씨는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김씨와 전직 부사장인 박씨에게 수억 원을 전달했고, 한 전 총리의 비서 출신인 김아무개씨에게 2억 원을 받으러 갔다는 인물이다. 그는 검찰조사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해온 인물이다. 

정 전 부장은 한신건영이 부도한 직후 김씨의 행보와 관련해 "한만호 사장이 (김씨에게) 케이씨산업개발 시행물건인 아이맥스 상가 분양계약서를 하나 써주었다"며 "그런데 부도가 터지고 한신건영이 시공사로 되어 있으니 자기(김씨)가 사장처럼 이리저리 다니면서 자기가 받은 물건을 챙기려는 속셈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정 전 부장은 "그러면서 (김씨가) 회사공금 횡령 도주사건에 대해 700억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알려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결국 케이씨산업개발의 대표였던 김씨가 4억여 원의 채권을 회수해간 정 전 부장에게 '공금횡령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겠다고 압박했다는 얘기다.

법무법인 '위민'에서는 답변을 통해 "채권자로서 변제를 받은 것이라면 영수증을 회사쪽에 써주어야 하고 회계장부상으로 변제한 것처럼 처리해야 할 것"이라며 "채권을 줄 때의 증서나 입금증, 계좌내역 등 증거들도 꼼꼼히 챙겨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위민'은 "채권자 중 한 명에 불과한 귀하가 다른 채권자들에 우선해 먼저 채권을 변제받아갔다면 형사적으로 횡령죄는 안 될지 모르나 민사적으로 사해행위취소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위민'은 "형사처벌은 안 받더라도 다른 사장들이 귀하를 상대로 사해행위취소소송이라는 소송을 걸면 귀하기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와 같은 점들을 감안하여 처신을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한만호쪽 "검찰에 약점 잡힌 것 같다"... 정 전 부장 "공금횡령 조사 없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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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부장이 법률상담한 내용을 보면, 그는 한신건영이 부도난 직후 한 전 대표의 운전기사이자 '바지사장'이었던 김씨로부터 '공금횡령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압박을 강하게 받았다. 이것은 지난해 검찰조사에서 정 전 부장의 '약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정 전 부장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피하고 나머지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검찰수사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와 김씨가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 '같은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검찰은 9억여 원이 한 전 총리에게 건너갔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정 전 부장이 검찰에 제출한 채권회수목록에는 5억 원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4억 원'의 차이를 해결해준 인물도 정 전 부장이다. 그는 검찰에 처음 출두한 다음날 4억 원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 검찰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 한만호 전 대표는 6차공판에서 "(정 전 부장도) 검찰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제가 9억 원이라고 얘기하니까) 나중에 4억 원을 더 찾아낸 것"이라며 "9억 원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한 전 총리에게 갔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를 접견해온 김정범 변호사는 "한 전 대표가 '정 부장이 검찰에 약점이 잡힌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진짜 검찰에 약점을 잡혔다면 민사문제보다는 형사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 전 부장은 15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당시 김씨가 자신의 결재를 얻지 않고 채권을 회수해간 것에 관련해 공금횡령 소송을 제기했지만 제가 승소했다"며 "이후 김씨를 무고죄로 고소하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말려서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정 전 부장은 "채권을 회수해간 케이산업개발은 한신건영의 자회사이고 한 전 대표가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다"며 "검찰에서도 공금횡령건에 관련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면서 검찰 조사건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태그:#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 #한신건영, #전직 경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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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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