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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14일 오후 7시]

 

공공연하게 "이쯤에서 그만 접자" 목소리

 

여당발 개헌론이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이재오 특임장관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가 개헌 애드벌룬을 연일 띄웠지만 당내에서조차 공감대 확산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개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힘을 잃는 반면, "이쯤에서 그만 접자"는 얘기는 공공연히 나오는 실정이다.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는 14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최고위원들과의 조찬 모임을 열었다. 당내 개헌특위에 대한 최고위원들의 반응이 부정적인 만큼 공식회의에 앞서 최고위원들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두 사람의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나경원 최고위원만이 개헌특위를 최고위 산하에 두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 정두언·서병수 최고위원은 "개헌 논의에 반대한다"며 개헌특위 설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조찬 모임에 불참한 홍준표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 공개석상에서 개헌특위 불가론에 쐐기를 박았다.

 

홍 최고위원은 ▲ 의회가 개헌에 나설 만한 국민적 열망이 없다 ▲ 개헌에 대한 당내 정치세력 간의 조정과 타협이 전혀 없다 ▲ 일본은 1946년 개정 헌법으로 선진국까지 갔다 ▲ 개헌을 할 경우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명시한 조항까지 건드릴 수 있는데 보수정권이 북한 정권의 실체를 인정할 자신이 있냐는 논리들을 열거했다.

 

홍 최고위원이 초반부터 분위기를 다잡자 비공개회의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논의가 없었다. 그는 회의가 끝난 뒤 "내가 오늘 (개헌 추진이 어려운 이유를) 다 정리해버리지 않았냐? 개헌특위를 (최고위원회가 아니라) 정책위 산하에 두는 것은 김무성 원내대표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정치권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국민들 눈에 안 들어오는데..."

 

개헌 추진에 부정적인 한 최고위원도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김종필 전 국무총리 관련 일화를 예시하며 개헌불가론을 피력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합정부를 할 때 가장 많이 질문을 받았던 얘기가 '여당의 일원으로서 국가보안법 개폐에 협조해달라'는 요구였다. 김 전 총리는 '보안법을 그대로 놔둬도 먹고사는 데 지장 있는 사람 한주먹도 안 된다'는 답변으로 받아쳤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국민여론이 뒷받침하지 않아 보안법 개폐가 실패했고, 한나라당도 반사이득을 보지 않았나? 개헌 얘기도 지금 정치권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국민들 눈에 안 들어오는데 '여야 합의만 되면…'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이해 안 된다."

 

친이계가 당내 개헌논의 구도에서 고립된 것도 당 지도부가 개헌특위 구성 문제의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자체적으로 파악해보면, 개헌에 공감하는 여당 의원들의 수가 171명 중 1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면서도 "문제는 60~70명에 이르는 친박계와 소장파 의원들은 개헌 논의에 전혀 응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만 놓고 보면, 개헌파가 여당의 과반수를 점유했지만 국회의 개헌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200석에는 턱 없이 모자란다. "여야가 개헌 협상에 착수하면 야당 내에서도 개헌 지지파가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주장도 실체가 없는 상태다.

 

여당 지도부는 당장 홍준표의 반대론을 넘을 만한 대응 논거도 마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는 각각 "(특위구성은) 빨리 할 문제가 아니다", "설득 작업을 더 하겠다"고 말했지만 '오늘 안 되면 내일도 모레도 안되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친박계, '이재오, 개헌논의하자면서 왜 상대방 자극하냐'

 

이재오 특임장관에게 개헌의 총대를 쥐어놓고 뒷짐지고 있는 청와대의 모호한 태도도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1일 TV간담회에서 "여야가 머리만 맞대면 (연내 개헌은) 복잡하지 않다"고 운을 뗐지만, 2주 가까이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개헌이 대통령 임기 중에 이뤄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정권의 명운을 걸 만한 사안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친이계 의원들사이에서도 "청와대도 개헌의 로드맵이 없는 것 같은데, 여당의원 몇몇이 뭉친다고 개헌론이 힘을 받겠느냐?"는 냉소적인 의견이 없지 않다.

 

한편으로, 이재오 장관의 섣부른 언론플레이가 계파 갈등의 골을 깊게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10일 트위터에 "나는 개헌을 위해서 가장 강력한 상대와 맞서겠다. 나는 다윗이고 나의 상대는 골리앗"이라고 썼는데, 다음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성경을 여러 번 읽어봤지만 골리앗이 여자라는 말은 없다"며 박근혜 겨냥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이 자리에서 "2년 전부터 대통령에 나온다든지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일하는 건 국민들을 많이 피곤하게 한다"는 말을 해서 친박계를 화나게 했다. 특정인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 행보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개헌 논의하자면서 상대방을 왜 자극하느냐"는 반응을 보였고, 친이계의 한 의원도 "이 장관의 발언이 다소 지나쳤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장관은 14일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골리앗은 하나로도 벅차다. 어설프게 따라하지 말라"며 언론 보도를 탓하는 멘션을 올렸지만, 해명의 타이밍을 놓쳤다는 해석이 많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지금까지는 이 대통령이 개헌 얘기를 했고, 이재오 장관도 직접 나섰기 때문에 친이계도 '한번 해보자'고 결집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다수 최고위원들이 당내기구 설치도 반대하는 분위기에서 더 이상의 개헌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그:#이재오, #홍준표,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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