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더아모의집'이 있는 안성 일죽면으로 이사 온 것은 2003년도. 민애(가명)양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생.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지고 난 후 이사를 왔다. 사실 이사를 온 게 아니라 이사를 오게 만들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
학교라도 다니게 하려고 전학시키다성남에서 살던 민애양 가정은 한 때 단란했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서로의 원망 때문에 민애양의 부모가 헤어지기 전까지는. 그 과정에서 상처가 된 민애양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이에 내가 그 소녀와 아버지를 안성으로 이사시켰다. 어떻게든 학교를 다니게 하려고.
처음 안성 일죽초등학교 6학년으로 전학시켰다. 성남의 초등학교와 일죽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서류를 꾸미고 부탁을 했다. 서류가 복잡하고, 결석일수가 많아 어려웠지만 다행히 전학이 되었다. 전학을 하고나서도 적응하기가 힘들어 한동안 다니다가 결국 다니지 않았었다. 다시 민애양을 설득을 해서 학교를 보냈다. 일죽초등학교 교장을 만나 사정을 해서 겨우 출석일수를 맞추고, 졸업장을 받았다. 다른 동기생들보다 한 살이 많은 나이였다.
다행히 일죽 중학교를 진학한 후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학교생활을 훌륭히 해나갔다. 우리 더아모의집에 놀러오던 마을 친구들의 배려가 컸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무사하게 마쳤다. 일죽중학교와 일죽고등학교 교사들도 민애양과 그 가정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꿈도 못 꿔문제는 대학 진학 때였다. 가고 싶은 대학은 그저 꿈이었다. 등록금은 고사하고 당장의 생활비도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주변 지인들과 어떻게 해서든 대학 등록금을 마련한다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등록을 한다고 해도, 나머지 생활비와 학비 충당에 자신이 없었던 민애 양은 일찌감치 포기를 했다.
지난해 5월, 안성 시내에 있는 한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더아모 15인승으로 이사를 시켰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30만 원(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원룸이 왜 그리 비싼지)이었다. 민애양은 PC방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해보려는 심사였다. 하지만, 그 달 그 달 넘기기도 벅찼다.
이런 순간에 민애양 아버지는 뭐하고 있었을까. 민애양 아버지는 평생을 막노동판에서 일한 사람이다. 부부가 헤어지기 전까지는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 아파트를 사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었다. 하지만, 부부가 헤어지고난 후 날개가 꺾였다. 심한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그 후 안성 일죽으로 이사 왔지만, 한 번 꺾인 날개는 펴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나가는 인력사무실 막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결국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동안 일거리가 없었다. 배운 게 그것밖에 없으니 다른 것도 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겨울을 보내다보니 생활비는 고사하고, 월세도 못 맞추어 살던 원룸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다행히 민애양 아버지가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월세 방 한 칸을 다른 곳에 얻게 되었다. 결국 올해 2월에 다시 안성 일죽면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를 한 방 한 칸 월세도 100 만원에 월세 20만 원이었다. 이 날도 나는 더아모 15인승으로 이사를 함께 했다.
가난이 개인적 무능력으로만 혹자는 "자신이 의지만 있으면 무엇인들 못하랴. 모두가 게을러서 그렇지"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 세월 가난에 찌들다보면 무엇을 이뤄본 경험보다 좌절한 경험이 많게 된다. 무엇을 해보려고 해도 너무 막막하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데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사람에겐 그저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뿐이다. 계속 좌절되는 경험만 하다보면 '어차피 해봐도 안 될 것이다'라는 깊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절망뿐이다.
개인적인 게으름과 무능력으로만 가난을 바라본다면 맞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집을 한 채 지어도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이 한 번 삐끗해서 가난의 나락으로 전락하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전무하다. 사회적 안전망은 너무나 미미하다.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다시 일어서려 해도 모든 사회적 여건이 손발을 묶는다. 개인적으로 초인적인 의지를 가진 몇 몇 소수만이 그 가난에서 벗어나곤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가난보다 더 지독한 좌절감으로 인해 가난은 가난을 부른다. 가난을 대물림하는 아픔은 이어진다.
나는 묻는다. 이 사회가 과연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인가. 사회적 복지는 고사하고 사회적 안전망조차 미약한 이 나라가 서민들의 나라인가. 빈익빈 부익부가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의 소리를 외면하는 곳이 과연 OECD국가란 말인가. 오늘도 어느 한 곳에서 가난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그래서 전적으로 개인적 책임으로만 부가되어 좌절감에 허덕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한민국을 그대는 보고 있는가.
나는 사실 민애 양에게 "그래도 사회에는 희망이 있어. 힘을 내"라고 말해줄 용기가 없다. 아니 미안해서 그렇게 말을 못하겠다. 이 사회에서 40대가 되었으면 기성세대이니 그 책임이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그냥 미안해서 같이 아파할 뿐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나눔만 나눌 뿐이다. 이들에게 과연 희망은 없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더아모의집'은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이라는 뜻으로 <문명 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등의 저자 송상호가 열어가는 집의 이름이다. 현재 안성 금광면 시골 마을 흙집에서 살고 있으며, 홈페이지는http://cafe.daum.net/duamo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