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엊저녁에 꿈을 꾸었는지 잠결이었던지 꿈에서조차 잊을 수 없는 할머니하고 무릎을 맞대고 앉아 한참을 도란도란 얘기를 했다. 뒤는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속옷은 흠뻑 젖었고 아내의 하는 말이 뭔 잠꼬대를 그렇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꿈에 할머니 오셨냐고 묻기에 기억을 더듬어보니 할머니가 오신 게 맞다. 그런데 뭔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대충 샤워만 하고 사진관으로 출근을 했는데 아내가 곧 뒤따라왔다. 아침을 잘 안 먹는 사람이라 도시락을 싸왔는데 솥 째로 가지고 왔다. 구수한 냄새가 밥은 아닌 것 같아 뭐냐고 물었더니 시래기나물밥이란다. 어젯밤 할머니가 우리 큰손자 시래기나물밥 먹고 싶다하니 해주면 안 되겠냐고 하시더란다. 아마도 어젯밤 내가하는 잠꼬대를 들었나보다.
이름만 들어도 정다운 홍천, 나는 방앗간 집 손자였다. 방앗간 집이나 양조장집이나 방귀께나 뀌고 살았던 점을 감안하면 시래기나물밥이 뭔지, 배추죽이 뭔지 모를 만도 한데 사정이 그렇지를 않았다. 바로 할머니 때문이었다. 아무리 방앗간을 하고 쌀이 남아돈다고 해도 보릿고개에 남들은 배추 죽에 시래기죽을 끓여먹는데 우리만 등 따습고 배부르게 이밥을 해먹을 수 없다는 말씀이셨다.
할머니의 덕분으로 이맘때쯤이면 그래도 있는 집이라고 죽까지는 아니어도 시래기나물밥은 곧잘 해먹었던 것이다. 아마도 딸아이가 대보름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듣고 평소 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웠던 것을 잠꼬대로 했나보다. 아내는 생전 안하던 남편의 잠꼬대를 듣고 시래기나물밥을 했고.
그저 고마울 뿐이다. 평소에도 아내의 성화로 일 년이면 서너 번씩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다녀오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해도 나와 돌아가신 할머니의 교감 속에 아내가 끼어들었다는 게 신기하다. 아내가 할머니 얼굴은 못 뵈었지만 할아버지께는 증손녀를 안겨드렸으니 할아버지 할머니께 남다른 생각도 있으리.
이래저래 다 좋은데 참기름 간장 한 숟가락 넣고 썩썩 비빈 시래기나물밥을 먹다 말고 흐르는 이 눈물은 무엇인가? 쯧쯧, 아침부터 정말 못났다. 참 못났다. 허허!
그리운 할머니.어둠 속 저 멀리 컹컹 개 짖는 소리할머니는 툇마루에 호롱불 받쳐 들고외양간 앞 어린 손자 바지 내리고 앉아달빛이 무섭다고 앙앙대며 칭얼대는데 아궁이 앞 검불에 엎드려 있던 누렁이어느새 옆에서 구수한 밤참을 기다리고할머니 하품 한 자락에 호롱불은 일렁일렁밤공기 서늘한지 문풍지도 떨고 있네.조그마한 손가락 할머니 젖가슴 파고들며도롱도롱 코골던 어린 손자 단잠을 깨어보니동네 마실 가셨는가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세월은 흘러 귀밑에 흰 머리가 웬 말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