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국제팀 김덕련 기자를 이집트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지난 11일 카이로에 도착한 김 기자는 무바라크 30년 철권통치를 끝낸 이집트의 분위기와 혁명 이후 새롭고 민주화된 미래를 준비하는 이집트 사람들의 열정을 생생하게 전해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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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흐리르 광장만 보고 이집트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카이로에서 만난 한 교민이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타흐리르 광장이 중요한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오늘날 이집트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이곳에 오기 전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4일(현지 시각) 카이로에 있는 시장 세 군데를 돌며 사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장 탐방은 어눌하긴 하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인 사미(42)씨와 함께했습니다. 사미씨와 동행한 건 시장에는 영어를 거의 못하고 아랍어만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외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는 현지인끼리 대화하는 과정에서 더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취재는 제가 사미씨에게 미리 주제를 전해주고, 사미씨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이야기하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대화 도중 사미씨가 제게 내용을 전하면 그에 따라 필요할 경우 제가 추가 질문을 주문했습니다. 외신 기자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꽤 있다는 이야기가 많아, 저는 상황에 따라 관광객처럼 행동했습니다.
"그가 우리 돈을 가져가다니... 슬프고 화가 난다"
먼저 제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엘 마아디 역 부근의 시장을 찾았습니다. 찬거리를 비롯한 생필품을 주로 파는 자그마한 시장입니다.
움라가야 할머니는 시장 한쪽 구석에서 타메이야(잘게 썬 고기를 완두콩과 섞어 반죽한 다음 기름에 튀겨낸 음식)를 팔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타메이야를 사 먹으며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할머니는 "(1월 25일 시위가 시작된 후) 3주 동안 장사가 거의 안 돼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냥 나와서 앉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날 전 '지난 3주간 장사가 거의 안 됐다(혹은 일이 없었다)'는 말을 세 시장에서 여러 번 들었습니다.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에 대한 찬반과는 상관없이 이 말은 공통적으로 하더군요.
할머니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음 대통령? 누가 될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무바라크가 사임하던 날엔 "마음이 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30년간 같이 있었으니 친구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렇게 돼서 가슴이 아팠다"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무바라크가 재임 시절 어마어마한 돈(7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요)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이야기를 알고 계신 걸까요? 궁금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이야기는 나중에(무바라크 사임이 결정된 후) 들어서 알고 있다"며 "그가 우리 돈을 가져가다니…. 슬프고 화가 난다"고 답하셨습니다. '친구 같은 대통령'이 쫓겨난 것에 대한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부정축재에 대한 배신감이 공존하는 모습은 타흐리르 광장과는 또 다른 이집트였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도 제 어깨를 톡톡 치며 무바라크 비판에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무바라크 쪽으로 번지자, 작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고무대야에 물고기를 담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주변의 한 할머니가 큰소리로 이야기하셨습니다. "관광객이 아니라 기자 같다. 기자에게 이야기하지 말라." 지나가던 한 남자도 "우리는 다 좋다. 이집트는 괜찮다."라며 저희를 경계했습니다. 그러자 움라가야 할머니를 비롯한 이쪽 할머니들은 물고기 할머니의 말을 반박했고, 골목은 잠시 할머니들 간의 말다툼으로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본의 아니게 분란을 일으켜 죄송한 마음을 뒤로하고 인근에 있는 샤이(이집트를 대표하는 차) 가게로 갔습니다. 샤이 가게는 남자들이 차를 마시고 물담배(시샤)를 피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정보가 모이는 동네 사랑방인 셈이지요.
낡은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천장에서는 선풍기가 날갯짓을 하는 2평 남짓한 샤이 가게를 운영하는 아브드 엘 레헴 아저씨는 "무바라크가 돈 먹은 건 알지만 그래도 괜찮다"며 "대통령이니까 큰돈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제게 물담배를 권하며 "그렇지만 그 밑에 있는 놈들이 많은 돈을 받아먹은 건 참을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잠시 후,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을 지지하는 사미씨와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지지하는 레헴 아저씨와 종업원, 그리고 남루한 옷차림의 20대 손님 사이에서 정치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샤이 가게가 떠나갈 정도로 목소리가 커지자 한 할아버지가 끼어드셨습니다. "엘바라데이건 무사건 다음 대통령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요즘 일자리가 없어서 너무 힘들다. 가난한 사람에겐 일자리가 최고다."
이집트의 공식 실업률은 10%에 조금 못 미치지만 실제로는 2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30%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샤이 가게에서 나온 후 사미씨는 "무사는 성격이 약해 나라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은 엘바라데이가 이집트를 오래 떠나 있었고 그의 자녀들이 외국에 사는 것을 싫어한다"고 전했습니다. 자신 같은 지식층(사미씨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습니다)과 달리 보통 사람들은 엘바라데이의 장점을 알려 하지 않고 무사만 바라본다는 주장이지요.
아므르 무사는 현재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무바라크 밑에서 외무장관을 했지만 '무바라크와는 다르다'는 이미지를 구축했고, 대중적 인기도 높습니다. 2006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 축구대회 결승전이 카이로에서 열렸을 때 10만에 가까운 관중이 경기장에 들어오는 무사 총장에게 환호를 보냈다고 하지요.
또한 무사는 무바라크와 달리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고분고분하지 않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날 지하철에서 만난 한 남자는 "무사가 대통령이 되면 이스라엘과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이와 달리 엘바라데이는 친미 성향의 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흐리르 광장 시위 초기에 귀국한 후 서구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서민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3주간 우리 가게에서 물건 산 손님은 단 2명"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카이로 시내 동쪽 지역인 이슬람 지구의 칸 알 칼릴리 시장입니다. 14세기 말에 세워진 이 시장은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으로 규모가 매우 큽니다.
시장 입구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는 시각장애인을 만났습니다.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하루 5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이 사람은 자신의 소속이 바뀌면서 생긴 행정기관 간의 알력 때문에 작년 7월부터 월급을 못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길을 안내해주고 돌아서며, 현재 이집트 상태로 봤을 때 이 사람의 임금 체불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시장에 들어서니 "니 하오", "곤니치와", "안녕하세요" 같은 말로 저를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그렇지만 관광객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위대와 정부의 대치가 길어지면서 이곳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였습니다.
한 상가 2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인 1922년부터 가업으로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무함마드는 "1월 25일 이후에도 문을 열었지만 3주간 물건을 산 손님은 단 2명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지만 2명이 맞답니다. 옆에 있던 무함마드의 동생은 "그래도 1층 가게들은 2층보다 좀 나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무함마드는 비관적이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도 정치 문제 때문에 관광객이 끊긴 적이 있었지만, 그 후 손님이 더 많이 오는 때가 찾아왔다"는 것이지요.
무함마드는 "무바라크 사임 후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예전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렇지만 무바라크가 돈을 빼돌렸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 문제는 답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북적이는 시장... 다른 쪽에선 파업 확산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아타바 시장입니다. 칸 알 칼릴리 시장과 타흐리르 광장 사이에 있는 이 시장은 가구 거리, 청과물 거리 등 거리별로 특정한 물품을 파는 곳으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여성들도 꽤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위대와 정부 간의 대치가 심할 때는 여성들이 시장에 나오는 것도 자제했는데, 무바라크 사임 결정 후 시장에 나오는 여성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이것만 보면 카이로가 완전히 일상을 회복한 것 아닌가 하고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에 더해 그동안 문을 닫았던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도 다시 문을 열었고, 타흐리르 광장으로 바로 이어지는 사다트역도 정상화됐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집트는 여전히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1987년 한국에서 6월항쟁 후 노동자대투쟁이 이어진 것처럼, 이집트에서는 노동자 파업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역사적 상황이 다른 만큼 과거의 한국과 오늘의 이집트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닮은 모습을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열 남자의 즉석 정치 토론... "시민 괴롭힌 전 정부 인사 처벌해야"
어쨌건 저는 아타바 시장 안에 있는 한 명함 제작소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본래 1~2명을 인터뷰한 후 다른 가게로 옮길 생각이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명함 제작소 안에 있던 두어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 가게 앞 통로를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대화에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인원이 10명까지 불어났습니다.
제 존재를 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은 일손을 놓고 자신들만의 정치 토론에 집중했습니다. 주요 주제는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와 '새 정부가 주력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였습니다. 이날 저를 안내한 사미씨도 물론 토론에 적극 참가하더군요.
"아므르 무사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 "아니다. 엘바라데이다.", "탄타위 국방장관은 대통령감이 아니다" 등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한 남자는 마지막까지 무바라크 편에 섰던 술레이만 부통령을 옹호했다가 다른 사람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음 대통령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지만, 새 정부의 과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무바라크 정부 밑에서 시민을 괴롭히고 나랏돈을 빼돌린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술레이만을 옹호한 남자 빼고).
1시간 가까이 계속된 이들의 토론이 끝날 무렵 제가 자리를 뜨려 하자 한 사람이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자신들의 대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외신 기자가 자기들 생각을 멋대로 재단해서 보도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다음 지도자에 대한 의견은 서로 다르지만,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난 정부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데는 거의 동의한 것으로 이해했다. 내 말 맞나?"
"오케이. 그대로 전해달라."
이날 각기 분위기가 다른 세 군데의 시장을 돌며, 타흐리르 광장과는 다른 이집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겪은 것이 또 다른 이집트의 전부는 물론 아니겠지요. 그렇지만 광장만을 주목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부각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다른 이집트에 대한 탐구를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만 타흐리르 광장 시위의 의미도 더 잘 드러날 것입니다. 그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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