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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태국에서 바라본다.
 라오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태국에서 바라본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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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재배지로 이름을 떨쳤던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아침을 맞는다. 호텔 베란다에 나오니 먼 산 위로 해가 조금 떠올라 있다. 메콩강을 바로 코앞에 두고 라오스에서 떠오르는 해를 타이랜드에서 구경한다. 아침 안개와 함께 구름에 살짝 잠겨 있는 해의 모습이 멋있다. 메콩강에서는 아침 안개가 피어나고 있다. 춥지 않을 정도의 서늘한 아침 바람에 몸을 맡긴다.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는 동안 온 동네에 안개가 점점 짙게 깔린다. 안개 속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일품이다.

아침을 해결하고 다음 여행지를 향해 떠난다. 사진으로만 본 목이 길어 '롱넥(long neck)'이라 불리는 부족이 사는 매홍손(Mae Hong Son)이라는 마을이다. 이곳까지 와서 그 유명한 부족을 못 본다면 말이 안 된다. 어젯밤에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는데 400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먼 거리다. 산길이기 때문에 하루에 가기에는 무리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그쪽 지방이 나와 있지 않다. 물어물어 가면 되겠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자그마한 자동차에 몸을 싣고 무작정 떠난다.

가는 길에 버마(미얀마)로 넘어가는 관문이 있는 매사이(Mae Sai)라는 마을에 들르기로 했다. 시간 있겠다, 작긴 하지만 자동차도 있겠다. 무서울 것이 없다. '가다 못 가면 쉬었다가지'라는 유행가 가사를 읊으며 길을 떠난다. 단체 관광이 아닌 우리만의 여행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매사이에 도착했다. 관광버스가 두 대 주차해 있는 것을 보면 이곳도 관광코스 중 하나인 것 같다. 버마로 들어가는 국경에는 커다란 문이 세워져 있다. 국경 근처에서 주차할 곳을 못 찾아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천천히 버마 국경 쪽으로 걷는다. 이곳에 중국 사람이 많이 살아서일까? 한자로 쓰인 간판이 많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금을 파는 가게도 많이 보인다.  

버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관문에 도착하니 그렇게 복잡하지도 그렇다고 한가하지도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 사람, 자전거나 오토바이 그리고 자동차로 국경을 넘는 사람이 줄지어 서 있다. 손에 서류 한 장씩 들고 서둘러 관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젊은 남녀도 보인다. 군인은 보이지 않는다.

동남아를 여행하다 보면 국경을 자주 넘게 된다. 중무장한 군인이 없는 국경을 건널 때마다 우리나라를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육지로 국경을 손쉽게 넘나들 수 있을까? 몇 년 전만 해도 휴전선을 넘어 중국과 유럽까지 기차가 다니겠구나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런 계획이 있었느냐는 듯 남북의 대치상황은 끝을 달리고 있다. 우리 후손이 한국 지도를 그리면서 북한을 제외한 남한, 반쪽만 그릴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나 혼자만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버마로 넘어가는 관문. 국경을 평화롭게 넘나드는 것이 부럽다.
 버마로 넘어가는 관문. 국경을 평화롭게 넘나드는 것이 부럽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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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쓰여진 간판과 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한 매사이 (Mae Sai). 버마와 태국을 오가는 관문이 있는 동네다.
 한자로 쓰여진 간판과 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한 매사이 (Mae Sai). 버마와 태국을 오가는 관문이 있는 동네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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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이(Mae Sai)를 떠나 다시 매홍손(Mae Hong Son)을 향한다. 산을 넘고 넘는 운전을 다시 시작한다.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도로는 산을 돌고 돈다. 내 일생에 이렇게 많은 돌고 도는 산길을 운전하는 것은 처음이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길을 묻고, 산길에서 열리고 있는 시장에서 상인에게 길을 물으며 매홍손을 향해 차를 달린다. 지도도 없이 대충 손짓 발짓하며 영어로 길을 물어 가니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

조금 큰 동네에 들어섰다. 길을 물으려 식당에 차를 세우고 주인아줌마에게 길을 묻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물으니 친절히 대답해 준다. 영어도 잘한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두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것 같다. 주차장에 서 있는 그들이 타고 온 지프 두 대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곳에서 숙소를 정할지 더 갈지를 망설이는데 조금 전에 길 안내를 해 주었던 사람이 지도를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건네며 가지고 가란다. 매홍손까지 가는 길이 자세히 표시된 지도다. 아무래도 지도 없이 떠나는 우리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여행하는 사람은 다른 여행객의 어려움을 아는 것일까?

천마를 얻은 기분이다.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지도가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내가 지도책을 보며 가리키는 방향으로 마음 놓고 핸들을 돌린다. 오늘은 중간에서 일찍 자고 갈 생각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다음 도시를 목표로 자동차를 달린다. 그러나 도시에 도착해도 호텔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계속 운전한다. 지도책에 의하면 앞으로 거의 100킬로미터를 더 달려야 호텔이 있는 다음 동네에 갈 수 있다.

첩첩 산중에서 대나무를 잘라내는 사람들. 이곳에서 대나무는 건축물과 가구에 유용하게 쓰인다.
 첩첩 산중에서 대나무를 잘라내는 사람들. 이곳에서 대나무는 건축물과 가구에 유용하게 쓰인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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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도로에서 만난 장터.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넘쳐난다.
 산길 도로에서 만난 장터.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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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마음은 급하지만, 산길이라 마음껏 달리지도 못한다. 이 속도로 가면 2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가는 산길에 리조트라는 사인이 있다. 기쁜 마음에 주저 없이 리조트 골목길을 오른다. 차 한 대 간신히 다닐 좁고 가파른 언덕길이다. 조금 올라가니 더 올라가지 못한다는 안내판이 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주춤거리는데 청년이 언덕에서 뛰어 내려오더니 손짓으로 우리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전화를 건다. 주인은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다. 주인과 전화로 흥정하고 짐을 푼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다. 숙소에는 산속의 리조트답게 널찍한 나무를 잘라 만든 통나무집이다. 산속의 해는 일찍 진다고 했던가? 해는 일찍 넘어갔어도 아직 어둠이 깔리지 않은 주위를 산책한다. 깊은 산속 특유의 바람 냄새가 싱그럽다. 

우리가 묵는 숙소에서 한 단계 높은 산등성이에 집이 있다. 우리를 보고 나온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영어도 잘하는 편이다. 자기 아들이 리조트를 경영하는데 지금은 잠깐 방콕에 가 있다고 한다. 혼자 적적하게 지내서인지 우리를 붙잡고 놓지 않는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기묘하게 생긴 돌덩이 하나를 우리에게 건넨다. 이곳에서 캐낸 화석이 있는 돌이라며 기념으로 가지고 가라고 한다. 유별나게 돌을 좋아하는 나는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시하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한다.   

텔레비전을 켜니 위성방송은 있는데 한국 방송이나 심지어는 영어 방송도 없다. 계속 채널을 바꾸니 놀랍게도 위성 텔레비전에서 북한 방송이 깨끗하게 잡히고 있다. 북한 방송이라고는 가끔 한국 뉴스 시간에 보여주는 도전적이고 웅변조로 뉴스를 전달하는 아나운서밖에 없었는데 북한 방송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볼 방송도 없고 호기심도 발동하여 북한 방송에 채널을 고정한다.

지난번 열린 전당대회 소식을 중심으로 뉴스, 일기 예보 등을 방송한다. 전당대회 소식에는 김정일과 김정은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김정일이 왼손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모습도 적나라하게 방영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서 만든 6·25에 관한 연속극이다. 중국 군인이 한국 전쟁에 참가해 북조선을 위해 희생하며 인간애를 발휘하는 내용을 한국어 자막과 함께 방영하고 있다.

북한 특유의 '내일'을 '래일'로 표기하는 두음 법칙 없는 자막, '아내'를 '안해'라고 표기하는 이상의 작품 '날개'에서 보았던 한국어 표기가 시선을 끈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두음법칙을 만들어 맞춤법을 복잡하게 만들었나 하는 점이다. 이름에는 '류', '리' 등 두음법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북한에서도 위성을 통해 세계에 방송한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 알았다. 북한 뉴스와 북한 사람의 삶을 북한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조금 다른 각도에서 북한을 볼 기회도 가졌다. 아마도 북한 주민이 남한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듯이 남한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북한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해본다. 불순한 생각일까?

언론통제는 편협한 사람을 양산한다. 북한에서 남한의 소식을 통제 없이 접하고, 남한에서도 북한 소식을 제한 없이 듣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는 나는 너무 순진해서 일까?

리조트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저녁까지 해 준 수줍은 산골 아가씨와 아내.
 리조트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저녁까지 해 준 수줍은 산골 아가씨와 아내.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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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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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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