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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고 단단한 돌들이 둘러싼 우도의 돌담길은 여행자에게 특별한 느낌을 들게 한다.
 까맣고 단단한 돌들이 둘러싼 우도의 돌담길은 여행자에게 특별한 느낌을 들게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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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중에 제주의 아우섬 우도에 들른 것은 이성은 작가의 사진집 <숨비소리> 때문이었다. 우도에 사는 해녀들의 힘겨우나 굿굿한 삶을 담은 책이었는데, 숨비소리의 주인공인 우리나라의 해녀들은 이웃나라 일본의 해녀와 달리 겨울에도 바닷속에서 물질을 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도를 향해 제주의 어느 해안가를 달리다가 'ㅈ·ㅁ녀의 집' 이란 간판을 보았다. 궁금해서 안에 들어가 물어보니 해녀란 뜻이고, 좀녀라고 읽는단다(좀녀는 잠녀(潛女)의 제주 사투리). 바다에서 물질하는 여자를 해녀라고 부른 것은 일제 침략기 때 일본인들이 해녀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통용된 것인데, 원래 제주도에서는 좀녀라고 불렀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해녀들이나, 제주 바닷가에 세워진 해녀상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너무 젊고 예쁘게만 그려졌기 때문이다. 해녀의 진짜 모습은 등허리가 구부정한 할망들이지만 내 어머니같고 외할머니같아 정겨운 분들이기도 하다. 그분들의 강인한 겨우살이가 보고싶고, 춥다고 몸을 사리는 내 게으름에 일침을 놓고 싶어 제주 성산항에서 우도에 가는 배에 자전거와 함께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이란 뜻의 '올레'가 떠오르는 정다운 돌담 길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이란 뜻의 '올레'가 떠오르는 정다운 돌담 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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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옛 정취가 살아있는 곳

성산항에서 10여분 배를 타고 우도에 내리니 미역 냄새 같기도 하고 아무튼 바다 내음이 진하게 나는 무언가가 바다 바람을 타고 내 몸을 훝어간다. 이 냄새의 정체는 우도의 해안가를 달려갈 때 알게 되었다. 선착장에 가뿐하게 내리면 우도를 여행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의 교통수단이 기다리고 있다. 2시간 짜리 투어 버스 여행에서 부터 스쿠터, 자전거, 요즘엔 작은 전기차까지 대기 중이다. 크지 않은 섬이라 도보여행을 해도 좋은 곳이 우도다.    

본 섬인 제주와 달리 어느 방향을 향해 달리건 부담이 없는 우도를 자전거와 함께 돌아본다. 까맣고 야무지게도 생긴 화강암 돌담들이 길 양 옆에서 도열하듯 여행자를 맞아준다. 제주의 돌담은 참 쓰임새가 많기도 하다. 집이나 논밭을 지키고 목장은 물론 무덤가에서도 든든히 보초를 서고 있다. 제주사람들의 삶은 물론 죽음까지도 같이 하는 그런 존재다. 어느 무덤가 돌담 밑에 피어난 화사한 색깔의 야생화들이 눈에 띈다. 봄의 전령사가 망자에게 선사하는 꽃다발같아 무덤이 암울하거나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집을 지키는 든든한 우도의 개들은 끈으로 묶어놓지 않아도 가출을 하지 않는다.
 집을 지키는 든든한 우도의 개들은 끈으로 묶어놓지 않아도 가출을 하지 않는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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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에서 마주친 어느 집 돌담길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아 그 길을 달려가 보았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라는 올레의 뜻이 느껴지는 정겹기 그지 없는 돌담길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길에 너무 취했나, 달리다 보니 그만 대문이 없는 집 마당까지 불쑥 들어가게 되었고 예의 집을 지키는 개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내게 세상의 개들은 두 종류가 있다. 자전거 탄 여행자를 보고 짖는 개와 그렇지 않은 개.
더구나 이 집 개는 목줄도 없는 자유방임형 개다. 다행히 사진을 찍으면 점잖게 포즈까지 취해주는 성질이 순한 개를 만났다. 내가 사는 도시에선 이렇게 개를 풀어놓으면 집을 떠나 유기견이 되기 십상인데, 우도의 자유로운 개들은 자기가 사는 곳이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인 걸 아는가 보다.
해녀 할망이 바닷속에서 온몸으로 건져올린 해초 '몸'의 진한 향기가 섬의 초입 항구에까지 난다.
 해녀 할망이 바닷속에서 온몸으로 건져올린 해초 '몸'의 진한 향기가 섬의 초입 항구에까지 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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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닷가에서 해녀를 만나다

고대하던 겨울 바다의 해녀 할망을 만난 건 우도의 작은 새끼섬 비양도에 들어서면서다. 연륙교로 이어진 비양도에 들어서니 아까 우도항에서 진하게 풍겨왔던 바다 내음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 냄새처럼 진한 색깔의 해초들이 비양도 입구에 널부러져 할망들의 손질을 받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코를 대고 맡아보니 정말 저 바닷속의 생생한 기운이 느껴진다. 여러 번 맡아볼수록 다른 향이 느껴져 자꾸만 코가 간다.

숨까지 길게 쉬며 냄새를 맡아보는 내가 우스웠는지 할머니 한 분이 웃으시며 이게 이맘 때 바다에서 나는 '몸'이라는 해초이며 비양도 앞바다에서 할망들이 따온다고 말해 주신다. 보통 '모자반'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데 비슷하게 생긴 제주의 또다른 해초 '톳' 다음에 나는 것이란다. 식당에 가면 메뉴 이름만으로도 제주 고유의 음식인 것을 알 수 있는 '몸국'에 들어가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우도 바닷가의 주연은 여자인 해녀 할망이다.
 우도 바닷가의 주연은 여자인 해녀 할망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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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아래 '몸'을 다듬으시던 할머니의 말씀대로 비양도에 건너가보니 정말 해녀들이 저멀리 바다에서 무언가를 이고지고 헤엄을 치면서 바닷가로 들어오고 있다. 아무리 낮에는 영상의 기온이고 겨울 바닷속은 따듯하다고 하지만, 파도 소리만 들어도 차가움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사진집 <숨비소리>에서 보았던 겨울 해녀를 실제로 눈 앞에서 가까이 마주하게 되다니.  

해녀 할망들이 바닷속에서 온몸으로 건져온 '몸'을 커다란 그물속에 넣고 바닷가로 들어오면 아저씨들이 우루루 마중을 나와 '몸'을 실어 부지런히 육지로 나른다. 막 바다에서 나온 '몸' 특유의 날것의 향이 제주 산간의 풍경처럼 원초적이다. 저 깊은 바닷속이 보이는 것 같고 말이 달리는 억새풀 가득한 초원의 들판이 떠오르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옛부터 잔칫날이면 돼지고기를 넣고 푹 끓인 국물에 '몸'을 넣은 몸국을 손님들에게 대접한다고 한다.   

지팡이를 한손에 지고 바닷가의 분주한 작업현장 옆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긋이 쳐다보는 분이 계셨는데, 이젠 퇴역하신 오래된 전직 해녀 할망이시다. 그런데 이분이 알려주신 '몸'의 또다른 이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마사미족'. 기억해 놓았다가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도 도무지 나오지 않는 이름이다. 제주의 사투리는 고려시대 몽골의 영향에서 나온 말들도 많다는데, 그 어원이 몹시 궁금하다.

물질을 마치고 널어놓은 옷과 그물에서 해녀의 강인하고 끈질긴 삶이 느껴진다.
 물질을 마치고 널어놓은 옷과 그물에서 해녀의 강인하고 끈질긴 삶이 느껴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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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육지 여성들에게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이라는 말이 있다면, 제주 해녀들에게는 '물 아래 삼 년, 물 우이 삼 년'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운명 같고 굴레 같은 해녀들의 척박한 삶이 느껴지는 속담이다. '좀년 애기 나 사을이믄 물에 든다'고 할 정도였다니 이 섬에서 태어난 여성의 운명은 참 가혹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렇게 겨울 바다에서 굿굿하게 물질을 하는 해녀 할망들의 모습을 보니 당당하고 끈질긴 삶의 모습에 감동하기도 하고, 연로하신데도 새벽같이 일어나 열심히 일을 하시려는 내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찡하다. 일을 마친 해녀 할망들은 갓 건져온 해초로 '몸국'을 끓여 드시면서 지친 몸에 기운을 차린다고 한다. 제주에 가면 '몸'을 한움큼 사서 코를 대고 숨을 쉬어보라, 해녀 할망의 진한 삶이 가슴깊이 느껴질 것이다.  

하얀색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참 아름다운 서빈백사 해변.
 하얀색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참 아름다운 서빈백사 해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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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축소판 우도

우도는 작은 섬이지만 제주도를 꼭 닮은 축소판 같은 섬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감탄밖에 안 나오는 하얀색 모래사장에 에메랄드 바다가 유혹하는 서빈백사 해변, 주상절리라고 불리는 웅장한 절벽의 해안가와 절벽속의 동굴, 멋진 바다 풍광과 함께 일출을 볼 수 있는 등대가 있는 우도 일출봉 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멍이 숭숭 뚫린 까만 돌담이나 대문없는 집들 등 제주에선 사라지고 있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풍경도 많다.   

가까에 가서 만져보면 모래가 까만 들깨같은 느낌이 나 재미있는 이름도 독특한 검멀레 해변, 바닷가의 검은 암석 위에 일렬로 나란히 서있는 물고기 사냥의 고수 가마우지들의 모습도 이채롭다. 소의 여물통이라는 뜻인 '촐칸이'가 와전되었다는 우도의 비경 '톨칸이' 해변은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어 파도와 몽돌이 어우러지며 내는 소리를 감상하며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쉬운 건 소를 닮았다는 섬 우도에 오면 꼭 마주치던 정겨운 소들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구제역이 옮길까봐 소들을 어디 안 보이는곳에 꼭꼭 숨겨 두었나 보다. 풀밭 위에 놓인 소의 것이 분명한 푸짐한 똥이 다 반갑다. 섬 곳곳에서 노랑 유채꽃이 피어나는가 하면 붉디 붉은 동백꽃이 절정이다. 완연한 봄이 오면 우도는 또 어떤 모습일까 벌써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2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우도, #제주, #해녀,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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