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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회의 형식을 빌린 정치행사였다. 정치를 내용으로 삼은 축제였다. 무거운 말, 가벼운 이야기, 진지한 눈빛, 심각한 표정 등이 가로세로로 엮인 진보집권 판짜기이기도 했다. 지난 18일(금) 저녁 5․18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열린 '<진보집권플랜> 출판기념 조국․오연호 북콘서트'(이하 북콘서트)가 그랬다.

 

7시30분에 시작된 북콘서트는 가수 김원중과 함께 무대와 객석 구분없이 '직녀에게'를 부르고 나서 끝이 났다. 시간은 10시. 객석에서 '한 번 더' '앙코르-앙코르'가 터져 나왔다. 좀 더 길게 끌고 가더라도 열기는 식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계획했기 때문에 그렇게 끝을 냈을 뿐이었다.

 

뒤풀이 장소를 헌팅하려는 일부 관중들의 눈빛이 매서웠다. 주최 측은 긴급하게 회의를 가졌다. 수용할만한 공간도 없고, 돈도 넉넉하지 않다, 뒤풀이 장소 공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총명하게(!) 찾아오는 분들을 막지는 말자는 것이 회의의 결론이었다. 헌터들의 매서운 눈총을 뒤로 하고 주최 측은 도망치듯이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총명한 헌터들은 주최 측보다 먼저 뒤풀이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북콘서트는 뒤풀이에서 계속됐고, 다음날 새벽 세시까지 이어졌다. 공식적으로만 그랬다. 못내 아쉬운 인사들은 아예 떠오르는 해를 보고서야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조국 교수는 새벽 1시까지 자리를 지키다 다음날 일정을 걱정한 주최 측의 강압에 못 이겨 숙소로 '강제추방' 당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는 세시까지 맥주잔을 기울이다 자진 철수했다.

 

함께 행사를 준비한 새사연과 오마이뉴스광주전라 식구들, 그리고 대학생 자원봉사팀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모른다는 듯이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외박이나 다름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이들은 아내의, 혹은 엄마․아빠의 휴대전화 벨소리를 겁내지 않았다. 귀가시간을 재촉하는 전화가 오면 "여보세요, 응… 진보집권플랜 행사 마치고 한 잔하고 있는 중…"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당당함을 뽐냈다. 이렇게 말하면, 놀랍게도 전화저편에서도 간단히 포기했다.

 

북콘서트는 세 가지 면에서 특별했다.

 

첫째는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15,000원이라는 '거금'을 내야 하는 데도 행사 일주일 전에 예약자가 300명에 육박해 주최 측은 긴급하게 계좌를 닫아야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광주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는 경험만으로 말한다면, 이 정도의 참여 열기는 이전까지 없었다. 주최 측 추산 참여인원은 500명이 조금 못되는 숫자였다.

 

전반적으로 참여자들의 얼굴이 새로웠다는 점이 두 번째로 특별했다. 이 특별함에는 여성이 많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으며, 고등학생도 보였고, 가족단위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성인 남성 등 전통적인 참여자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북콘서트가 특별한 점 세 번째는 조직화된 세력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분위기를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시민사회 진영 활동가들이라 할지라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해 차분히 북콘서트에 집중하는 식이었다.

 

축제와 같은 정치행사, 웃으면서 분노하고 노래하면서 심각하기, 조직화되지 않은 갑남을녀들의 자발적인 참여…. 그 내용과 질감에서 북콘서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된 2008년 5월의 촛불문화제와 형제지간인 것으로 보였다. 사그라진 것만 같았던 광장의 촛불이 북콘서트라는 방에서 부활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광장의 열기를 불씨 삼아 우리들의 촛불들은 방에서 내공을 다지고 있다는 징표였다. 진보가 집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세력, 인물, 전략을 찾는 것이 내공의 내용물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북콘서트는 광장과 방, 열정과 이성, 직관과 전략, 몸의 실천과 마음의 성찰이 서로를 보완하고 완성시켜주는 촉매제였다.

 

광주 북콘서트는 서울에 이어 두 번째였다. 오는 25일 대전에서 열리고, 4월 말 즈음에는 제주도에서 판을 펼칠 예정이다. 책을 한 권 더 써서 진보집권플랜을 좀더 정밀하게 짜보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조국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진보집권플랜 2>는 쓰고 싶지 않다. 그냥 집권하면 되지, 책을 쓸 이유가 무엇인가." 함성과 박수가 나왔다.

 

지난 주 금요일 광주에서 열린 '<진보집권플랜> 출판기념 조국․오연호 북콘서트'는 맞추고자 하는 과녁을 명확히 제시했다. 북콘서트는 지금 시위를 당길 힘을 모으고, 정밀한 가늠자를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주드림> 21일자에도 함께 실립니다. 글을 쓴 이정우씨는 진보집권플랜 광주 북콘서트를 공동기획하고 행사에서는 사회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태그:#진보집권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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