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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거센 퇴진 요구에 직면한 리비아의 42년 독재자 카다피가 22일(현지 시각) 시위대를 "쥐"에 비유하고 지지자들에게 시위대에 맞서 싸울 것을 촉구했다.

 

<가디언>과 <알 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카다피는 이날 국영 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나는 전사이자 혁명가이며 끝까지 혁명의 지도자로 남을 것"이라며 "이곳은 내 나라이며 이 땅을 떠나지 않고 남아서 저항할 것이고, 순교자로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시위대를 미국과 알 카에다 등의 적들을 위해 일하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쥐(greasy rats)"로 비하했다. 이와 관련, 카다피는 리비아의 불안정이 계속되면 아프가니스탄처럼 미국에 점령될 수 있고 "알 카에다에게 기반을 제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시위대가 환각제를 복용했다고 매도하고,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다피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시위대를 "공격하라", 시위대가 항복할 때까지 "리비아를 가가호호 청소하라"고 주문했다.

 

카다피는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 사실도 부인했다. 카다피는 "나는 무력을 사용하라는 명령도, 발포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며 "내가 그렇게 할 때 모든 게 불탈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1989년) 톈안먼 광장(에 모인 사람들)보다 중국을 보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또한 1989년 당시 중국 정부가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할 때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않았다며 다른 나라가 리비아 문제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퇴진 거부한 카다피, 신발 던진 시위대

 

시위대를 '외세의 앞잡이'로 폄하한 카다피의 이날 연설은 1986년 미군의 폭격으로 파손된 수도 트리폴리의 한 건물(리비아 정부는 이 건물을 수리하지 않고 반미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앞에서 진행됐다. 카다피가 이날 연설을 통해 무력 진압 강도를 더 높일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리비아에서 시민 학살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가디언>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카다피는 자신이 궁지에 몰린 것을 안다"며 "마치 상처 입은 짐승 같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 신문은 "카다피가 연설할 때 시위대가 커다란 TV 화면을 향해 신발을 집어던지는 모습이 목격됐"으며, "국영 TV는 환호하며 깃발을 흔드는 카다피 지지자들 모습을 내보냈다"고 보도했다.

 

한편 카다피 일가가 장악하고 있는 핵심 군 부대들은 전투기와 헬기 등을 동원해 시민을 계속 학살하고 있다. 또한 용병까지 가세한 친정부 민병대도 이 학살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저격수들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하고, 진압군과 민병대가 시위대를 쫓아가 사살하면서 트리폴리는 시신들이 여기저기 방치된 참극의 현장으로 변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또한 이처럼 폭력이 난무하면서 시민들이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먹을거리와 마실 물 부족에 직면했다는 소식도 들어오고 있다.

 

유혈 진압이 계속되자 이를 비판하며 정부를 이탈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아부델 파타흐 유네스 리비아 내무장관은 카다피의 연설이 방송된 후 카다피 정권을 떠날 뜻을 밝히고, 국민의 "정당한 요구"에 동참하라고 군에 촉구했다.

 

또한 카다피 정권의 시민 학살을 비판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각국의 리비아대사관 주변 등에서는 유혈 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가 벌어졌으며 미국, 독일 정부 등에서도 카다피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튀니지·이집트군과 다른 리비아군... 부족 갈등과 연계된 극한 내전 우려도

 

그렇지만 미국은 30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몰아낸 이집트인들의 시위 때와 달리, 리비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는 모양새다. 무바라크 정부가 친미 노선을 견지했고 이집트군이 미국으로부터 1년에 13억 달러라는 원조를 받고 있던 것과 달리, 카다피 정권은 오랫동안 반미 노선을 취했고 리비아군 역시 이집트군이 미국과 맺었던 것과 같은 관계를 맺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1만 9000명의 리비아군 중 일부는 시위대에 합류했지만, 핵심 군 부대들은 카다피 일가와 측근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군대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지 않은 튀니지나 이집트와 달리, 리비아군이 트리폴리 등에서 유혈 사태를 벌이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그러나 이번 시위의 중심축인 동부에서는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를 비롯해 토브룩 등의 도시들이 시위대 손에 넘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도시들에서는 군인들이 카다피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시위대 편에 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카다피 퇴진 요구 시위가 부족 갈등 문제와 연계되면서 리비아가 극한의 내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벤 알리와 무바라크가 사임하면서 유혈 사태가 일단 막을 내린 튀니지 및 이집트와 달리 카다피가 끝까지 버티면서 피바람이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태그:#카다피, #리비아, #아랍 민주화, #시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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