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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의 시선을 받으며 사는 목이 긴 여인
 관광객의 시선을 받으며 사는 목이 긴 여인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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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 맞는 아침이다. 어젯밤에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떠들던 새소리가 뜸하다. 조금 이른 새벽을 산책한다. 산이 높아서일까, 아래로 보이는 산봉우리 밑으로 구름이 깔렸다. 숲 속으로 난 작은 길도 이슬에 옷을 적시며 걸어본다. 이름 모를 산에서 자라는 꽃이 아름답다. 자유를 맘껏 누리며 자란 꽃이라 그런지 사람의 손으로 키운 정원에 있는 꽃들과는 비교되지 않게 신선하다. 착하디 착하게 생긴, 산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마련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난다. 좋은 사람들이다.

산속에 피는 꽃은 정원에서 피는 꽃보다 활기가 넘친다.
 산속에 피는 꽃은 정원에서 피는 꽃보다 활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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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길을 돌고 돌아가며 운전을 한다. 산 정상에 오르니 이곳에서 다니며 흔히 보던 가게에서 원주민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차분하게 구경하면서 지낼 시간이 없다. 사진 몇 장 찍고 긴 목을 가진 원주민 마을을 가려면 거쳐야 하는 파이(Pai)라는 동네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산정상에서 내려오니 낡은 다리가 하나 있고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메모리얼 다리(Memorial Bridge)라는 푯말이 있다. 무엇을 기념하는 다리일까? 안내판을 읽어 본다. 2차 대전 때 일본이 버마를 공략하려고 이곳 주민을 강제 동원해 놓은 다리라고 한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 침략의 흔적이 이곳까지 있다. 일본 군인이 전쟁을 위해 건설한 다리가 관광명소가 되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주위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과 옷감 등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장사하는 엄마와 같이 나온 원주민 옷을 입은 아이들도 관광객 사이를 오가며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이 동남아를 공략하기 위해 주민을 동원해 지은 다리. 지금은 관광객 명소가 되었다.
 일본이 동남아를 공략하기 위해 주민을 동원해 지은 다리. 지금은 관광객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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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원주민 아이들.
 다리 위에서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원주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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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이 멀다, 내일까지 치앙마이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다시 서둘러 파이(Pai)라는 동네로 향한다. 파이는 제법 큰 도시다. 외국인도 제법 보이고 시내에는 볼거리가 많은 것 같다. 곳곳에 관광객이 모여 볼거리를 즐긴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주유소에 들려 기름만 넣고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 '롱넥마을'이 있는 매홍손(Mae Hong Son)을 향해 열심히 자동차 페달을 밟는다.

드디어 400여 킬로미터를 달려 '롱넥마을(long neck)'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른 마을에 비해 특별한 것이 없다. 여느 곳과 다름없이 물건 파는 상점만 즐비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나이 든 사람이 돈을 내라며 따라붙는다. 한 사람에 250바트(거의 만 원 정도)를 내라고 한다. 영어로 쓴 종이를 보여주는데 이 돈은 여기에 사는 목이 긴 원주민을 위해 쓰이는 돈이라고 한다.

타일랜드 관광객은 그냥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가는데, 특별한 안내판도 없는 곳에서 종이 한 장 들고 돈을 내야 다리를 건널 수 있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나만 돈을 내야 하느냐고 계속 따지며 실랑이하다 그냥 돌아나왔다.

나와서 생각하니 그래도 먼 이곳까지 목이 긴 원주민을 찾아왔는데 그냥 가기는 그렇다. 다시 다리를 건너려는데 길을 막는다. 옆에 영어하는 청년에게 도움을 받아 왜 돈을 받는지, 돈을 받으면 받는 사람의 신분증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면서 다시 실랑이한다. 통역하는 젊은이는 외국 사람에게만 돈을 받는 것에 미안한 감을 느끼면서도 나보고 양보하라는 식으로 조언한다. 적지 않은 두 사람 입장료(?) 500바트(2만원이 약간 못되는 금액)를 주고 들어간다. 완전히 눈뜨고 도둑맞은 기분이다.

자그마한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니 원주민 물건을 파는 구멍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다른 구멍가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목에 링을 두르고 있는 아가씨들이 물건을 판다는 것이다. 입구에서 실랑이한 때문인지 먼 길을 달려와 보는 목이 긴 아가씨들을 보아도 생각만큼 호기심이 나지 않는다. 목이 긴 원주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을 이용하여 외국에서 온 관광객을 상대로 앵벌이를 한다고 표현하면 너무 폄하하는 것일까? 하여간 먼 길을 달려온 관광객의 한 사람으로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이미 돈도 뜯겼으니 사진이라도 많이 찍을 생각으로 셔터를 계속 누른다. 기타를 치는 목이 긴 아가씨, 핸드폰을 들고 잡담하고 있는 목이 긴 아가씨, 이곳에서 일생을 살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목이 긴 꼬부랑 할머니 그리고 목에 장식처럼 링을 끼우고 관광객 틈을 뛰어다니는 어린아이까지 열심히 사진에 담는다. 수많은 관광객 틈에서 그들만의 전통을 유지하며 목이 긴 모습으로 살고 있다. 갑갑할 것 같은 링을 목에 두르고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관광객을 맞고 있다.      

어린 아이가 목에 링을 하고 기념품을 팔고 있다.
 어린 아이가 목에 링을 하고 기념품을 팔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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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찍었으니 돌아가는 길만 남았다. 열심히 돌고 도는 도로를 따라 산을 넘으며 운전을 한다. 치앙마이까지 오늘 저녁에 돌아가는 것은 무리다. 중간에 잘 곳을 찾으며 해 떨어진 깊은 산속을 운전한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숙소는 나오지 않아 걱정하는데 리조트라는 간판이 보인다. 무조건 자동차를 세우고 들어선다. 대여섯 사람이 앞뜰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다. 아직 완성된 리조트가 아니다. 중간에는 건물을 지으려고 쌓아둔 목재와 벽돌도 있다.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의외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청년이 우리를 맞는다. 자기 아버지가 막 시작한 리조트라 한다. 자기는 독일에 살고 있는데 잠시 놀러왔다고 소개한다.  우리가 리조트에서 지내는 첫 손님이라며 맥주와 저녁을 주며 우리를 반긴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젊은 청년이 열심히 우리를 위해 통역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좋은 사람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깊은 산속에서 맞본다.

여행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도움과 친절을 받을 때가 잦다. 언젠가는 나도 보답할 날이 있을 것이다.

태국 북부를 돌아보려면 수많은 산을 돌고 돌아야 한다.
 태국 북부를 돌아보려면 수많은 산을 돌고 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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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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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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