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을 이끌어낸 것을 자축하고 있다.
ⓒ 김덕련

관련사진보기


서울로 돌아온 후 어느새 5일이 지났습니다. 저는 지난주 토요일(19일) 낮 카이로를 떠나 일요일(20일) 저녁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무바라크가 물러나기 직전 카이로에 도착한 후 이집트에서 보낸 8일은 역사의 현장에 서 있음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30년 독재자를 몰아낸 기쁨이 담긴 경적 "띠띠 띠띠띠 띠띠띠띠 띠띠", 덩실덩실 춤추고 '인증샷'을 남기며 승리를 자축하던 타흐리르 광장의 사람들, 새 정부의 과제를 격정적으로 토론하던 아타바 시장의 상인들, '30년 친구 같던 대통령'이 쫓겨난 것에 대한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부정축재에 대한 배신감이 공존하던 움라가야 할머니,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생긴 영광의 상처를 스스럼없이 보여주며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의 무바라크 퇴진 요구 시위 현장을 안내해준 압달라,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물과 전기를 주는 게 좋은 정부라던 쓰레기마을 사람들.

취재하면서 만난 이러한 사람들과 장면들은 제 머릿속에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25일)은 그 기억들 중 못다 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아랍어 주소 밑에 한글 발음까지... 10명 중 3명 꼴로 문맹

카이로에 첫발을 디딘 11일(현지 시각) 오후, 저는 숙소에 짐만 내려놓고 바로 타흐리르 광장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제가 머문 숙소를 운영하시던 교민 분께서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광장에 갔다가 숙소로 잘 돌아올 수 있겠느냐고. 저는 숙소 홈페이지에 있는 '영문' 주소를 수첩에 적어두었으니, 지하철에서 내려 그걸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제게 아랍어로 적힌 숙소 주소를 건네셨습니다. 영어를 못 읽는 택시 기사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랍어 주소 아래에 한글로 발음을 적어주시더군요. "문맹률이 높은 편이에요. 아랍어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아랍어를 못 읽는 택시 기사를 만나면 이 발음대로 읽어주면 될 겁니다."

그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전 아랍어를 읽지 못하는 택시 기사를 실제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랍어로 주소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면 바로 출발하던 다른 기사들과 달리, 그 택시 기사는 "아랍어 할 줄 아느냐?"고 어눌한 영어로 묻더군요. 제가 고개를 저은 후 "영어 할 줄 아느냐?"고 묻자, 그 기사는 더 강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주소가 적힌 종이를 한동안 쳐다보던 그 택시 기사는 주변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더니 제게서 종이를 건네받아 그 사람들에게 보여주더군요. 다른 사람들이 주소를 읽어주자(길을 알려주는 손짓도 없었고 자세히 길을 일러주는 모양새도 아니었습니다) 택시 기사는 차를 출발시켰습니다.

이 기사처럼 아랍어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사실 이집트에서 그리 만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이집트의 문맹률은 28.6%(남성 17%, 여성 40.6%)에 달합니다(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 자료).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공용어인 아랍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이집트인 10명 중 3명 꼴이라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짧은 체류 기간이었지만 제가 이집트에서 느낀 교육 및 문화 격차 때문입니다. 현지에서 오래 생활한 교민들 중엔 "웬만한 대학을 나온 이집트인들은 대부분 영어와 아랍어를 잘하고, 상층은 외국어 3~4개를 기본으로 구사한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여럿 있더군요. 상층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까지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생인 이집트 사람들이 저보다 영어를 훨씬 자유롭게 구사하는 건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이집트인을 ▲ 어릴 때부터 별도의 교육을 받아 여러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상층 ▲ 대학을 나와 영어와 아랍어를 할 줄 아는 계층 ▲ 아랍어만 읽고 쓸 줄 아는 이들 ▲ 아랍어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이러한 교육 수준 차이는 빈부 격차 문제와 연관돼 있습니다. 이집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450달러 정도인데 상위 10%는 그것의 6배가 넘는다고 합니다(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 자료). 이집트인 중 40% 이상이 하루에 2달러로 생활하고 있다는 보도들도 많이 나왔고요.

무바라크 퇴진을 이끌어낸 시위에서 주목받은 것이 바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입니다. 무바라크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젊은 층과 전문직 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SNS를 적극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이집트인이 500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왔지요. 이집트의 인터넷 이용자가 인구의 약 20%인 1500만 명 정도(2010년 3월 기준)라는 걸 감안하면 페이스북 사용자가 상당히 많은 셈이고 영향력도 그만큼 강하다고 봐야겠지요.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메헤르 아저씨 가족. 샤이를 마시고 있는 맨 왼쪽 사람이 메헤르 아저씨.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메헤르 아저씨 가족. 샤이를 마시고 있는 맨 왼쪽 사람이 메헤르 아저씨.
ⓒ 김덕련

관련사진보기


SNS뿐만 아니라 인터넷 사용하지 않는 80%까지 함께 봐야

그렇지만 여기서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의 힘에 주목하는 것만큼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건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인구의 80%가 아닐까요? 이들 또한 이집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난 택시 기사처럼 아랍어도 읽고 쓰지 못하는 28.6%의 문맹 인구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겠지요.

이집트에 있는 동안 당나귀 수레를 여러 번 봤습니다. 카이로의 변두리나 인근 농촌에서만이 아닙니다. 카이로 도심에서도 자동차들 사이로 당나귀 수레가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요.

그걸 보며 '무바라크 이후 새로운 이집트를 만드는 과정은 페이스북과 당나귀 수레의 2인3각과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직면한 과제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도 구사할 줄 알고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조류를 적극 수용해 대외적으로 시위를 주도한 이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 구현 및 고학력자의 실업 해소 같은 것만이 아닙니다.

아이쉬(이집트인의 주식인 빵 이름)를 비롯한 식량 가격 급등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저학력·저소득 계층,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월급과 처우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각지에서 시위와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이 절박하게 느끼는 문제를 푸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아울러 "다른 이집트 사람들에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물과 전기를 달라"는 쓰레기마을 사람들 같은 이들의 숙원도 풀어줘야겠지요.

이들은 페이스북과는 거리가 멀고 당나귀 수레처럼 초라해 보이지만 엄연히 이집트의 일부이자 다수를 차지하는 계층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외면당한다면, 서민들에게는 '새로운 이집트'가 피부로 와 닿지 않겠지요. 제가 이집트에 있는 동안 광장의 목소리만을 전하기보다는 여러 시장, 빈민촌, 농촌 등을 다니며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빈부 격차, 교육·문화 수준 차이, 그동안 각기 다르게 살아온 궤적 등을 감안하면 '페이스북과 당나귀 수레의 2인3각'은 물론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같은 이집트 국기를 들고 있지만 이들 중엔 '우리는 같은 부류가 아니다'라고 느낄 이도 적지 않을 터이고, 중산층부터 실업자까지 모인 시위대 사이에서도 새로운 이집트에 대한 상이 달랐을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어깨 걸고 '무바라크 퇴진'을 함께 외친 이들이 독재자를 끌어내린 후 분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예견된 것이었지요.

'페이스북'과 '당나귀 수레'로 상징될 이들이 무바라크 사임 이후에도 계속 연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집단들 사이의 거리감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길 바라는 것도 무리겠지요. 그렇지만, 새로운 이집트 건설의 성패는 그러한 2인3각을 얼마나 잘해낼 것인가에 따라 상당 부분 좌우되지 않을까 합니다.

16일(현지 시각)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노동자들.
 16일(현지 시각)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노동자들.
ⓒ 김덕련

관련사진보기


거리 청소 강조한 이집트 사람들... 교민들 "작지만 의식 변화 있는 듯"

카이로를 떠나기 전날 밤 몇몇 교민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난 후 거리 곳곳에서 이집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는 모습을 봤다. 오늘도 이 근처에서 봤는데, 솔직히 놀랐다. 여기서 6년 넘게 살았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 본다. 이번 시위 성공을 계기로 현지인들 사이에서 작지만 의식의 변화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다른 분들이 이 말에 대체로 공감하는 가운데, 또 다른 교민 한 분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 청소하면 그 옆을 지나가면서 휴지를 버리는 모습을 훨씬 많이 봤는데, 요즘 달라진 것 같긴 하다."

이 말을 들으며 저는 몇 차례 아랍어 통역을 해준 사미(42)씨와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난 압달라(34)가 떠올랐습니다. 압달라는 저를 안내하던 도중 제게 사람들이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사미씨도 카이로에서 제게 몇 차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고요.

압달라와 사미씨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다소 의아했습니다. '아니, 뭘 청소하는 걸 자꾸 강조하고 그러나, 그런 모습은 나도 타흐리르 광장 등에서 여러 번 봤는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요.

교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압달라와 사미씨가 왜 그렇게 청소하는 모습을 제게 강조했는지 조금은 이해됐습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이집트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해 달라는 뜻이었겠지요.

이집트 사람들은 큰 산을 하나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앞에는 더 힘들 수도 있는 관문들이 줄줄이 남아 있습니다. 대안 세력은 아직 약하고, 군부를 전적으로 믿는 건 위험하며, 무바라크 정권을 떠받치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던 이들에 대한 처벌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뤄질지도 의문입니다. 새로운 이집트 건설이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못하면 일각에서 '그래도 무바라크 때가 좋았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자를 무너뜨린 성공 경험이 이집트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세계의 관심은 이웃나라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로 상당 부분 옮겨갔지만, '페이스북'과 '당나귀 수레'가 호흡을 잘 맞춰 2인3각을 멋지게 해낼지도 주의 깊게 지켜봤으면 합니다.

16일(현지 시각)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민들이 거리를 단장하고 있다.
 16일(현지 시각)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민들이 거리를 단장하고 있다.
ⓒ 김덕련

관련사진보기



태그:#이집트, #무바라크, #시민혁명, #페이스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