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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게 됩니다. 지난 1월에 신설학교 개설요원으로 미리 발령을 받아서 뜻을 같이 하는 교사들이 모여서  우리가 꿈꾸던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기자 주>

혁신학교로 지정된 우리 학교(서울 강동구 소재)에 모인 선생님들과 벌써 여러 날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든 학교가 학년말 휴가기간이라 교사들이 '41조 연수'를 내고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날마다 학교에 나옵니다. 법정 휴일에도 나옵니다. 퇴근 시간이 따로 없어서 밤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닙니다.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신설학교라서 개교 준비로 다른 학교보다 일이 서너 배 많고 힘든 일이 많은데도 선생님들은 즐겁고 신나게 일합니다.

일 많고 승진점수 없는 혁신학교, 왜 교사 몰리나

혁신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앞에 붙는 말이 '일이 많아 교사가 힘든 학교'입니다. 게다가 일은 많이 하면서 '승진점수가 없는 학교'입니다. 이런 이유로 일반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혁신학교 신청을 반대하고 있고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 온 교사들은 승진 점수 없고 힘든 일이 많은 혁신학교를 스스로 원해서 찾아왔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자원했지만 교사 정원이 정해져 있어 떨어진 교사도 많습니다. 떨어진 것을 아쉬워합니다. 교사들은 왜 일이 많아 힘들고 승진점수도 없는 혁신학교를 스스로 원해서 찾아오는 것일까요?

교사들은 혁신학교에 자원해서 온 까닭에 대해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을 하고 싶어서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그동안 근무했던 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할 수 없었다며 혁신학교에 오면 아이들을 중심에 둔 교육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사지선다형 일제고사 모범답안에서는 3번이 정답으로 제시될 테지만,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1번이 정답인 학교가 대부분입니다.
▲ 학교는 누구를 위한 곳일까? 사지선다형 일제고사 모범답안에서는 3번이 정답으로 제시될 테지만,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1번이 정답인 학교가 대부분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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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랬습니다. 서른 해 가까운 제 경험으로 봐도 학교는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교육'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업적과 실적을 쌓는 일에 아이들을 이용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늘 말하지만, 말만 그렇지 진짜 주인은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구호들만 난무할 뿐 지금도 학교는 학생을 위한 곳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교사는 학교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을까요? 지금까지 학교는 대부분 관리자인 교장의 지시에 따르는 역할만 해 왔습니다. 학교운영은 각종 위원회를 통해 '의견수렴'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의견수렴은 말뿐이고 형식만 갖추고 있을 뿐, 암암리에 교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30여 년 넘게 교사 노릇을 해도 업무내용을 발표할 때 빼고 직원회의 시간에 손들고 일어나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발표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사들은 회의를 하면서, 그동안의 교직경력동안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맘껏 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 날마다 회의, 또 회의 교사들은 회의를 하면서, 그동안의 교직경력동안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맘껏 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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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면 무조건 '반대만 한다'하고 '부정적인 교사'라는 낙인이 찍히기 일쑤입니다. 심지어 "왜 직원회의 시간에 개인적인 얘기를 하느냐? 그런 얘기는 교장실에 와서 따로 해라"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교사도 극히 일부뿐입니다. 대부분 교사들은 관리자의 권위에 눌려서 불만이 있어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도 뒤에서만 불만을 토로할 뿐 앞에서는 대놓고 말못하는 분위기가 학교에는 있습니다. 또 침묵하는 다수에 숨어서 '벌떡 교사' 한두 사람이 해결해 주길 바라고 누군가가 알아서 해 주겠지하는 태도와 무조건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해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관리자쪽 의견에 무게를 실어주는 태도를 많이 보여온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에 승진을 앞둔 보직교사들은 관리자한테 충성하는 데만 급급해서 관리자가 원하는 쪽으로 의견을 몰아가는 데 앞장을 서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우리나라 학교에서 민주주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교사의 의견이 무시되고, 오직 관리자 중심의 지시 전달에만 움직이는 학교와 관리자의 업적과 실적을 위해 학생을 이용하는 학교 모습을 가만두고 볼 수 없는 교사들은 늘 관리자와 의견대립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늘 싸워야 했습니다. 실제로 혁신학교에 지원한 교사들 중에는 교장과 싸우는(?) 것에 신물이 나서 온 사람이 많습니다.

회의를 많이 하는 학교, 혁신학교

혁신학교를 준비한다니까 주변의 교사들은 너나할 것없이 현재 학교에서 바꿔야 할 것들을 이것저것 주문했습니다. 이 교사들은 그동안에 학교 안에서 불만이 있어도 할 말을 못하고, 자신의 주장조차 맘껏 펴지 못하고 말없이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혁신학교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그제서야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에 온 교사들이 그동안 가장 많이 한 것이 전체교사회의입니다. 날마다 끊임없이 회의를 했습니다. 학교 운영을 누구 한 사람이 지시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을 모든 교사들이 함께 모여 스스럼없이 의견을 내서 나누고 합의하고 결정해서 진행합니다.

전체교사회의에서는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의견을 끝까지 존중하고 반영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서둘러 끝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 것 아닌 일로 토의하느라 한나절을 고스란히 보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교사들은 회의를 하면서, 그동안의 교직경력 동안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맘껏 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회의다운 회의를 해 본 경험이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회의를 하는 것도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절하는 것도 사회를 보는 것도 모두 어색했습니다. 회의를 해 본 경험이 적다보니 처음에는 회의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할수록 함께 다른 생각을 나누는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또 혼자 할 때보다 함께 회의를 하면서 그 과정에서 새롭게 깨치면서 스스로 감동하고 또 감동했습니다. 오늘도 회의를 거듭하면서 교사들은 서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혁신학교는 다른 목적이 아닌 오직 학생을 중심에 두는 교육을 할 수 있고, 누가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 원해서 하고, 하고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있고, 어떤 의견이라도 무시되지 않고 존중하고 기다려주고, 무엇보다 서로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일이 많아 힘들고, 승진점수 없고, 힘든 회의를 날마다 거듭해도 혁신학교에 온 것을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날마다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최근 <조선일보>에서는 우리 학교 '교사 절반이 전교조'라고 하면서 '전교조 거점학교'라는 말까지 썼더군요. 교사 선발 요건 중에 특별히 전교조 교사를 우대하는 조항은 없었는데도 말이지요. 지원교사 중에 전교조 교사가 유독 많았으니, 당연히 선발된 교사도 전교조 교사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아무도 전교조 교사와 전교조 아닌 교사로 나누어 보지 않습니다. 전교조 교사든 전교조가 아닌 교사든 모두 아이들을 위해 진정한 교육을 하고 싶은 같은 뜻을 품고 함께 가는 그냥 교사일 뿐입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혁신학교, #민주적인학교, #초등교육,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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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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