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총장, 부총장, 처장, 부처장, 실장, 원장, 학장, 학과장….

 

겉으로 보기엔 지성과 이성, 민주와 성찰이 수평적으로 수월하게 작동하는 상아탑 같지만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수많은 계급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 대학사회다. 그런데 이들 지배계층엔 그들만의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상아탑 종속관계의 꼭짓점인 보직을 맡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임교수가 되어야만 한다.

 

물론 전임교수 중에도 조교수와 부교수, 정교수 등의 서열이 존재하지만, 같은 박사학위를 지녔어도 '대학의 유령', 또는 '보따리 장수'로 불리며 전전긍긍하는 비전임교수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임교수로 임용되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달라진다. 학문적 또는 경제적 예우가 하늘처럼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학의 어느 보직을 누릴 수 있는 자격도 부여된다.

 

특히 총장 직선제가 시행된 이후 선거기간에 줄만 잘 서면 순식간에 중요 보직을 차지할 수도 있다. 전문성과 연륜, 통솔력, 행정 마인드 등의 유무와는 별개다. 일단 보직을 맡은 교수는 예산과 하부 조직을 마음대로 운영·지휘하며 임기 내(보통 2~4년)에 온갖 실험(?)을 반복할 수 있는 특권을 갖기 때문에 전임교수들 사이에선 매력 있는 상아탑 내부의 또 다른 계급인 셈이다.

 

상아탑 내 '절대권자', 그 이름은 전임교수

 

강의실에서 만나던 학생들 외에 행정직 또는 기성회직 공무원과 계약직 공무원들, 게다가 조교, 석·박사 연구원들을 휘하에 거느릴 수 있다. 보직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연간 수십억에서 수백억, 수천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예산을 주무를 수 있는 결재권도 주어진다.   

 

전임교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약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많이 널려 있는 곳이 바로 대학사회다. 학부생과 석·박사 대학원생, 일반 교직원 외에 전체 강의시간의 절반 가량을 담당하고 있는 시간강사들과 절대적인 종속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대학 내에서 전임교수는 절대권자에 다름 아니다. 굳건한 대학 내부의 종속관계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선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지도교수도 모자라 평생지도교수제도로 학부생들과의 종속관계는 꽉 묶인다. 이후 대학원 진학과 취업을 위한 지도교수 추천서, 심지어 공동연구를 빙자한 학문적 착취도 모자라 교수 채용과정의 경제적 착취 등이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이를 견디다 못해 내부 문제점을 사회에 고발하거나 심지어 극단적 자살을 통해 상아탑의 비리를 고발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MB정부 들어서면서 쉼 없이 펼쳐지고 있는 '대학 간 서열화 레이스'는 대학사회 전반에 경쟁과 실적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시행착오를 남발시키고 있다. 선도대학 또는 우수대학 대열에 들지 못하면 당장 예산지원이 줄거나 중단되기 때문에 각 대학들은 온갖 시험과 경쟁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내부는 물론 대외 종속성까지 심화되는 형국이다.

 

서울대 본부에 제출된 '음대 교수의 제자 폭행'이란 내용의 진정서가 단초가 됐지만, 한 교수가 제자들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음악회 입장권을 강매하고, 선물을 요구했다는 주장과 함께 도제식 교육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아탑 내부에 오랜 기간 동안 내재돼 온 지배와 착취구조의 종속사회가 낳은 병폐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영향력 큰 교수 독선 앞에 '희생' 강요하는 잘못된 문화 

 

서울대는 제자 상습폭행 등의 의혹을 받아온 김인혜 음대 성악과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직위해제했지만 후유증은 쉽게 아물지 않을 전망이다(서울대는 28일 오후 징계위를 열어 김인혜 교수를 파면했다). 김 교수는 징계위가 징계수위를 결정할 때까지 성악과 학과장직과 교수로서의 직무가 정지되지만, 김 교수는 대학 측이 요구한 질문지 26개 문항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면서 의혹 대부분에 대해 부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상은 서울대 징계위 판단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입학과 동시에 지도교수가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도제식 교육이 도마에 올랐다. 김 교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제식 훈육은 성악에 필수며 그런 게 당연하다고 배워 왔고 또 그렇게 가르쳐 왔다"며 폭행의혹을 부인하면서 더욱 논란은 커진 듯하다.

 

그의 주장대로 제자가 스승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종속적인 관계이다 보니 도제식 훈육에 따른 부작용들이 감춰져 온 것뿐, 제도에 길들어져 온 그도 일종의 피해자란 뜻이다. 이는 대학사회 내부의 종속성을 심화시킨 고등교육정책의 실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학연, 지연, 혈연 등 이른바 '연줄'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대학사회에서 더욱 심하다. 영향력이 큰 교수의 독선 앞에서 학생은 희생을 강요당하는 잘못된 문화가 오래 전부터 기생해 온 때문이다. 이는 정권에 따라 수시로 뒤바뀌며 교수들의 기득권에 짓눌려 온 대학만의 희한한 종속성 고착화 정책에 기인한다.

 

게다가 학위 남발은 이러한 종속성을 더욱 심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국내 대학원 박사과정 정원은 폭발적으로 증대했고, 이에 따라 박사학위 수요자 수도 꾸준히 증가했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고등교육상의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생기고 한국 대학들은 전면적 구조조정의 압력에 노출됐지만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무관하게 과잉 연구인력을 양산하고 있는 대학원 교육은 별다른 변화가 없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도 바로 상아탑 내부의 종속성을 더욱 키운 결과다.

 

국내 박사 폭발적 증가, 쉽게 연착륙 못하는 이유는?

 

그러면서도 이른바 국내 박사에 대한 학계의 이유 없는 차별은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인력은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이들이 대학사회에 순조롭게 연착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종속성과 도제식 교육을 묵인한 결과다. 국내 박사 우대정책을 펴지 못할 바엔 박사과정 정원의 합리적 축소를 포함한 엄격한 학사관리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과잉 연구인력을 조절하는 지혜를 발휘했어야 옳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향했다.

 

대학원 박사과정의 정원은 꾸준히 증가한 반면, 교원임용 시 '해외 박사 우대', 더 나아가 '해외 석학 초빙'사업 등을 포함한 대외 종속적인 학문정책을 대학과 정부가 오히려 노골화함으로써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들은 오갈 곳 없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대학들은 늘 입시철만 되면 학생 유치에 혈안이 되지만, 대학 입학 이후의 대학교육과정과 대학원교육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럼에도 학력 인플레 현상은 지속돼 석·박사학위 취득자는 지난해 8만5000여명으로 전년보다 3000명 이상이 늘었다. 그런가 하면 국내 대학들은 정원 충족과 재정 확충 등을 위해 유학생에 대한 질적인 고려는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식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 바람에 중도 탈락이나 불법 체류 등이 빈발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2월 21일자 '외국인 유학생 8만명 시대 관리개선 시급하다'란 사설에서 "2006년 3만2000명이었던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07년 4만9000명, 2008년 6만4000명, 2009년 7만5000명, 지난해 8만3000명 등으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하지만 유학생 관리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치열한 학생 유치전과는 달리 각 대학의 전임교원 확보는 미온적이다. 지난 2009년 교과부가 내놓은 '대학교원현황'에 따르면 교원 1인당 학생수(재학생 기준)의 경우 26.5명으로 전년도 27.2명에 비해 0.7명이 개선됐지만 이 수치는 OECD 평균(15.3명)은 물론 미국(15.1명), 영국(16.4명), 프랑스(17.0명), 독일(12.4명), 일본(10.8명)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학부 재학생 1만5000명 이상 대규모 대학 가운데 OECD 평균을 웃도는 대학은 한 곳도 없다. 이들 대학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최저 18.4명에서 최고 29.3명으로 OECD 평균인 15.3명에 훨씬 못 미친다. 대학의 관심은 학생을 유치하는 것 외에 교육의 질 향상과 사회진출 등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학사회의 첨두를 형성하는 전임교수들의 빈자리를 언제든지 값싸게 채울 수 있는 비전임교수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사회에서 교원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 채 전임교수들과는 철저한 종속관계인 6만여 전국 시간강사들이 전임교수들이 보직을 맡아 연구실과 강의실을 비울 때, 또는 안식년을 해외에서 즐길 때 빈 강의실을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사회의 착취적 먹이사슬 구조 하에서 부적절한 사제관계 상존

 

그럼에도 부족한 전임교수 자리를 채우려 하거나, 수많은 비전임교수들의 신분 안정화 노력에 전임교수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래야 대학사회에서 그들의 희소성이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때문일까. 이러한 대학 내부문제의 개선은 수십 년 동안 요원하다. 

 

오로지 관심은 학생 유치에만 있고, 등록금 인상과 함께 염치없이 장사에 열중하며, 콩나물시루와 다를 바 없는 강의실 개선 대신 전임교수 연구실과 보직교수 사무실 늘리기에 급급하며, 교과부와 대교협의 줄 세우기 정책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전임교수 중심의 종속관계, 즉 계급사회의 착취적 먹이사슬 구조와 부적절한 사제관계는 골 깊게 뿌리를 내렸다.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닌 도제식 교육에는 늘 양면이 존재한다. 스승의 기량을 그대로 전수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예전의 관행을 고집하다 보면 시대의 흐름을 맞출 수 없는 약점이 있다. 이는 서울대 음대뿐만 아니라 음악계 또는 예체능계 전체, 더 나아가 한국 대학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문제의 본질은 도제식이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 즉 '하라면 해야 한다'는 군대식 종속관계가 깊게 고인 대학사회의 고질적인 허위와 도덕 불감증이 문제다.

 

직위해제 중인 김인혜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를 옹호하는 지지서명이 포털사이트에서 시작되기도 했지만 "평소 교수가 제자들을 엄하게 훈육하면서 인격체로 대했다면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35년여 동안 교원지위 없는 비정규교수 문제의 모순을 구조적으로 내면화시킬 정도로 내부 병폐와 모순에 무딘 종속구조가 더 큰 문제다.

 

대학에 한번 입학해 한번 정하면 변경하기 어려운 지도교수제도에 적응해야 하는, 그리고 지도교수 밑에서 오랜 시간 '무보수 시다'로 일해야 대학원 또는 연구실 정착이 가능한,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교수 눈밖에 나면 대학원 진학은 끝이라는 무서운 되물림이 지배하는 사회에 순응해야 하는, 시간강사라도 하려면 박사학위 취득까지 찍히지 않아야 한다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한 대학을 허위의식과 패배주의, 자기검열에서 벗어난 깨어있는 지식사회라고 감히 말할 순 없다. 


태그:#전임교수, #도제식 교육, #서울대 음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