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철도가 시끄럽다. 작년 말 경부고속철도 전 구간 개통,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 공항철도 전 구간 개통 등 여러 호재를 맞아 잔뜩 고무되었던 철도는, 요즘 며칠마다 터져 나오는 사고와 운행장애로 안팎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26일 허준영 코레일 사장의 '사고는 무슨, 사람이 다쳤습니까?' 발언은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덕분에 단순히 차량고장이나 작업자 실수로 끝날 것 같던 문제들은, 정비 외주화와 지나친 인력감축, 공기업 사장의 낙하산 취임, 해외 고속철도 수주사업에 미치는 악영향 등등 일파만파로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
물론 허준영 사장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잦은 운행장애를 일으킨 KTX-산천은 코레일에서 직접 만든 차량도 아니고,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정화도 덜 되었다. 특히 경춘선이나 고속철도 동대구~부산 등 신설 구간에서 장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여러 제품이나 시스템에서 볼 수 있는 초기불량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초기불량은 발견되는 대로 수정을 해주면 더 이상 고장 나지 않는 안정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사고와 운행장애를 구분할 필요도 있다. 지난 11일 광명역에서 발생한 KTX의 탈선은 명백한 사고이지만, 열차가 고장으로 멈춰 서서 지연 운행한 것은 운행장애이다. 허준영 사장의 설화(舌禍)도 운행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다가 사고까지 이야기가 얽혀 버린 것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허준영 사장의 발언은 경솔했다. 왜냐하면 지금 코레일은 철도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철도는 안전하다는 믿음, 철도는 시간을 지켜준다는 믿음, 모든 철도인은 프로의 자세로 일을 한다는 믿음이 깨어졌다. 이렇게 한번 깨어진 신뢰를 다시 얻어내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자신들을 믿어주었던 고객을 위해, 낮은 곳으로 내려가 섬기는 자세로 올려보아야 한다. 그러나 허준영 사장의 발언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조직이든지 리더에게는 많은 권한과 혜택이 주어져 있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도 따른다. 특히 기업의 리더에게는 내외부의 고객을 안심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경질적으로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겸손한 자세로 문제를 소상히 밝히고 개선대책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 때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든 1차적인 책임은 돈을 받고 운수서비스를 제공한 코레일에 있고, 공기업의 책임자는 사장인 것이다.
코레일은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국민들이 KTX를 비롯한 철도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증기기관차가 전 세계의 산업혁명을 이끈 것처럼, 철도는 우리나라의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끄는 견인차이다. 이러한 철도를 믿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믿고 활동할 수 있는 신뢰사회 구축의 초석이 된다.
철도는 '약속'이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모든 철도인들과 철도업무가 약속에 따라 움직여야만 철도의 절대안전과 최고효율을 보장할 수 있다. 따라서 철도인들은 이 같은 약속을 어기게 만드는 사고와 운행장애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철도에는 '이 정도면 되겠지'가 있을 수 없다. 안전에 대해서는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이 필요하다.
허준영 사장을 비롯한 모든 코레일 임직원들은 최근의 사건들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안전하고 편리한 철도를 운영하는 코레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고,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며, 겸손한 자세로 지속적인 개선을 해나간다면 국민도 철도를 다시 믿어줄 것이다. 믿고서 타는 것과 믿지 못하지만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는 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코레일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에만 '세계 1등 국민철도'라는 코레일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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