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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윤길용 MBC 시사교양국장이 소속 피디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사교양국의 변화를 위해서 1년 이상 한 프로그램에서 일한 사람은 예외없이 교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변화는 힘들다."

'PD수첩'에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윤 국장은 "PD수첩을 없앤다거나 흔들 것이라는 것은 오해"라는 발언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1년 이상 한 프로그램에서 일한 사람은 예외없이 교체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4대강사업 비판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온 최승호 피디를 교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공교롭게도 윤 국장이 발언이 있었던 날 최승호 피디는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제23회 한국피디대상' 시상식에서 '검사와 스폰서' 보도로 올해의 피디상을 수상했다.  

"시사교양국의 편성본부 배치, 조직개편 기본원칙 무너뜨리는 것"

MBC PD수첩 담당 제작자인 최승호 PD. (자료사진)
 MBC PD수첩 담당 제작자인 최승호 PD.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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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피디는 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그동안 MBC 안에서 몇 단계에 걸쳐 상식적이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최 피디가 언급한 "상식적이지 않는 일들"이란 시사교양국을 편성본부에 배치한 뒤, 시사교양국 국장과 <PD수첩> 부장을 바꾼 데 이어 한 프로그램에 1년 이상 일한 시사교양피디들까지 전원 바꾸겠다는 일련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최 피디는 "시사교양국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곳인데 편성본부에 갖다붙였다"며 "이것은 조직개편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편성본부와 제작본부는 조직의 특성이 다르다. 편성본부는 사장이나 경영진이 편성원칙을 정하면 그것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윗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반면 제작본부에서는 피디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풍토가 있다."

이어 최 피디는 "1년 이상 된 피디들은 교체하겠다고 하는데 어느 곳이나 1년이란 시간은 그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과정"이라며 "영향력있는 프로그램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2-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피디는 "경쟁력 등 기초적인 것을 생각해보더라도 1년 이상 된 피디들을 교체하겠다는 건,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며 "그런데 MBC가 그런 일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PD수첩에도 다른 피디들이 들어오겠지만, 경험이 있는 피디들은 다 나간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PD수첩이 다시 본궤도에 오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다. 물론 남아 있는 피디들과 새롭게 들어오는 피디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다."

최 피디는 "1년 6개월 된 저는 이전에 PD수첩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익숙했다"며 "PD수첩을 잘 만들기 위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고, 탐사저널리즘의 전문성을 갖추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대선을 관리하겠다는 정권의 주문에 따른 조치"

이어 최 피디는 "(이런 식의 조직개편은) 시사교양국장의 의사라기보다는 위쪽의 강력한 주문에 의한 것"이라며 "내년 총선과 대선으로 들어가는 국면이기 때문에 (비판적 프로그램들의) 관리가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강력한 주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 말고는 이 비상식적인 일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정권의 주문과 (MBC 안에 있는) 몇몇 사람의 욕심이 결합해서 말도 안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최 피디는 김재철 사장의 연임 이후 MBC 내부분위기와 관련 "말로는 창의성을 북돋운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입을 닫도록 하고 있다"며 "MBC 전체 프로그램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 피디는 "(이명박 정권과 회사 측은) 피디저널리즘을 위축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고사시키려 하고 있다"며 "말살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는 아주 부담스러우니까 고사시키는 형태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발언도 못하고 시청자들에게 잊혀질 때쯤 PD수첩을 없애지 않겠나? 하지만 지금 당장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주 노골적으로 하면 국민들이 많이 반발할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침체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 피디는 "(정권과 회사 측에서) 옥죄는 상황이기 때문에 개개인들이 저항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그런 점에서 미래가 어둡다"고 토로했다. 

"시사교양국 피디들만의 힘으로 힘든 상황이다. 이것은 시사교양국 국원과 국장의 분쟁이 아니라 그야말로 정권이 (개입된) 문제다. 그쪽에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몇십명 피디들이 아무리 저항한다 해도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는 없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야 할 것 같다."

최 피디에게 'PD수첩'은 탐사저널리즘(피디저널리즘)의 근거지였다. 1995년부터 PD수첩에서 일했던 그는 지난해 '검사와 스폰서'(3회 방송),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등을 방송해 '올해의 피디상'과 '안종필 자유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시사교양국 피디들로 구성된 '평피디협의회는 이날 오후 3시 '긴급 비상총회'를 연다. 윤길용 국장의 발언대로 최 피디가 교체될 경우 비상대책위를 꾸려 연가투쟁 등 집단행동에 나설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태그:#최승호, #피디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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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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