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찌그러진 깡통에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걸식을 나섰다 제대로 격식을 갖춰 차린 진수성찬을 얻어먹은 기분입니다. 전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오윤희가 쓰고 <불광출판사>에서 출간한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을 읽고 난 뒷맛이 그렇습니다.

뒷맛만 맛깔스러운 게 아니라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대장경'을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입체현미경 같은 내용이며 구성입니다. 심도가 낮아 제한 된 부분만을 볼 수 있는 일반 현미경과는 달리 울퉁불퉁한 면, 대장경을 이루고 있는 양각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경으로 꾸리는 결집에서부터 초조대장경의 발견, 교정, 전산화까지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됩니다. 자칫 반일감정을 거스르거나, 지각없는 반발도 예상됐겠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할 것은 과단하게 인정하고 있어 학자로서의 꼿꼿한 결기와 양심이 느껴집니다.

양심 꼿꼿한 사실, 초조대장경은 일본 덕택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오윤희(지은이)/불광출판사/2011-02-07/20,000원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오윤희(지은이)/불광출판사/2011-02-07/20,000원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일본 교토에 남선사(南禪寺)라는 사찰이 있다. 바로 그 남선사의 비장(秘藏)에서 초조대장경의 일부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산질되어 전하던 초조대장경을 발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초조대장경의 천 년, 이 모두가 일본 남선사의 덕택이다. 만일 남선사에 대량의 초조본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수세기 동안 정식으로 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남선사일체경,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채로 수장고에 갇혀 있어야 했다면, 국보가 되고 보물이 된 초조본들은 어떤 운명일까? 애물단지 미운 오리새끼일까? -중략-


일본 사절들은 대장경 한 질을 얻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 간 대장경을 방방곡곡의 사찰에 모셨다. 그런 연유로 만국무쌍이라는 찬탄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대장경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스스로 원해서 버린 물건이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중략-


실제 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 대장경에 관한 '모든' 연구는 일본으로부터 나왔다. 고려대장경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중략-


솔직한 고백, 고려대장경은 짝퉁 

수질, 공기 등 환경오염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지식이 오염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책에서는 초조대장경의 천년이 일본 남선사 덕이었음을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려대장경의 실체를 짝퉁으로 단정합니다. 고려대장경을 폄하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려는 악의적인 단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솔직담백한 단정입니다. 왜곡이던 자화자찬이던 간에 사실을 감추거나 과장한 역사에서 기인한 지식오염을 있는 그대로로 정화시켜주는 교정자 같은 내용입니다.  

무엇보다 고려대장경은 짝퉁이다. 요즘 시쳇말로 치자면 말이다. 그것도 짝퉁의 본고장이라는 중국 물건의 짝퉁이다. 그나마 고려대장경이 안팎으로 칭찬을 받는 까닭은 오리지널보다 진화된 짝퉁이라는 점 때문이다. 오리지널은 남아 있는 것이 몇 개 안 되지만, 짝퉁은 천년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짝퉁은 짝퉁이다. 흥분할 일은 아니다. -중략-

이런 자화자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아이들이다. 마냥 좋다는 말만 듣고 덩달아 자랑하다가 망신을 당할 날이 온다. 바야흐로 글로벌시대 아닌가? 짝퉁 들고 으스대다 글로벌 왕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중략-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을 연구하고 저술한 저자가 감당해야 했을 고민, 후대 천년을 대비하는 진지한 고민도 느껴집니다. 책에서는 고려인이 설계한 고려인의 그릇으로 의천의 고려대장경을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고려대장경은 송나라 개보대장경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고려'라는 이름을 달기조차 민망한 면도 없지 않다. 의천의 고려대장경은 명실상부 고려대장경이다. 무엇보다 그 안에는 고려인의 생각과 노심초사가 담겨있다. 교망과 종승, 이들을 묶은 통방과 화쟁, 고려인들이 발견한 고려인들의 꿈을 바탕으로 한 고려인의 설계도가 들어있다. 고려인이 설계한 고려인의 그릇이다. -중략-

불교계를 향한 일침

글자 하나하나를 새긴 목판-자료사진-
 글자 하나하나를 새긴 목판-자료사진-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저자는 기복화 되고, 재(齋)가 조장되고 있는 세속의 불교계를 향한 일침도 서슴지 않으니 불교의 본분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불교가 불교인 까닭은 이것이 가르침인 탓이다. 가르침은 언젠가 어느 누군가 했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어졌던 현실의 일이고,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래서 불교는 교리(敎理),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 가르침을 앞세운다. 진리를 얘기해도 가르침의 일부로써 이해한다. 가르침을 넘어 서는 이치는 없다. 가르침의 역사를 저버린다면 더 이상 불교는 없다. -중략-

저자는 대장경을 전산화 하는데 걸린 20 년을 이천오백 년 불전의 역사에서 말 그대로 경천동지의 대혁신이 벌어진 세월이라고 정리하며 시대의 변혁에 따른 대응책도 제시합니다.

'우리는 그릇의 시대, 그릇이 깨지고 뒤집히는 시대, 그릇을 밥 먹듯이 깨트려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모도잡이 다라니, 결집의 꿈, 대장경의 꿈은 이제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그릇으로 옮겨가고 있다. 옮겨 담는 일은 깨트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꺼내기 위해서도 깨트려야 하지만, 담기 위해서도 깨트려야 한다. 꺼내고 담는 일은 그릇의 모양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로 맺습니다.

대장경,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실체현미경

'대장경'이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이었듯이 이 책,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은 전 고려대장경연구소장을 역임한 저자 오윤희가 물레질을 하고 불길을 조절해 가며 구워 낸 입체현미경, 대장경의 실체와 가치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마음의 눈을 틔워 주는 역사의 실체현미경입니다.

대장경, 너무 크고 깊다고 생각되어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역사속의 보물이었지만 숟가락 하나들고 걸식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두 눈과 정신을 천리안으로 만들어 주는 지혜의 숟가락조차 대장경을 입체적으로 담고 있는 이 책에 담겨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 오윤희(지은이) / 불광출판사 / 2011-02-07 / 20,000원



태그:#대장경, #불광출판사, #오윤희, #남선사, #의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