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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스님들이 모여서 절 자랑을 하는 시합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자랑을 하던 중에,  한 스님이 먼저 "우리 절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지 일주문 문턱에 빨리 닳아버려, 일 년에 한 번씩 교체를 해야 한다"고 하였단다. 또 한 스님은 "우리 절은 스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 안에 몇 사람이 들어가 청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자랑을 하는 중에 그저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만 하던 선암사 스님이 "이런 것도 자랑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절은 측간에 가서 변을 보면, 그 다음날에야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날의 자랑대회에서 일등을 한 것은 측간 이야기를 한 스님이라는 이야기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하필이면 왜 측간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번지에 소재하는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인 529년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이라 하였던 것을, 통일신라 헌강왕 5년인 875년에 도선국사가 선암사라 고쳐 불렀다. 이후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더욱 크게 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유명해진 선암사 측간

 

사람들은 선암사를 가면 꼭 들려보는 곳이 있다. 한두 번 들렸던 사람들은, 함께 온 일행을 데리고 들어와 자랑스럽게 아는 체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랑을 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것이 바로 유명한 선암사 측간이다. 선암사의 측간은 유명세를 톡톡히 타고 있는 곳이다. 선암사 측간은 일주문을 들어서 좌측에 있는 종루를 끼고 돌면 해천당 옆에 위치해 있다. 

 

선암사의 측간은 1920년 이전에도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서, 상당히 오래된 건물로 추정한다. 선암사 측간은 맞배지붕으로 지었으며, 정면 6칸, 측면 4칸 규모이다. 건물은 T 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북쪽에서 출입을 하도록 되어 있다. 들어가는 입구는 단층이지만, 이곳의 지형이 격차가 커서 뒤편으로는 중층구성을 하였다.

 

 

남녀의 사용하는 곳만 낮은 판벽으로 구문을 해

 

선암사 측간은 출입구에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풍판이 설치된 것은 선암사 측간의 특징이기도 하다. 풍판은 아랫부분의 가운데와 양 끝이 약간 들린 곡선으로 처리하여, 여유로움을 보이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측간의 바닥이 목조로 된 누마루 형식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칸이 양옆으로 분리되어 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보기 드문 구성인 이러한 형식은, 선암사 측간에서 보이는 특별한 구조이다. 그저 가슴 높이 정도로 중앙을 판벽으로 고정하고, 양편으로 문을 달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칸만 막아 놓았을 뿐이다. '근심을 푸는 곳'이란 해우소의 취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형태이다. 근심을 풀고 있으니, 남들이 지나가면서 보든 말든 관계치 않겠다는 소리인가 보다.

 

입구에서부터 아이들 가슴 높이 정도에 까치구멍을 내었다. 바람이 통하게 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출입구의 맞은 편 측간 안쪽과 용변을 보는 곳 등은 바닥에서 바로 까치구멍을 내어 놓아 맞바람으로 냄새를 제거하였다.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써서 지은 것이, 바로 선암사 측간이다.

 

 

선암사 측간의 속이 보고 싶다

 

현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선암사 측간. 측면과 뒤편에서 보면 중층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든든하기도 하지만, 측간 하나를 지으면서도 건물의 미를 생각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선암사를 몇 번이고 찾아가서 본 측간이다. 하지만 늘 궁금한 것은, 측간의 속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남들이 다 보고 알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정작 그 속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다니. 이것도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생긴 병인가보다. 겉만 보아도 될 것을, 굳이 그 속이 보고 싶은 것일까?

 

3월 5일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찾아간 선암사. 그동안 줄곧 궁금했던 그 속을 보겠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이왕 선암사 측간을 보려면, 그 속을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뒤로 돌아가 후면 사진을 찍고, 마침 삐죽이 열려 있는 아래편 중앙에 난 문을 열었다. 안에는 사용을 한 흔적이 있다. T 자 모양으로 된 앞쪽 출입구 아래로는 양편에는 문을 내었다. 환기를 시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뒤편 넓은 공간으로는 중간 기둥을 덧내어 무게를 분산시키고 있다.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속을 보니 속이 풀린다. 절의 측간 가운데서도 아름답고 가치가 높다는 선암사 측간. '해우소가 근심을 푸는 곳'이라고 했는데, 정작 해우소의 궁금증을 오늘에야 풀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선암사 측간은, 정말로 근심을 풀어버린 해우소가 되었나보다.


태그:#측간, #선암사, #순천, #문화재자료, #조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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