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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80년대 대한민국에는 음악을 '듣는' 수많은 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대중은 음악을 '듣고' '느꼈다'. 슬프고 우울할 때는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위로 받기도 했고, 때로는 음악을 들으며 큰 공감에 더더욱 슬퍼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1990년대가 왔을 때 대한민국 음악계는 대 부흥기를 맞이했다. 90년대 음악계에서는 어느 가수의 음반이 50만장, 100만장을 돌파한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고, 가수들은 음악을 '듣는' 많은 대중들을 발판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좋은 음악에 열중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음악인을 꿈꾸는 수많은 예비 음악인들도 좋은 음악이라는 무기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음악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듣고 즐기는 음악의 비율이, 듣고 느끼는 음악의 비율을 압도했고 이로 인해 주류음악시장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의 밸런스가 깨져버렸다. 과거처럼 주옥같은 가사 한줄, 멜로디에 감상자의 눈물을 한 방울 똑 떨어뜨리는 노래를 쉽게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MP3 플레이어의 대량보급과 맞물린 MP3 불법다운로드는 음악의 물직적 가치와 동시에 음악의 본질적 가치를 떨어뜨렸고 동시에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음악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음악만 잘하는 가수의 자리를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로 인해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라는 행위가 독립적으로 행해지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운전을 하거나, 이동할 때, 웹서핑을 할 때, 음악을 듣는다. 따로 시간을 내서 음악만을 듣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물론 이러한 음악 감상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다'라는 행위가 직접적인 목적이 되어 독립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어색해져버린 것은 애석한 일이다. 이것은 음악만을 듣기 위해 가수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가사에 담긴 맛을 음미하며 감동받고 공감하던 낭만의 시대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화와 함께 음악은 더 이상 듣고 느끼는 것이 아닌, 단순히 빈 공간을 채워주는, 그래서 너무 쉽고 빠르게 소비돼 가고 있는 수많은 컨텐츠 중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음악이라는 콘텐츠가 힘을 잃어가는 현재의 상황과는 조금 다르게 최근 음악은 예능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슈퍼스타K가 처음으로 이를 증명했고 MBC에서 방영하는 '위대한 탄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높아지며 다시 한 번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음악이란 콘텐츠를 활용한 예능이 음악에 대한 대중의 인식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가장 큰 메인 콘텐츠는 음악이 아니라 오디션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음악은 오디션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었다.

'나는 가수다'가 3월 6일 첫방송을 마쳤다.
▲ 나는 가수다 '나는 가수다'가 3월 6일 첫방송을 마쳤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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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음악을 소재로 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이 프로그램은 서바이벌 형식이라는 포맷이긴 하지만 방송시간의 대부분은 음악이 주류를 이룬다.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수준 역시 높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음악을 듣는다'라는 행위를 다시 독립시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나는 가수다>이다. 

'나는 가수다'는 예능프로그램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음악이다.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것들은 한 사람의 성장 스토리나, MC들의 사소한 말장난이 아닌 음악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이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예능프로를 보는 것이 아닌 음악을 보고,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음악을 듣는다'라는 행위의 독립을 가능케 한다.

극장, 혹은 TV에서 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는 따로 시간을 내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도, 따로 시간을 내서 음악만을 듣는 행위가 어색게 변한 지금 '나는 가수다'는 TV시청의 집중력을 음악 감상에 쏟아 붓게 한다. 더구나 집중의 대상이 자타공인 최고의 가수들이니 이 '음악을 듣는'것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몇몇 관객들이야 말로 이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고려해야 할 문제들도 있다. 과거 MBC에서는 '쇼바이벌'이라고 하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과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방영했었다. 이 프로그램은 가요계에서 선택받지 못한 신인가수들이 자신들의 무대를 보여주고 평가받는 서바이벌형식을 거쳐 1등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신인가수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변한 것을 빼면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나는 가수다'는 과거 '쇼바이벌'이 가지고 있던 문제들과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두 프로그램이 공유하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음악쇼와 예능 프로그램간의 정체성 문제이다. '쇼바이벌'에서는 가수들의 무대를 예능이라는 특성에 맞게 편집하거나 무대보다는 다른 OX퀴즈와 같은 예능장치에 집중을 하곤했었다. 그리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무대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불만을 일으키곤 했다.

'나는 가수다' 역시 예능프로그램이기에 어쩔 수 없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가수가 노래를 하는 중간에 흐름을 깨는 장면들이 등장하며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예능프로그램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나는 가수다'가 자칫 잘못하면 음악쇼가 될 수 있을만큼 음악이 메인이 되다보니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능적 장치를 얼마나 적절히 흐름을 끊지 않고 연출하느냐는 '나는 가수다'가 해결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이외에 심사에 관한 문제점도 존재한다. '쇼바이벌'의 경우 일반인 판정단의 의견을 100%반영했었다. 여기에서 나온 문제점은 음악이나 무대가 아닌 가수 자체에 대한 호감으로 승부가 갈리곤 했었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 역시 일반인 판정단의 의견을 100% 반영한다. 따라서 '나는 가수다'는 심사기준이 가수에 대한 인지도, 호감도, 인기도가 아닌 음악 자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쇼바이벌'에서 나왔던 똑같은 문제를 되풀이 하지 않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나는 가수다'는 이제 막 첫회를 끝냈다. 따라서 아직 성공이냐 실패를 거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예능과 음악의 결합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끌 수 있는지가 시청률 부진으로 조기 종영한 '쇼바이벌'의 뒤를 이을지 '일밤'의 새로운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나는 가수다'가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나눠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태그:#일밤, #나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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