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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①] 경조사비만 한달 80만 원... 어찌해야 하나

꾸준히 가계부를 쓰며 나름대로 꼼꼼한 돈 관리를 하는 신명숙(가명·42·기혼)씨는 항상 경조사비에 골머리를 앓는다. 이번 달에만 친인척 결혼에 지인 돌잔치, 남편 지인 부친상 모친상 등으로 무려 80만 원이 나갔다.

"항상 경조사비 때문에 마이너스가 나요. 그렇다고 아낄 수 있는 돈도 아니잖아요. 뭘 어떻게 예측을 하고 준비를 해둬야 할지도 막막해요."

경조사비 문제로 남편과 종종 다투기도 한다. 집안 큰 아들이라 그런지 친인척 경조사가 있을 때면 명숙씨가 생각하기에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보내기 때문이다. 평상시 경조사 때도 웬만한 곳은 무조건 10만 원을 고수한다.

"아니 다들 물어보면 기본적으로 5만 원 정도 하고, 때에 따라 친한 관계거나 그 정도 받은 집에만 10만 원 정도 한다고 그래요. 그런데 도대체 자기만 무슨 체면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과욕을 부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경조사비에 대해 조금이라도 말할라치면 그렇게 빡빡하게 사는 게 아니래요. 이렇게 쓰면 다 거두게 마련이라고요. 돈이란 게 이렇게 서로 쓰고 살아야 인간구실하는 거래요. 인간구실 두 번만 했다가는 가세가 기울겠어요."

명숙씨도 남편의 말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조사비라는 게 장기적으로 보자면 기쁜 일이나 어렵고 슬픈 일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좋은 전통이고, 다 뿌린 대로 거두기 마련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이렇게 목돈이 덜컥덜컥 나가버릴 때마다 그간 알뜰한 살림하느라 공들인 자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것만 같은 허탈감으로 기운이 빠지곤 한다.

[사례②] 결혼식 축의금 때문에 친구와 싸운 윤명자씨

SBS 주말드라마 <그대웃어요>의 한 장면.
 SBS 주말드라마 <그대웃어요>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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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자(가명·63세·기혼)씨는 얼마 전 부조금 때문에 여고 동창생과 심한 말다툼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50대부터 자식들이 출가하기 시작해 손자손녀까지 얻었지만, 명자씨는 2남1녀 중에 첫째 아들이 이제사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부지런히 지인들 경조사만 쫓아 다녔던 터라 아들의 결혼을 여기저기 알리면서 이제야 오랫동안 붓고 있던 계를 탄 느낌 비슷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돈 나갈 때는 부담이더니 막상 이제 받는다 생각하니 결혼식 비용에 대해서도 큰 부담을 더는 마음의 위안도 받았다. 그런데 결혼식이 끝나고 부조금을 정리하다가 문득 명자씨는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몇몇 동창 애들이 10여 년 전에 본인이 했던 금액 그대로 부조를 했더라고요. 10년이면 물가가 올라도 얼마나 올랐는데 얌체처럼 그 돈을 고대로 한 대요? 당시 3만 원하고 지금 3만 원이 같아요? 괘씸하더라고요."

서로 어려운 사이면 이런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기 어려웠겠으나 비교적 친한 여고 동창생한테 넋두리 하듯 이런 얘기들을 털어놓았다가 싸움으로 번져 의가 상해버린 것이었다. 물가인상률까지 감안한 경조사비까지 제대로 신경써야 진짜 인간구실인 셈이라면 경조사 챙기는 일이 단순히 주고받는 데서 끝나는 만만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사례③] 친구 돌잔치 때문에 마음 상한 권지혜씨

권지혜(가명·32·기혼)씨는 한 친구의 돌잔치 때문에 속이 쓰리다. 불과 한 달 전 지혜씨도 씨푸드 뷔페에서 돌잔치를 했고 친구들이 다같이 돈 모아 돌반지를 해주는 것으로 끝냈다. 상대적으로 음식이 조금 저렴한 곳으로 해서 서로 부담을 주지 말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 친구는 돌잔치를 시내 유명 호텔에서 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3만 원 씩 걷어서 돌반지 하나 해주기가 좀 그런 거예요. 그래도 호텔에서 하는데 어떻게 3만 원만 하겠어요. 인당 밥값만도 5만 원이 넘을 텐데요. 최소한 인당 5만 원 이상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한 달 간격으로 똑같이 돌잔치를 하는데 누구는 3만 원 하고, 누구는 호텔에서 한다는 이유만으로 5만 원을 한다는 것은 선뜻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5만 원씩 내서 돈으로 부조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결혼 전인 제 동생은 이런 복잡한 문제가 싫다고 경조사비는 무조건 3만 원으로 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예 안 간대요. 돈만 내고 안 가서 비용을 줄여주기로 한 거죠. 좀 곤란한 상황도 많지 않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자신도 3만 원만 받겠단 뜻인데 피차 부담도 적고 좋은 것 아니냐고 되물어요."

내가 내는 경조사비는 내가 그만큼 받겠다는 '의미'

경조사에 상호부조를 하는 것은 미풍양속임이 분명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느닷없이 힘든 일을 당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경사(慶事)보다 조사(弔事)쪽을 더 신경써서 챙긴다는 원칙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돈으로 부조를 하는 것 이상으로 품앗이처럼 서로를 물심양면 도왔다. 그런데 요즘 '신용카드 명세서보다 더 무서운 청첩장'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떠돌 정도로 타인의 경조사는 우리 가정의 적잖은 부담요소가 되고 있다.

나이들수록 인생의 중간평가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경조사는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다고들 한다. 경조사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은 황혼에 접어든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리본이 달린, 10만 원이 훌쩍 넘는 화환이 죽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보면, 구태여 돈을 받지 않고 그 순간만 쓰여지고 버려지는 화환으로 받는 것이 차라리 더 그럴 듯하다.

이런 보여짐에 물든 경조사가 결국 서로의 가정 경제에 위협 요소로 작용한다면 더 이상 미풍양속의 정신이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돈을 적게 내기 위해 '참여하지 않는 미덕'을 보이는 경조사란 무슨 의미일까. 내가 지출한 경조사비는 결국 내가 다시 받겠다는 액수라고 생각한다면, 서로가 부담이 적은 범위 내에서 주고 받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서로 마음의 상처도 덜 받고 말이다.

[사례④] 축의금 대신 편지를 써 넣은 최성광씨

최성광(가명·68·기혼)씨는 잇따른 사업 실패로 현재 자활센터에서 조건부 수급 지원을 받고 있다. 가장 친한 친구의 딸 결혼식 청첩장을 받았는데, 꼭 가서 축하해주고 싶어도 축의금을 낼 돈이 없는 형편이다. 워낙 어려서부터 봐온 아이라 안 갈 수도 없고, 축의금 없이 간다는 것도 그렇고 혼자 계속 고민하시다가 봉투에 편지를 써서 축의금 대신 냈다고 한다.

너무 축하하는데 현재 어려운 살림이라 돈을 보태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진심으로 결혼식에 가서 축하해 주고 싶었다고 쓰셨다고 한다. 친구의 딸은 신혼여행지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고 이런 경험에 마음이 참 좋으셨다는 최성광씨는 정성이 빠진 경조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하는 거예요. 남들이 뭐라고 하건 내 형편에 맞게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상대방이 진심을 안 받아줄 수도 있죠. 그럴 땐 뭐 어쩔 수 없는거죠. 허허허허."

얼마 전 별세하신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작가들이 무슨 돈이 있느냐며 조의금을 받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누구나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장례식에 와서 조의를 표하고 한 끼 식사를 대접받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그 마음의 여유와 배려가 우리 미풍양속의 진정한 실천 아닐까. 마음 나눔이 가려지지 않도록 돈을 잘 써야 현명한 시대다.

덧붙이는 글 | 박미정 시민기자는 재무상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경조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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