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독립한 동티모르에서 피스커피(peace coffee) 공정무역을 하고 있는 YMCA의 양동화 간사가 잠시 귀국을 했다. 지난 8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 간사는 동티모르와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동티모르 현지의 YMCA 재건을 위해 파견된 양 간사는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NGO들이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마땅한 일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커피이야기가 나왔고, 판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커피 직거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때까지도 공정무역이란 말조차 알지 못했단다.
첫 해에는 주민들과의 마찰도 있었고,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커피를 수입해 손해도 컸다. 다시 시작할 때는 커피 말고는 생계수단이 없는 마을 주민들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고민했다. 마을에 커피생산에 필요한 시설과 기술을 지원했다. 이와 함께 경험 많고 존경받는 원로들을 앞세워 주민자치회의를 만들고 주민회의를 통해 원로들이 모든 사항을 직접 결정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만도 1년이 걸렸지만 주민들과 소통하고 갈등을 풀어가는 계기가 되었고, 주민들 스스로도 외부에서 도와주거나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의 할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양 간사는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마을자치기구를 만든 것을 최고로 잘한 일 중 하나로 꼽았다.
"걱정마라, 당신들이 아니어도 세상은 변한다"... 한마디에 큰 용기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끼리도 살아갈 수 있는데 우리(새로운 변화)로 인해 이들의 오랜 문화와 전통이 무시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단다. 그 때 한 동네 청년이 다음과 같은 충고를 했다.
"걱정하지 마라. 당신들이 아니어도 세상은 변한다. 변화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있다. 그것을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 이것은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세상도 똑같다."청년의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양 간사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안정된 생활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무조건 개방하지 말고 지켜라'하는 것도 외부의 기준이고, 가진 자의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 의해 변화될 거라면 우리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잘 해보자는 용기까지 얻었단다.
YMCA는 커피콩만 사들여 다른 곳에서 가공하는 다국적 기업이나 공정무역을 하는 NGO와는 다른 방법으로 마을에 접근했다. 머물고 있는 수도 딜리에서 다섯시간이 걸리는 (로뚜뚜) 마을까지 수차례 방문하면서 비용도 많이 들어갔지만 마지막 작업까지 마을주민들이 자기들의 일이라 생각하고 품질을 높이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다.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변화들도 감지되었다. 마을 자치기구들은 스스로 뭔가 할 계획들을 세워나갔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가격만 지불하는 방식의 공정무역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공정무역으로 돈을 더 받는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많이 변화하거나 윤택해지지는 않아요. 돈의 가치와 사용법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삶에 대한 것도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자립하고 자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내 삶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마을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양 간사는 주민들이 자립과 자치를 통해 소득증대를 순환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 동티모르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고, 현재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에게 물질적인 부를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삶에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전체 국민 중 1%인 상류층, 한국처럼 똑같이 호화생활"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절에 더 많은 기회가 있었다며 한탄하는 젊은이들이 있을 만큼, 산업기반이 전무하고 높은 실업과 물가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 고달플 수밖에 없는 세계 최빈국 동티모르 내부의 이야기를 물어봤다.
- 수도(딜리)에 사는 사람들은 상류층이 다수일텐데 독립 후에 신흥계급이 생겼나?"식민지 시대부터 신흥계급은 있었고 지금도 전체 국민의 1%에 해당하는 상류층은 한국의 1% 상류층과 똑같은 호화생활을 누린다. 그들은 식민지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우리로 보면 과거의 친일파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포르투갈어를 정부의 공식언어로 지정해서 정부문서를 다루는 공무원들이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커피생산을 마을단위에서 공동생산, 분배하는데 개인소유는 없나?"국가에서 개인소유의 재산은 인정한다. 현지에서도 많은 커피나무를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 공동체 부족국가 시절에 부족장이나 왕족들이 나눠준 땅에서 개인의 것이 아닌 공동체의 것으로 여기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대대손손 지금까지 살아왔다. 문제는 토지정리가 안되어 있어서 과거 왕족이나 지주들의 후손이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게 되면 땅(집)과 커피를 모두 뻇기게 될 상황이란 점이다. 현재 정부에서 토지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충돌이 있을 것이고, 과거의 내전과 같은 심각한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 정부의 교육정책과 국민들의 교육열은 어느 정도인가."석유와 천연가스에서 생기는 돈 덕에 정부재정은 튼튼해서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하고 있다. 농촌에 초등학교는 많지만 중·고등학교는 큰 도시로 나와야 하는데 생활비 감당이 안되고, 졸업을 하더라도 취업이 안되니까 상급학교는 많이 포기한다. 전체적으로 급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급식을 하는 학교에서는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대학은 수도 딜리에 몇 곳이 있지만 학비가 비싸서 상류층이 아니면 다니지 못한다."
-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어느 정도인가."여자는 집안일 정도만 하고 가정폭력도 심하다. 나도 처음에는 보호받아야 할 여성으로 비춰져서 일하는 데 힘들었지만 노력하니까 진심으로 대해줬다. 마을일을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현재는 커피일에도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다. 점차적으로 여성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들이 보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역할과 지위가 낮은 편이다."
- 현지에서 개척한 프로그램(교육)을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 적용할 수 있지 않나."여기서 성공했다 해도 다른 곳에서의 성공은 장담 못한다. (현지)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만들어 가야 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에는 1년간 일을 거의 진행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과 문화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었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보였다. 서두르는 것보다는 오히려 느슨하게 하는 것이 맞다. 지역의 특색과 문화에 대한 이해없이 성공한 프로그램이라고 무조건 적용하는 것은 안된다."
- 젊은이들의 연애관, 결혼관은 어떤가."매우 자유스럽다.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의 영향을 받아서 유럽 스타일의 자유연애를 한다. 재미있는 현상이 (국민의 97%는 가톨릭) 종교의 보수적인 부분은 버리고 허용하는 자유 분방함을 많이 따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동티모르에서 4년간 일을 하면서 공정무역은 우리에게는 선택의 문제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문제였기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는 그녀는 현지에서 커피에 관한 일은 주민들이 스스로 하고 있지만 일부분 의지하기도 한다면서, 그동안 (주민들과) 정이 많이 들어 일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있다는 어려움도 털어놨다. 양 간사는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안되는 것이라면 5년차인 올해까지만 동티모르에 머무르고, 내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