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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5일부터 방송된 SBS수목 드라마 <싸인>이 10일 20부를 마지막으로 10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던 마지막 반전은 시청자들이 예상하던 가설 중 하나였던 '윤지훈(박신양)의 죽음'이었다.

 

<싸인>의 열혈 시청자로서 윤지훈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윤지훈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법의관으로서 최후까지 책임감 있는 선택을 했다.

 

비록 마지막회에서 치명적인 오디오 사고가 일어나긴 했지만, <싸인>은 신선한 법의학 드라마를 지향하며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막장도 서슴지 않는 국내 드라마계에 새 방향을 제시했다.

 

방송이 종료된 후에도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싸인>이 시청률과 작품성을 모두 잡은 명품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3가지 요소는 무엇일까.

 

SBS가 박신양에게 열광하는 이유

 

박신양은 SBS가 자랑하는 '스페셜리스트'다. 그가 2004년에 출연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 드라마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2006년 <쩐의 전쟁>은 드라마 최초로 '번외편'이 제작되기도 했다.

 

SBS는 2011년 첫 번째 드라마 <싸인>에서 다시 박신양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문근영과 함께 출연했던 <바람의 화원>이후 3년 만이다.

 

국과수 천재 법의학자 윤지훈 역을 맡은 박신양은 치밀하고 정교한 부검실력과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쫓는 집요함과 성실함, 그리고 의외로 인간적인 면모까지 갖춘 완벽한 인물을 연기했다.

 

윤지훈은 기본적으로 차갑고 냉철하게 보이는 인물이지만, 보험금을 타기 위해 타살로 위장한 자살을 한 가장의 유가족을 찾아 위로하는 따뜻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고다경(김아중)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만취돼 쓰러져 잠이 드는 친숙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마치 2007년 MBC 드라마 <하얀 거탑>의 냉철한 '수술천재' 장준혁(김명민)과 다정다감한 내과의사 최도영(이선균)이 윤지훈의 몸에 함께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조폭 두목 공상두(약속)부터 사기꾼 최창혁(범죄의 재구성), 재벌 한기주(파리의 연인), 천재 화가 김홍도(바람의 화원)까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 온 박신양의 내공은 <싸인>의 윤지훈을 통해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교수부터 살인자까지, <싸인>을 빛낸 명품 캐릭터 열전

 

<싸인>에는 박신양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신입 법의관 고다경 역의 김아중은 멜로 요소가 거의 없는 드라마인데도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다.

 

혈기왕성하고 경험이 부족한 고다경이 윤지훈을 만나 훌륭한 법의관으로 성장하듯, 로맨틱 코미디에 익숙하던 여배우 김아중도 <싸인>을 만나 연기자로 한단계 성장했다.

 

강한 국과수를 만들기 위해 더러운 권력과의 부적절한 거래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명한 원장 역의 전광렬도 윤지훈과 시종일관 대립하며 불꽃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열혈 형사 최이한 역의 정겨운과 윤지훈의 옛 연인이자 강력계 검사 정우진 역의 엄지원도 <싸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다. '한우 커플'은 진지하게만 흘러가는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멜로 감성을 자극했다.

 

이 밖에 윤지훈의 스승이자 이명한 원장의 전임 정병도 원장을 연기한 송재호, 이명한 원장의 오른팔 주인혁 교수 역의 이정헌, 대선후보 강중혁의 심복으로 온갖 악행을 사주하는 장민석 변호사 역의 장현성도 호연을 펼치며 <싸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싸인>에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는 윤지훈과 고다경이 연루된 사건에서 용의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다.

 

<싸인>의 첫 사건이자 20부 내내 윤지훈을 따라 다니던 아이돌스타 서윤형 살해 사건의 용의자 강서연 역의 황선희는 시종일관 이지적인 미소를 잃지 않으며 여러 사람을 태연하게 죽음으로 내몰았다.

 

황선희는 마지막까지 윤지훈을 찾아가 살해를 저지르며 <싸인>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로 열연했다. 강서연은 모든 악행이 드러나 체포되는 순간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최재환은 살인을 '게임'이라 생각하는 '사이코패스' 안수현 역으로 순진한 표정으로 악랄한 살해행각을 벌이는 이중적인 인물을 연기했다. 특히 김아중과 격투를 벌이는 등 짧은 분량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선보였다.

 

독을 이용해 여러 사람을 살해하다가 결국 자신도 독으로 살해당하는 대기업 대표 정차영을 연기한 김정태와 정차영을 죽이고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자살하는 이철원역의 백승현도 인상적이었다.

 

<싸인> 후반부 최고의 주역은 <시크릿 가든>의 김비서 김성오였다. 자신이 만든 게임 시나리오대로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마 이호진으로 출연한 김성오는 김비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시청자들을 긴장시켰다.

 

연출에 각본까지, 코미디 전문 장항준 감독의 재발견

 

장항준 감독은 K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야행성>에 고정출연 했을 정도로 뛰어난 입담을 과시했지만, 정작 본업인 영화감독으로서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2002년 <라이터를 켜라>와 2003년 <불어라 봄바람>으로 코미디 감독으로 자리를 잡는 듯 했으나 좀처럼 차기작을 내지 못했고, 2008년 <최강 로맨스>의 김정우 감독과 코믹 배틀 형식으로 개봉했던 <전투의 매너>는 개봉 여부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그런 장항준 감독이 <싸인>의 연출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대를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싸인>의 극본은 장항준 감독의 아내인 김은희 작가가 쓴다고 하니 자칫 부부가 박신양의 컴백작을 망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었다.

 

그러나 장항준 감독은 코미디 영화감독이라는 선입견을 벗어 던지고 탄탄한 법의학 드라마를 매끄럽게 연출해 내는 '반전 드라마'를 완성해 냈다.

 

10부까지 연출을 맡은 장항준 감독은 11부부터 <대물>의 김형식 감독에게 연출을 넘기고 각본진에 합류한다. 시청률 부진으로 작가나 감독이 바뀌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극의 완성도를 위해 연출가가 직접 각본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한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행보였다.

 

결국 극본에 올인한 장항준 감독은 극의 긴장감을 더욱 끌어 올리며 <싸인>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고, 대중들에게 한없이 가벼운 이미지였던 장항준 감독은 감독으로서, 또 작가로서 재조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싸인>의 마지막회 반전이 큰 화제를 모았지만, 가장 큰 반전은 장항준 감독의 재발견이었다. 결국 <싸인>은 그 흔한 남녀주인공의 키스신 없이도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산시킨 명품 드라마가 될 수 있었다.


태그:#싸인, #박신양, #장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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