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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나는 성격 좋고 나와 생각이 맞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언니가 말했다.

"결혼해 봐라. 결혼 생활에는 돈이 중요해."

서울 마포에서 만난 듬직한 한 남자와 결혼했다. 한 달 수입은 내가 대학원 연구원으로 받는 40만 원이 전부. 그래도 그 월급을 받는 날이면 난 남편의 옷을 샀다. 덩치가 커서 웬만한 옷은 맞지 않아 힙합 스타일의 큼직한 옷만 사야 했다. 싸우지 않고 잘 살았다. 언니가 말했다.

"아이 낳아 봐라. 애들 있으면 돈이 많이 들어."

첫째 수아가 태어났다. 2층이긴 하지만 하루에 잠깐만 햇살이 들어오는 방에서 아기를 키웠다. 과일과 야채는 장사를 하는 막내 시누이 집에서 여유 있게 가져다 먹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인터넷에서 글을 쓰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푼돈을 벌었다. 이때 남편이 갖다 주는 월급을 두 번인가 만져 본 것 같다.

서울에서 남편과 나의 능력이나 성격으로는 아이에게 하루 종일 따스한 햇볕과 밝은 햇살을 안겨 줄 가능성이 적어 광주광역시로 내려 왔다. 창문이 큼직했다. 여름엔 에어컨이 필요 없게 바람도 시원하게 들어왔다. 그러다 둘째 승아가 태어났다. 남편이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그래서 바닷가 마을 무안으로 내려왔다. 언니가 말했다.

"애들 학교 들어가 봐라. 학비가 얼마나 많이 드는데."

인생의 고비마다 돈돈돈, 시골은 예외?

아이들이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그다지 큰 돈이 들진 않는다. 사는 곳이 농촌이어서 도시에 살 때보다 이런저런 혜택이 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광주에 있다. 수업이 있는 날은 차를 가지고 간다. 내가 운전해서 가면 집 마당에서 직장까지 1시간 20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수업이 있어도 일찍 일어나면 광주 사는 사람들보다 더 일찍 출근한다.

남편과 나는 이게 다 노무현 대통령 덕분이라고 한다. 무안과 광주를 연결하는 무광고속도로를 뚫어 주었으니. 만약 이 고속도로가 없었으며 난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날마다 주유소에 출근했을 지도 모른다. 무광고속도로가 없으면 무안-함평-나주를 거쳐 광주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가면서 이런저런 풍경을 볼 수야 있겠지만 긴 운전 시간으로 졸음운전을 하는 날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내가 지금 살아 있음에 늘 감사한다.

시골에 살면 좋은 점이 참 많다. 우선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마당이 있어서 좋고, 동네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니 사랑을 많이 받아서 좋다. 도시에서 야채 값이 오른다고 하지만 여기에선 농사짓는 야채는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무안은 바닷가가 가까이 있어서 물미역이나 물김, 굴이나 낙지, 감태 같은 해산물도 자주 먹을 수 있다. 가끔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가서 낚시를 해오기도 하는데 드는 수고가 너무 많아서 난 차라리 안 먹을 테니 나가지 말라고 한다. 어쨌든 수고만 더하면 야채나 해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그렇다고 돈이 전혀 안 드는 것은 아니다. 농사짓지 않는 것은 여기에서도 사 먹어야 한다. 또한 공산품도 사야 한다. 치약이나 칫솔,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커피,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파프리카, 내가 좋아하는 쌈은 사다 먹는다. 특히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야채는 너무 비싸다. 파프리카 세 개에 4980원.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여러 번, 결국 아주 가끔 사게 된다. 그래도 부식비에 드는 돈은 안 쓰려고 하면 충분히 아낄 수 있다. 그런데 절대 아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기름 값이다.

농촌에선 승용차가 발인데... 기름먹는 하마들

14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여전히 2천원을 넘는 등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14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여전히 2천원을 넘는 등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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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트랙터를 사고, 사륜 구동 트럭을 사고, 타던 승합차를 승용차로 바꾸었다. 물론 다 중고로. 내가 출퇴근할 때 사용하는 내 차만 신형으로 구입했다. 우리 집엔 기름 먹는 차가 많다. 트랙터에 트럭에 승용차 두 대에 아버님의 오토바이에 어머님의 사륜 오토바이까지. 이 모든 것이 '기름 먹는 하마들'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우리 집 가장 큰 고민은 기름 값이다.

내 차의 경우 가득 채우면 28리터가 들어가는데 약 5만 7000원 정도가 나온다. 그러면 강의를 나가는 학교에서 집을 다섯 번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주유소에 들른다. 한 달이면 50만 원 정도가 기름값으로 들고, 통행료는 경차 할인을 받아서 2500원을 내는데 이것도 한 달이면 6만 원 정도가 나온다.

나주에 강의를 가는 날이면 거리가 가까우니까 광주만큼의 기름은 안 들겠지만 광주와 나주에 다니고, 아이들 아플 땐 목포에 있는 병원에 가니까 이래저래 일주일 내내 기름을 사용하게 된다.

ⓒ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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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여섯 번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는데 수영장은 무안읍 가까이에 있다. 농촌에선 승용차가 발이기 때문에 하루도 안 타는 날이 없다. 기름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넣는데 12만 원 정도 하고, 트럭은 60리터를 넣으면 11만 원이 드는데 이것도 역시 일주일 정도 탄다고. 화목 보일러를 사용하는 우리집은 그 때문에 나무도 실어 오고, 농삿일 할 때는 들밥도 내가고 새참도 내가고 농기구나 농약통 등 이것저것 싣고 다니려면 트럭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트랙터는 농번기에만 사용한다. 한 번에 100리터 정도를 넣는데 이 정도 양이면 하루 작업할 때 필요한 기름량이다. 트랙터의 경우, 농사용 면세유를 사용할 수 있어서 승용차에 들어가는 가격보단 쌀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돈이다.

남편과 저는 수입 지출을 따로 계산하기 때문에 기름값이 어느 정도 비율을 차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신용 카드 결제는 남편 통장으로 하는데 내가 버는 돈의 반을 매달 남편 통장으로 넣어야 한다는 거다.

기름값만큼이나 고민인 전기료, 또 오른다던데

이게 바로 화목보일러.
 이게 바로 화목보일러.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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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난방도 큰 걱정이다. 우리 집은 그나마 화목 보일러와 심야전기 보일러를 같이 가동해서 온 집안을 따뜻하게 해 놓고 산다. 밤에 주로 사용하는 심야전기 보일러는 따뜻한 물을 많이 사용하거나 낮에 계속 난방을 하면 저녁 때쯤 난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주말이나 방학 때면 밤에는 심야전기 보일러를 틀고, 낮에는 화목 보일러를 땐다. 그런데 무안 지역은 거의 나무가 없는 지역이어서 나무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남편과 어머님은 누가 간벌을 한다거나, 나무가 있다고 하면 열일 제쳐 놓고 나무를 구하러 간다.

심야전기 보일러는 주로 밤에만 틀어도 한 달 전기료가 20만 원을 넘는다. 거기에 냉장고나 텔레비전, 등, 컴퓨터에 사용되는 전기료는 따로 내는데 이 요금도 10만 원을 넘기기 일쑤다. 우리는 3대 가족이 한 집에 살아서 대가족 혜택을 받지만 10만 원을 넘기는 달이 많다. 전기료만 합쳐도 30만 원이 넘는 것이다.

여기에 양파즙을 짜는 기계를 돌리는 여름이 되면 공장의 전기료가 합쳐진다. 얼마가 나올지 모르지만 50만 원을 넘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기료가 또 오른다고 하는데 전기 사용량을 줄여야 하는데 줄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집 두 번째 큰 고민은 전기 요금이다.

기름과 전기는 둘 다 줄이기가 힘들다는 데에 고민의 깊이가 깊어진다. 시골에 살면서 생활비에 대한 고민은 없다. 집도 우리 집이기 때문에 주거비에 대한 고민도 없다. 어린이집도 지원을 받으니까 아이들 교육비에 대한 고민도 없다. 아이들 옷이나 신발도 주변에서 다 주니까 의류 비에 대한 고민도 없다. 그러나 차와 오토바이에 드는 기름 값과 난방을 위한 심야전기 요금은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시골 사는 우리가 이 정도일진대, 도시인들 삶은 오죽 심할까.


태그:#기름값, #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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