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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물 건너, 호수 건너서~ 신비의 섬 오메떼뻬를 향해

니카라과 호수 한 가운데에 있는 화산 섬 오메떼뻬(La Isla de Ometepe). 오메떼뻬는 원주민 언어로 '두 언덕(two hills)'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콘셉시온(Concepcion)과 마데라스(Maderas) 화산이 마치 낙타의 등처럼 나란히 솟아 있는 꼴이다. 한데, 그라나다에서 우리의 목적지인 이곳 오메떼뻬의 메리다(Merida)마을까지 가는 여정이 그리 만만치 않다.

오메떼뻬 메리다 마을까지 가는 여정
1. 그라나다에서 셔틀버스타고 산 호르게(San Jorge) 선착장 도착 (약 1시간 30분 소요)
2. 산 호르게에서 배 또는 페리를 타고 오메떼뻬 섬의 입구인 모요갈파(Moyogalpa) 도착(약 1시간 30분 소요)
3. 모요갈파에서 차를 타고 마데라스 화산 아래에 있는 메리다 마을에 도착(약 1시간 30분 소요)


주변 배낭객들의 경험을 전해들어보면, 오메떼뻬 섬에 도착 후, 모요갈파에서 메리다까지 가는 길 상태가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봤자, 비포장 도로 아니겠는가?

오전 10시 30분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그라나다의 티에라 투어(Tierra tours)에서 제공하는 셔틀 버스를 타고 페리 선착장이 있는 산 호르게로 향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승합차이지만, 그래도 니카라과에서 탄 것 중에 가장 호사스러운 것이었다. 에어컨에 널찍한 좌석에 앉아 로컬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주는 올드 팝송을 들으며, 눈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그라나다 풍경을 바라본다. 갑자기 도로 한 복판에 끼어들어 느릿느릿 가로질러 가는 소떼들, 바나나 가로수 길, 치킨버스(꽉 찬 일반버스를 일컫는 말)... 눈에서 멀어지는 것 하나하나까지 놓칠세라 기억 속에 차곡차곡 넣어둔다. 안녕, 그라나다.

드디어 산 호르게 선착장 도착. 며칠 전 라스 이슬레타스(Las Isletas)에서 카약을 탈 때, 이미 니카라과 호수 물살의 매운맛을 톡톡히 경험한 바 있다(말이 호수지, 겉보기엔 딱 바다같다). 보트를 타는 뱃삯이 28 꼬르도바이니, 페리가 60 꼬르도바인 것에 반해 무지 저렴한 가격이다. 그러나 작은 보트를 타고 가는 건 아무래도 위험천만해 보인다. 우리는 두말할 것없이 페리를 선택했다(미화 1달러=약 22꼬르도바).

San Jorge 페리 선착장. 니카라과 호수의 거센 물살이 장난이 아니다.
 San Jorge 페리 선착장. 니카라과 호수의 거센 물살이 장난이 아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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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라지만 물살은 역시나 바다 뺨친다. 올리브색 물결을 가르며 작은 여객선이 통통통 항해를 나섰다. 그러자 곧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아래 위로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배 안에 앉아있는 외국 관광객들도 눈을 휩뜨고 신기한 듯 주변을 살핀다. 멀미약을 준비했어야 했나... 후회가 막급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구름에 뒤덮여 있는 콘셉시온 화산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뿌연 안개 속의 신기루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미지의 섬을 탐험하러 들어가는 것만 같아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페리에서 바라보는 오메떼뻬 섬의 모습이다.
 페리에서 바라보는 오메떼뻬 섬의 모습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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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잡아 타고 마데라스 화산이 있는 메리다(Merida) 마을까지 가는 길. 우리는 외국인 청년 4명과 함께 거의 다 낡아 떨어진 승합차에 탑승했다. 미리 각오는 했지만 비포장 도로의 수준은 생각보다 더 황당하다. 이러니 차에 제대로 붙어있는게 없지. 이미 안쪽 문짝도 떨어져 나간 상태다. 마치 ATV를 타고 바위산을 달리는 기분이다. 차 손잡이를 붙잡고 있지 않으면 몸이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상황. 이것도 낯선 곳에서의 색다른 추억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가만보니, 차 뒷거울에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하얀색 글귀가 보인다. 어라? 앞창에는 김아무개 이름과 핸드폰 번호까지 그대로 써있다. 한국 중고차를 사용하고 있던 것이다. 운전사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안 후, "부에노(좋아요)"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런 황당한 길을 하루에도 몇번씩 버티어 내고 있는 한국차, 그러고 보면 내구력이 대단한 거다.

바나나 농업이 이 섬의 주업인가보다. 길가에는 수많은 바나나 나무가 빼곡히 서있다. 소와 말 또한 이곳의 주요한 운송수단. 등에 바나나 더미를 올려 이동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인도, 차도도 따로 없다. 그저 말, 소, 돼지, 닭, 개, 사람 모두가 같은 도로를 공유하고 있을 뿐.

거리마다 바나나 나무가 웅성하다.
 거리마다 바나나 나무가 웅성하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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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농장 호텔

드디어 우리가 머무를 메리다 마을에 있는 하시엔다 메리다(Hacienda Merida)에 도착. 하시엔다(Hacienda)는 스페인어로 '농장, 커다란 집'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럴 만하다. 이 호텔의 시스템이 마치 무슨 수련원에라도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벽면에는 빼곡하게 생활 수칙, 쓰레기 분리수거, 주의 사항에 대한 안내문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벽면에 빼곡히 적혀있는 안내수칙들
 벽면에 빼곡히 적혀있는 안내수칙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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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알바로 몰리나(Alvaro Molina)씨는 지역사회의 환경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미 오메떼뻬 가이드 북 집필과 친환경 교육 등 섬 보호운동에 의욕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하루에 두 차례 이곳에서 야학이 벌어지고 있다. 장기 체류중인 영어권 배낭객이 이곳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면, 투숙비와 식비를 좀 깎아주는 모양이다. 수업이 진행되는 곳 주변엔 몇 개의 방이 있는데, 하필 칠판 바로 옆에 우리 방문이 있었다. 야학 중에는 방에 들어앉아 있기 힘들만큼 시끄러운 데다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이만저만 눈치를 주는 게 아니다. 어쩌겠는가? 좋은 의도로 하는 야학이니, 항의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처음 방에 들어서니 침대 위에 환영의 꽃이 장식되어 있었다. 게다가 하얀색 캐노피가 천장 아래로 길게 내려져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기도 잠시, 꽃을 치워보니 꽃잎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작은 개미떼들이 어느덧 침대 위를 장악하고 있는게 아닌가? 뭔가 어설프다. 이번엔 침대 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무릎 위로 알수 없는 물체가 툭 떨어진다. 뭔가하고 빤히 봤더니, 도마뱀 한마리가 휘리릭 지나갔다. 기겁할 노릇이다. 이건, 지나치게 친환경적인 것 아닌가?

이곳에서 제공하는 음식도 대단하다. 모든 음식은 지역 식자재를 이용하는데, 특히 닭, 돼지 등은 마당에서 자유롭게 풀어 키운 것들이다. 아침 저녁은 뷔페. 종소리와 함께 식사시간을 알린다. 밥때를 놓치면 따로 주문해 먹어야 한다. 호텔 근처는 그야말로 깡시골이라 밖에서 다른 것을 사먹기도 힘들다. 하지만, 다행히 음식맛은 니카라과에서 먹은 것 중 단연 최고였다. 남은 음식물은 돼지 사료로 쓰고 있었다.

소년들의 습격

워낙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관계로 호텔에서는 승마, 낚시, 수영, 카약, 등산들을 할 수 있도록 알아서 서비스 하고 있었다. 특히 일인당 미화 15달러를 주면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무한대로 카약을 즐길 수 있다. 조금 비싼듯 하지만, 섬 주변을 탐험하는데 카약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게다가 이곳의 카약은 얼마 전에 니카라과 호수에서 탔던 것과 수준이 확연히 달랐다. 프론터 일을 하던 젊은 청년은 일몰이 시작될 무렵이 카약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귀띔해줬다.

우리의 목적지는 원숭이 섬(Monkeys Island). 예전에 사람들이 집에서 키우던 원숭이를 하나 둘씩 이 작은 섬에 풀어줬는데, 이제는 '원숭이 섬'이라 일컬을 만큼 그들이 섬을 장악하고 있단다. 근데 녀석들의 성격이 장난이 아닌가보다. 호텔 벽면에는 원숭이를 자극하거나 놀리면 물릴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크게 써있다. 먹이를 줘서도, 가까이 가서도 안된다니, 정말 원숭이떼 습격이라도 당할세라 걱정이 앞선다.

호숫가에 비치되어있는 카약을 타고 고요한 물 위를 차락차락 노 저어간다. 곧 콘셉시온 화산이 보였다. 꼭대기는 항상 화산연기와 구름이 뒤엉켜있어 그 모양이 볼 때마다 다르다. 산할아버지의 구름모자는 때로는 슈크림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넓다란 버섯모양처럼 그윽하다.

콘셉시온 화산을 바라보며 카약을 즐기고 있다.
 콘셉시온 화산을 바라보며 카약을 즐기고 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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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05년부터 콘셉시온 화산 분출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니카라과 정부당국은 오메떼뻬 주민들을 섬으로부터 철수시키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이 섬에서 죽겠다며 정부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한다. 무엇이 이들을 이곳에 남게 했을까? 오메떼뻬 섬은 그들에게 단순한 삶의 터전 이상의 것임이 틀림없다. 앞으로 이 섬에 대한 불행한 소식을 해외 토픽으로 듣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콘셉시온이 화를 누르고 평온을 찾기를, 그래서 영원토록 이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주길 희망한다.

콘셉시온 화산
 콘셉시온 화산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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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하기엔 조금 이른 시각. 우선 기슭을 따라가 본다. 물가에서 빨래하는 아낙, 멱 감는 할머니, 그리고 새, 돼지, 소, 말, 강아지, 닭들이 아이들과 함께 이 물과 땅에서 어우러진다.

카약 중. 호수 근처에 몇 개의 가옥이 보인다.
 카약 중. 호수 근처에 몇 개의 가옥이 보인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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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개구지게 물장구치고 노는 두 소년들과 눈이 마주쳤다. 소년들은 눈짓으로 뭔가 모의를 하는가 싶더니, 우리쪽으로 빠르게 헤엄쳐 온다. 설마…가 사람잡았다! 갑자기 카약을 잡고 흔들며 장난을 건다. 우리는 초 긴장 상태로 "노우(No)"를 연거푸 외쳤다. 이 녀석들! 딱봐도 얼굴에 장난끼가 한 가득이다. 그러나 이 착하고 순박한 소년들은 우리가 요란을 떨자 재밌었다는 듯 금세 헤엄쳐 되돌아 갔다.

카약을 흔들어대던 소년. 얼굴에 장난끼가 한 가득이다.
 카약을 흔들어대던 소년. 얼굴에 장난끼가 한 가득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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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원숭이 섬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는데, 근처에 이르자 갑자기 물살이 거세진다. 카약이 요동치며 섬 근처로 밀려들어가고 있다. 드디어 원숭이떼 습격을 당하겠구나! 섬에 닿이면 큰 일이라도 날세라 미친듯이 노를 저었다.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드디어 나무 위에서 식사중인 원숭이 몇 마리 발견. 작고 검은 체구에 하얀색 얼굴을 지닌 녀석들이다. 우려했던 습격은커녕 과일을 맛나게도 먹고 있다. 

원숭이 섬(Monkeys Island)에 서식하고 있는 하얀 얼굴 원숭이들이다
 원숭이 섬(Monkeys Island)에 서식하고 있는 하얀 얼굴 원숭이들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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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방향을 돌려 되돌아 오던 중, 하늘과 호수가 오렌지빛 태양에 물들기 시작한다. 고층 빌딩도, 사람도, 자동차도, 욕심도 경쟁도 없는 이 고요한 공간을 간간히 들리는 새 소리와 차락차락 물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과일 주처럼 물든 붉은 빛의 하늘과 호수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아름다움에 취기가 오른다.

석양이 지는 풍경
 석양이 지는 풍경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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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1년 1월, 2주간의 니카라과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하연주, 박인권 부부가 공동 작성하였습니다.



태그:#오메떼뻬, #니카라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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