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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안성 칠장사에서 열린 '구제역·조류독감 종식 발원 및 희생동물 천도제'에서 스님들이 동물 영정을 향해 합장을 하고 있다.
 10일 안성 칠장사에서 열린 '구제역·조류독감 종식 발원 및 희생동물 천도제'에서 스님들이 동물 영정을 향해 합장을 하고 있다.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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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칠장사 언덕에 봄은 멀고 바람만 일었다. 천도제를 위해 곳곳에 달아놓은 꽃종이들이 매서운 바람에 휘날렸고, 풍경(風磬)이 두서없이 울었다. 동물을 위한 천도제는 아마도 처음이어서 진행하는 이들이나 참여한 이들이나 마음이 정처 없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구제역으로 이 땅에서 희생된 동물은 수도 없는데, 그것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 또한 인간의 편의일 뿐이어서 입에 주워 담을 때마다 사람의 언어는 서걱거렸다. 몇 백만이라는 숫자는 그저 숫자로 읽힐 뿐, 그것이 가리키는 진실과는 가없이 멀어 아득했다.

이날 절 마당 한 가운데는 소와 돼지와 염소와 닭과 오리의 영정이 걸렸고, 그 앞의 제사상에는 위패와 함께 배추, 당근, 미나리, 잡곡, 무, 오이가 차려져 있었다. 살아서 당근과 배추를 먹어야 할 소와 돼지가 없어 무참했다. 범패(梵唄) 소리가 골짜기를 울리는 사이, 신도들이 술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그 뒤를 따라 노스님들이 가사 장삼 자락을 이끌고 동물들의 영정 앞에 맨 머리를 숙였다. 죽은 동물도 가여웠으나 그 풍경을 살아서 겪어야 하는 사람들도 가여웠다.

먹고 자고 울고 말하는 것이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동물도 목숨은 목숨일 것인데, 그들을 묻는 자리에 생명에 대한 경외 같은 것은 없었다. 얼마간의 사람들이 돼지가 생매장당하는 동영상을 온라인 상에 이리저리 옮기며 참상을 알렸다. 8분 남짓의 동영상에는 태어나 처음 듣는 아비규환이 담겨 있었고,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던 한 여성이 목을 놓고 엉엉 울었다.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천도교 대교당에서 천도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35개 단체와 동물사랑실천협회 주최로 열린 '구제역 살처분 방식의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제역으로 생매장되는 돼지들의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천도교 대교당에서 천도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35개 단체와 동물사랑실천협회 주최로 열린 '구제역 살처분 방식의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제역으로 생매장되는 돼지들의 동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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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미터 남짓 구덩이에 수천 마리 돼지가 묻혔다. 먼저 구덩이에 던져진 돼지들은 세로로 선 채로 압사당해 죽었고, 맨 나중 지표면과 거의 같은 높이에 묻힌 돼지들은 흙이 덮이고 매몰이 끝난 그 다음날이 되도록 땅속에서 울었다고 했다.

안성불교사암연합회 혜담 스님은 축산농가와 방역작업에 참여한 관계 공무원들을 위로한 후에, 매몰 축생들의 극락왕생을 겨우 기원했다. 혜담 스님은 죽은 동물들에게 이렇게 전하는 것으로 말을 마쳤다.

"모든 원한과 근심을 내려놓고 떠나거라. 그리고 이 사바세계에 다시는 나지 말라."

바라춤이 펼쳐지는 사이, 바람이 다시 불었고, 영정을 걸어놓은 병풍이 쓰러졌다. 낭독된 발원문에는 "엎드려 참회하고 또 참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개 숙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 참회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일었다. 

법문에 나선 각현 스님은 이번 구제역과 조류독감을 "단군 이래 가장 최대의 가축재앙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 누구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지금 온 공간이, 인간의 무지와 탐욕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수백만 마리 가축들의 억울함과 분함, 증오심과 원망으로 가득 찼다"는 스님의 말은 서늘했다. "자비는 나와 내 가족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사회가 아름답고 조화로우려면 모든 뭇 생명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사유하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지금을 위로할 것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10일 안성 칠장사에서 열린 '구제역·조류독감 종식 발원 및 희생동물 천도제'
 10일 안성 칠장사에서 열린 '구제역·조류독감 종식 발원 및 희생동물 천도제'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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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는 안성불교사암연합회가 주관해 천도제와 법요식, 2부로 나눠 불교 전통의식으로 치러졌다. 스님들과 축산업자, 신자들 100여 명이 참여했다. 행사 때면 어김없이 얼굴을 내밀던 정치인들과 사회단체 대표들은, 초청하지 않아 이날 아무도 자리하지 않았다.

"얼마나 원망이 많을 것인가? 소와 닭, 돼지, 염소, 오리. 인간의 무지와 탐욕을 용서하고 원망을 풀고 다시는 가축으로 태어나지 말라."

다시 태어나지 말라는 각현 스님의 명령은 어떤 송사보다도 서러워 가슴이 저렸다. 그날 칠현산이 종일 울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성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구제역, #살처분, #천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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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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