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론연대)가 13년간 몸담았던 프레스센터에서 "쫓겨나" 서대문으로 사무실을 옮긴다.
1998년 창립 이후 무상으로 사용해오던 프레스센터 건물에 대해 언론재단이 임대료와 보증금을 내지 않으면 퇴거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 프레스센터는 언론재단과 한국방송광고공사 그리고 서울신문이 공동으로 소유·관리하고 있다. 언론재단은 언론연대를 상대로 강제퇴거 등의 법적 절차를 진행했고, 결국 언론연대가 패소했다. 박영선 언론연대 대외협력국장은 "임대료와 보증금을 내겠다고 했는데도 언론재단 측에서 우리가 프레스센터에 있는 것이 '곤혹스럽다'며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이사'를 앞둔 16일 오후, 언론연대는 '광화문 시대'를 마감하며 후원의 밤을 열었다. 언론연대는 이날 발표한 결의문을 통해 "언론개혁시민운동의 결사체가 프레스센터에서 쫓겨난다. 이 단 한 줄의 사실이 고백하는 징후적 실체는 단연 공공성 해체"라며 "우리는,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워온 우리는, 미디어공공성을 위해 결사해온 언론개혁시민연대는 공공건물 프레스센터에서 쫓겨날 어떠한 이유도 근거도 정당성도 알지 못한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수치스러웠고, 화가 났지만 고심에 고심을 더했다. 우리는 흥분하지 않고 인정하기로 했다. 그냥 씨익 한 번 웃어주고 떠나기로 했다"면서 "(언론연대가) 미디어 공공영역의 생태 회복에 혼신의 힘을 다 해 머잖아 프레스센터가 공공프레스센터로 호명되는 날,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며 이와 같이 말했다.
"굿바이 프레스센터, 프레스센터야 안녕~" "오늘의 자리는 쫓겨나는 자리가 아닌 비움의 자리" "프레스센터를 떠나는 걸 하나를 마무리하고 다른 하나를 준비하는 졸업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준상 언론연대 사무총장의 말처럼 이날 후원의밤 행사장에는 슬픔과 희망이 교차했다. 역시 프레스센터에 사무실을 둔 언론노조의 이강택 위원장은 "아마 언론연대를 다른 곳으로 떠나보내게 되는 아픔을 가장 피부로 느끼는 곳은 언론노조가 아닐까 한다. 가장 가까운 데 있었고, 언제나 왕래했고, 마치 입술을 잃어버린 것처럼 안타까움 마음이 든다"고 탄식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그러나 언론연대가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 2년 후에는 다시 이 프레스센터에 당당하게 복귀할 거라 믿는다"며 "오늘이 그 결의를 다지는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 역시 "오늘의 이 자리는 쫓겨나는 자리가 아니라 그 전의 것을 다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한 비움의 자리"라며 "고통스럽고 힘들고 또 어려운 자리지만, 과거의 것들을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출발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날 후원의 밤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도 참석했다. "이런 일이 있을 적마다 날보고 자꾸 나서라 해서 나서기도 쑥스럽다"고 말문을 연 백기완 선생은 '막패'와 '서돌'이라는 낱말에 얽힌 이야기를 전했다.
"일본 놈들이 우리를 침탈했을 때, 수십 년 살아온 고향에서도 집 한 채 없이 쫓겨나다 보면 몸이 고달프기도 하지만 앞이 잘 안 보인다. 눈은 있는데 앞은 안 보이고, 가야 할 앞도 없는 이 어둠을 막패라고 그런다. 밤새도록 걸어도 먼동이 밝아오지 않고, 밝아와도 우리의 밝음이 아니다. 이럴 때는 우리가 서돌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화딱지, 노여움. 그 노여움이 마침내 불꽃이 되면 서돌이 우리들의 내일이 되고, 아침이 된다. 언론자유를 위해서 피투성이 싸움을 하시는 여러분, 현대 자본주의 문명이 있는 한 우리는 오늘 이 밤을 껌뻑 지새워도 새벽은 아니온다. 독점자본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한 우리의 앞날은 막패로 가로막혀 있다. 여기서만 쫓겨나는 게 아니다. 서대문 가면 또 쫓겨난다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 자신이 불덩어리가 돼서, 우리 자신이 서돌이 되자. 그러면 언론개혁연대 여러분들이나 저처럼 할아버지의 앞에는 밝은 날이 이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자."언론연대는 오는 4월 4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공공미디어연구소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