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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또 빤한 이야기다. 이미 본 기자도 올린 바 있고 여러 시민기자들이 올린 바 있는 개인정보유출에 관한 이야기. 그러나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한 것 같아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아야 하는 생각에 글을 올린다.

 

1주 전 점심시간, 휴대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찍혔다. 누구지?

 

"여보세요?"

"예 손님. 휴대폰 대리점인데요. 왜 신분증을 가져오시지 않는 거죠?"

 

"예? 신분증이요? 휴대폰이요? 거기 어디죠?"

"내당4동 L통신사 휴대폰 대리점이요. 언제쯤 가시고 오실 거죠?"

 

"내당동이 어디죠?"

"네? 대구 내당동이요. 이희동씨 아닌가요?"

 

"제가 이희동은 맞는데 무슨 휴대폰을 만들었나요? 그것도 대구에서? 저 여기 서울인데요?"

"서울이요? 저희 매장에 오셔서 휴대폰 만드시지 않았나요?"

 

이름과 주민번호만으로 휴대폰을 개통?

 

상대방도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얼버무리려 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전화번호도 내 휴대폰에 남겨진 터라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결국 수화기 너머 점원 아가씨는 이어지는 나의 까칠한 질문에 기어드는 목소리로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저를 사칭한 사람이 언제 와서 휴대폰을 만들었죠?"

"2월 15일에 개통했어요."

 

"와서 제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던가요?"

"예. 지금 저희 매장에 카메라가 있는지라 그 사람을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믿을 수가 있나. 아무리 그래도 이름과 주민번호만 있으면 휴대폰 만드는 게 가능해요?"

"물론 안 되죠. 마지막으로 신분증을 받아야 하는데, 가끔 고객님들이 깜빡했다고 하고, 매우 급하다고 하면 우선 개통해 줍니다. 다음 날이라도 신분증 가지고 오라고 하면서."

 

"아니 그러면 다음 날이라도 당장 전화해 봐야지, 근 한 달이 지나도록 방치한 거예요? 그럼 그 사람은 지금까지 내 이름으로 휴대폰을 사용했었고?"

"아니오, 고객님. 다행히 그 새로 개통한 휴대폰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저희가 매장 직원 이름으로 명의변경했고요, 고객님한테 피해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모든 것이 저희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이게 죄송하다고 해결될 일인가요? 그 사람은 어디선가 또 내 명의를 도용하고 다닐 텐데. 그 휴대폰은 당장 해지시킬 수 있나요? 또, 지금 제 번호는 어찌 안 거죠?"

"그게, 개통하고 나서는 3개월 동안 해지를 못 시켜서 어쩔 수 없고요. 저희도 계속 개통한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는데 안 받네요. 그리고 고객님 전화번호는 전에 이동통신 변경하기 전에 썼던 기록이 남아 있었고요."

 

"개인정보유출의 경우는 너무 많아서요"

 

결국 문제는 대리점에서 신분증도 받지 않고 휴대폰을 개통해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믿음이 충만한 사회도 아니건만, 실적에 눈이 멀어 개인 확인도 않은 채 개통해준 대리점. 그것은 고객 하나가 자신의 실적으로 둔갑하는 구조의 문제요, 개인의 정보유출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회 통념의 문제였다.

 

혹시 이는 특정 대리점만의 문제일까?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OO통신사 대표전화에 전화해서 물었더니 민아무개라는 상담원이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대리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고객이 신분증을 금방이라도 갖다 줄 것 같으면 종종 그러는 경우가 있다고. 어쨌거나 자신들의 실수이니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하는 그녀.

 

그러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에서 개인의 신상정보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할 수 있단 말인가. 내친 김에 경찰에도 전화를 걸었다.

 

"수고하십니다. 개인정보유출 때문에 전화했는데요."

"예. 말씀하세요."

 

"누군가가 제 명의로 휴대폰을 만들었다고 대리점에서 연락이 왔는데 현실적으로 그 사람을 잡을 수 있나요?"

"아, 예. 개인정보유출의 경우는 너무 많아서요."

 

"결론적으로 개인정보유출은 잡을 수 없다는 거죠?"

"물론 그렇게 딱 이야기할 수는 없고요."

 

"확언은 못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는 거죠?"

"예. 현실적으로 힘들죠."

 

부디, 개인정보보호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

 

물론 경찰이 내 개인 명의를 도용한 범인을 잡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듯이 개인정보도용이 너무도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우리 사회에서 그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경찰이 이와 같은 개인정보유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범죄인 것은 인정하나, 요즘 같은 시대에 개인정보유출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 과연 이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개인정보유출을 막을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 사회는 개인정보유출에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이는 결코 정보화 시대의 필연적 결과만은 아니다. 분단 이후 강력한 국가가 개인을 통제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을 도입했고, 이와 같은 전통이 당연한 것인냥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를 따라가지도 못하면서 기존의 강력한 국가주의를 핑계 삼아 인터넷 실명제다 뭐다 하면서 개인의 사적 정보를 갈취하고, 이를 제대로 간수 못해 개인정보유출을 당하는 정부. 결국 개인정보유출은 시대의 필요악이라기보다 우리의 역사적 산물이요, 그 부작용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도 개인정보 관리에 있어 만전을 기해야 한다. 결국 최근에 벌어진 '상하이 스캔들' 역시 그 본질은 허술한 개인정보관리와 안일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물론 나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는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 터전을 두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부디 정부와 기업들이 각 개인의 정보유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참, 그리고 내 이름으로 휴대폰 개통하신 010-8014-XXXX 주인은 끝까지 전화 받지 마시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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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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