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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국정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 2008년 촛불시위 단체와 시민들에 대한 일부 상인들과 경찰의 소송 ▲ 미 쇠고기 수입업체 에이미트의 배우 김민선씨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PD수첩>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 KBS의 방송인 김미화씨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의 지하도 상가 중소상인에 대한 민·형사 소송.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이 나열한 이명박 정부 이후 나타난 '국민의 입을 전략적으로 봉쇄하려는 시도들'이다.

안진걸 팀장은 17일 오전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촛불시민에 대한 서울시의 민사소송,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돈과 권력이 있는 집단이 그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 민·형사상으로 압박을 가하면서 국민들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의 주제가 된 '촛불 1주년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서울시의 민·형사 소송'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하이서울페스티벌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촛불시민' 8명에게 2억여 원을 '연대배상'할 것을 요구했고,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 촛불시민들은 이미 공무집행방해 및 업무방해로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관련기사 : "촛불집회에 3천만 원 내라니...파산지경")

"전략적 봉쇄소송으로 성취할 수 있는 공익은 없다"

 17일 국회도서관에서 '촛불시민 민사소송,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17일 국회도서관에서 '촛불시민 민사소송,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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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서는 크게 '전략적 봉쇄소송'과 '민법 760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시민들의 공적 발언 및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소송, 즉 전략적 봉쇄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SLAPP)에 대한 발제를 맡은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08년~2009년 들어 전략적 봉쇄소송들이 시민들의 공적발언의 대상이 되었던 정부기관에 의해 제기되는 경우가 늘어났고, 이 전략적 봉쇄소송들은 실제로 상당한 위축효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그 소송이 수반하는 비용, 시간 및 정신적 부담 등을 그러한 발언 및 참여를 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부과하여 결과적으로는 한 시민에게 제기된 소송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발언과 참여를 자제시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이러한 전략적 봉쇄소송에 '공익적 측면'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상당수는 법원에서 원고패소 또는 무죄로 끝이 나면서 그 소송은 시민발언자나 참여자들을 위축시키는 폐해만 있었을 뿐 성취된 공익은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연방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청원 및 표현의 자유의 행사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그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가 사법 및 입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전략적 봉쇄소송을 규제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박 교수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기한 측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는 미국의 '슬랩(SLAPP) 억제법리'를 소개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피고가 자신의 공적 발언이나 참여활동에 대해 소송을 당해 각하신청을 할 경우, 원고가 승소의 개연성을 사전에 입증하지 않는 한 각하신청을 받아들인다. 또 각하신청이 받아들여지거나 피고가 승소한 경우에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변호사 보수를 포함한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한다. 이러한 '슬랩 억제법리'는 현재 미국 27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한국에서는 각하신청을 하더라도 소송이 거의 끝날 무렵에나 각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이러한 '슬랩 억제법리'가 받아들여지는 데는 난제가 있다"고 말했다. 각하 신청이 조기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소송은 장기화된다.

박 교수는 "미국의 경우 소송을 조기 종결하기 위해 재판의 각 단계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원고든 피고든 자신의 주장을 확정짓지 못하면 각하시켜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집중심리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며 한국에서 소송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집회·시위 과정에서 나타나는 피해·손실은 민주주의에서 당연한 것"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가 예정돼있는 서울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이 차량으로 에워싸 원천봉쇄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서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가 진행중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가 예정돼있는 서울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이 차량으로 에워싸 원천봉쇄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서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가 진행중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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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또 하나의 주제는 서울시가 촛불시민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는 데 주요근거가 된 '민법 760조'였다. 민법 760조에 따르면, 공동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이에 따라 원고 서울문화재단은 촛불 1주년 시위로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식이 취소된 것에 대해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연대책임을 물어 지출비용의 30%를, 서울시는 위자료를 청구했다.

하지만 김제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모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 공동불법행위를 인정하는 데 있어서 외국에서는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단순가담의 경우에는 연대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참가한 단체가 여러 개이고, 그 중에는 특정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 수많은 사람의 천태만상 행위를 모두 포괄해 하나의 행위로 보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단체가 만약 하이서울페스티벌 분쇄 국민회의였다면 연대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사전 공모 없이, 다른 목적으로 행위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분할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하이서울페스티벌 방해'가 손해배상청구의 이유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생명·신체·재산상 피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피고들의 행진, 단상점거, 구호제창 등으로 인해 이미 지출된 홍보비용 등의 손해를 입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의 가장 기본적인 틀이고 민주주의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피해나 손실은 그 사회가 민주주의로 구성됨으로써 나타나는 당연한 희생이고 전제여야 한다"며 "집회나 시위 과정에서 생긴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민법의 해석에 충실할지는 모르지만 헌법에는 위배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민법질서라는 것도 헌법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 역시 "법률은 명확성의 원리가 있어야 하는데 760조는 누가 보더라도 굉장히 추상적이다"라며 "이렇게 불명확한 규정으로, 인과관계가 일부 인정된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연대책임을 물게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과하다"고 말했다.

또한 "집단적 의사표현을 사회적으로 보호해야할 측면이 있음에도 불가하고, 집단이 모이니까 벌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주최 측이나 운이 없는 누군가가 책임을 지는 것은 헌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며 "오늘 토론을 계기로 슬랩과 760조에 대한 대응이 있어야한다"고 덧붙였다.


#하이서울페스티벌#촛불시민 민사소송#오세훈#전략적봉쇄소송#민법76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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