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전격 귀국하자 덩달아 홍혜경씨도 바빠졌다. 한 전 청장을 대상으로 검찰조사가 시작되면서 남편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이 참고인 조사대상으로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이후 홍씨는 거의 날마다 서울구치소에서 안 전 국장을 접견했다.
검찰이 수사 중인 ① 그림로비 의혹 ② 유임로비 의혹 ③ 태광실업 표적세무조사 의혹 중 ②와 ③이 안 전 국장과 직결되어 있다. 실제 안 전 국장은 2008년 초 한 전 청장의 부탁으로 정권 실세를 만나 유임로비를 벌였고, 한 전 청장으로부터 태광실업 세무조사 참여를 권유받았다.
이명박 정권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사안의 중심에 안 전 국장이 서 있는 셈이다.
검찰은 최근 안 전 국장을 두 차례 소환해 새벽까지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애초 계획했던 '한상률-안원구' 대질신문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상률을 조사하는 건지 나를 조사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최근까지 안 전 국장을 접견해 온 홍혜경씨가 지난 16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났다. 안 전 국장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가 한 전 청장 귀국 이후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홍씨는 먼저 한 전 청장의 귀국 시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한 전 청장은 지난 2009년 미국 기자회견에서 '5년 연구계획'으로 왔다고 했는데 2년 만에 돌아왔다"며 "그 사이에 부인은 수술했고, 한 전 청장은 여기저기에서 고발을 당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한 전 청장은 고발건 때문에 검찰에서 귀국을 종용했지만 귀국하지 않았다"며 "(그런 점에서) 부인이 수술하는 일이나 고발로 인해 검찰조사를 받아야 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돌아온 것 아니겠느냐"며 '기획입국설'에 힘을 실었다.
'더 중요한 일'과 관련, 홍씨는 "아직 권력의 힘이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의혹과 관련해 면죄부를 받으려는 목적으로 이 시점을 택했을 것"이라며 "(본인의 면죄부와 정권의 면죄부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홍씨는 '한상률 의혹' 수사가 부실하고 축소된 채 진행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두 번째 소환조사는 오전 4시 30분까지 이루어졌는데 새로운 내용을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안원구) 문건에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며 "안 전 국장이 검찰이 '한상률을 조사하려는 건지 나를 조사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홍씨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에게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고 물으려면 검찰이 왜 필요한가?"라고 반문한 뒤, "검찰이 안 전 국장한테 적용했던 수사원칙을 한 전 청장에게 적용한다면 이렇게 갈 수 없다"며 "(안 전 국장이 제기한) 한상률 의혹의 진위는 참고인 조사로 밝혀지는 게 아니라 검찰의 한상률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홍씨는 "안 전 국장은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며 "안원구 문건이 아닌 한 전 청장을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씨는 "검찰은 안 전 국장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을 찾아내 그걸 부각시키려고 한다"며 "(한상률 의혹 검찰수사를) 마치 '한상률-안원구'의 대결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홍씨는 "(유임로비 의혹 등) 한상률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다 보면 정권 실세 등 권력과 연관된 부분이 드러날 수도 있지 않겠나"라며 "한 전 청장의 심기를 건드리면 예상 밖의 반응이 나올 수 있어서 (유임로비 의혹 등은) 수사를 안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특히 검찰이 한 전 청장과 주변인물의 계좌를 추적하지 않은 것과 관련 "계좌추적을 하면 덮기 어려워 그런가?라며 "계좌추적 자체가 한 전 청장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라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어렵게 이상득 의원 만나 유임을 부탁했는데 뒤통수 쳤다"검찰이 안 전 국장을 소환조사했을 때 조사의 바탕이 된 자료는 일명 '안원구 문건'이다. 국세청 윗선들로부터 사퇴압력을 받던 2009년 5~6월께 작성된 이 문건에는 ▲MB 친인척 재산조사 ▲신성해운 자금 수수관련 전직 검찰고위간부와의 빅딜 ▲금품 수수 전국 강연투어 ▲국세청 사조직화 ▲태광실업 기획세무조사 등 한 전 청장과 관련된 비리정보가 담겨 있다.
검찰은 지난 2009년 11월 안 전 국장을 압수수색할 때 이 문건들을 압수했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전혀 조사하지 않고 있다가 민주당과 참여연대 등이 고발하고, 한 전 청장이 2년 만에 귀국하자 뒤늦게 수사에 나섰다.
홍씨는 "왜 안원구 문건을 확보하고도 조사를 하지 않았는지 검찰에 묻고 싶다"며 "2009년 11월 2일 압수수색하고 보름 뒤 안 전 국장을 자정 넘어 긴급체포한 걸 보면 그 문건들을 분석해보고 체포를 결정한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서 체포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검찰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안 전 국장을 체포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안 전 국장이 '집사람이 화랑을 하니까 거기 가서 그림을 사라'고 했다는 게 검찰 쪽 주장인데, 그런 혐의라면 안 전 국장이 무얼 인멸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홍씨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주요쟁점이었던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과 관련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 포스코 정기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이름이 기록된 전표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며 "그 전표는 세무조사와 관련이 없고 공무상 취득한 자료여서 철저한 보안유지를 지시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홍씨는 "옛날에는 영수증을 다 수기로 쓴 모양"이라며 "한글인지 한자인지 모르겠으니 그 전표에 '이명박'이라는 전체 이름(full name)이 쓰여 있었다고 안 전 국장에게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홍씨는 유임로비 의혹과 관련 "한 전 청장은 지난 정부에서 주요 보직을 거쳐서 그의 인맥은 지난 정부 인사들에 집중돼 있었다"며 "반면 안 전 국장은 이상득 의원의 아들 등 같은 지역 사람들과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홍씨는 "안 전 국장은 이 의원의 아들을 통해 이 의원을 두 차례 만났다"며 "그런데 이후 안 전 국장이 '내가 이상득 의원을 어렵게 만나서 한 전 청장을 칭찬해줬는데 그가 내 뒤통수를 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 전 청장의 '10억 원 조성 의혹'도 유임로비 의혹과 관련된 것이다. 홍씨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은 안 전 국장에게 "정권 실세한테 10억 원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7억 원은 내가 만들 테니 안 (대구)청장이 3억 원을 만들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홍씨는 "인수위가 구성된 전후로 안 전 국장이 '한 전 청장이 3억 원을 마련하라고 하는데 나는 해줄 수 없다'고 했고, '매관매직은 안 된다'는 표현도 썼다"며 "정권 실세가 누구인지는 안 전 국장도 얘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감춰진 진실은 밝혀져야"이어 홍씨는 "한 전 청장은 연임에 성공한 이후 지방청을 다니면서 강연을 많이 했는데 안 전 국장은 그것을 그의 홍보본능이라고 생각했다"며 "그가 돈을 걷으러 다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홍씨는 "그런데 한 전 청장이 퇴임한 이후 전현직 국세청 사람들이 안 전 국장에게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제보를 많이 가져와 강연 수금 내용을 알게 됐다"며 "당시 수금자가 누군지 실명까지 제보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수금자의 승진 경로를 보면 돈을 걷으러 전국을 다녔다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한 홍씨는 안원구 문건을 근거로 태광실업 표적세무조사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오마이뉴스>에서 입수해 지난 11일 보도했던 안원구 문건을 보면, 한 전 청장이 안 전 국장에게 "2주에 한 번씩은 대통령님을 독대 보고한다"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홍씨는 "한 전 청장은 휴가 중인 안 전 국장을 불러서 '박연차 회장이 베트남에서 귀빈 대접을 받고 있어서 태광실업 베트남 계좌 추적 협조가 잘 안된다, 베트남 국세청장과 친분이 있는 안 국장이 도와줘야겠다'고 말했다"며 "그는 '이번 세무조사에 공을 세우면 대통령에게 얘기해서 명예회복시켜주겠다'고 세무조사 참여를 설득했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이에 안 전 국장은 '세원관리국장이 무슨 명분으로 조사업무에 투입되느냐'고 물었다"며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청와대 교감설과 관련) 정말 교감이 있었거나 한 전 청장이 안 전 국장에게 거짓말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홍씨는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진상조사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며 "감춰진 진실이 있다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