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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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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틀째, 날씨 맑음. 2011년 3월 11일.

창밖으로 담이 보이고, 담 위로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대나무 뒤로는 가지만 두드러진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하늘, 푸르다. 긴 앉은뱅이 탁자에는 찻잔과 우린 차를 담은 투명한 주전자가 놓여 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낙산사 설선당(設禪堂). 단청을 곱게 칠한 일자형 한옥 건물이다.

낙산사에 가거든 설선당에 들러 차 한 잔 하기를 권한다. 이곳에서는 차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그렇다고 성의 없이 주는 건 아니다. 나무쟁반에 찻주전자와 찻잔을 올려서 야무지게 내준다. 창을 마주하고 앉아서 창밖 풍경을 내다보면서 천천히 차를 마셨다. 발효차인 녹차라고 했다. 차를 마시는 동안 시간은 아주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바람이 대나무 잎을 스쳐 지나가면서 흔들어대는 것이 보인다.

낙산해수욕장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배낭을 꾸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낙산사였다. 어제저녁, 낙산해수욕장으로 가던 길에 낙산사를 보았고, 해수관음상을 먼발치에서 보았다. 내일 낙산을 떠나기 전에 낙산사에 들러야지 했다.

낙산해수욕장 모텔에서 낙산사까지는 걸어서 십 분 남짓. 절 후문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의상대가 보인다. 의상대 옆에 키가 큰 소나무 두 그루가 기품 있게 서 있다. 의상대 뒤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역시 바다는 동해가 제일이야, 하는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낙산사 의상대
 낙산사 의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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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홍련암
 낙산사 홍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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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천천히 여유를 가지면서 돌아보기 딱 좋은 곳이다. 의상대를 지나 홍련암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 나와 보타전 앞을 지나 해수관음상이 있는 곳까지 걸어간다. 해수관음상을 보고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걸어 원통보전으로 간다. 그 앞을 서성이면서 7층 석탑의 사진을 찍는데, 목탁소리와 함께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이끌려 원통보전 앞으로 올라갔다. 스님 한 분이 부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유리문을 통해 보인다.

그 앞을 서성이고 있자니 보타전으로 들어가던 보살님 한 분이 나를 보고 안으로 들어오란다. 아니요, 그냥 여기에 서 있는 게 좋아요, 하면서 웃었다. 문득 어제 오후, 진전사 법당 안에서 들었던 바람 소리가 생각났다.

통일신라시대(67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낙산사는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그래서 이곳에 화재가 나서 의상대와 홍련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들이 불에 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보물로 지정되었던 동종까지 소실되었다고 하니, 엄청난 화재였음이 분명하다.

낙산사 7층 석탑
 낙산사 7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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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가 불에 휩싸인 것은 지난 2005년 4월 5일. 양양 일대에 화재가 발생했고, 그 불씨가 낙산사까지 옮겨붙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낙산사가 불타는 모습은 TV 뉴스를 통해서 봤다. 나무로 지어진 전각들이라 불씨가 옮겨붙으면 순식간에 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화재의 흔적은 낙산사의 의상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불이 난 뒤, 낙산사는 재건되었고, 여전히 재건되는 중이었다. 새롭게 지은 전각들은 깔끔하고 수려했다. 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없으니,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렇더라도 지금 지은 전각들이 세월이 흘러 천 년 뒤에도 지금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수관음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걸어서 절을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설선당까지 왔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배낭을 방 한쪽에 내려놓고 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방안에는 은은한 찬불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설선당 안에는 차를 대접하는 보살님 한 분만이 있었다. 그분, 조용히 차를 우려내더니 나를 불러 찻잔과 찻주전자가 담긴 사각쟁반을 내어준다.

낙산사 설선당
 낙산사 설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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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차를 마셨다. 찻잔이 비면 채웠고, 그리고 마셔서 찻잔을 비웠다. 더불어 마음도 비워지는 것 같다. 찻주전자가 거의 비어갈 무렵, 세 명의 중년 여자들이 설선당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설선당 안이 부산스러워진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목청을 높인 건 아니다.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찻주전자가 다 비었다. 찻잔도 비었다. 이제는 일어나야 할 때인가, 할 때 보살님이 나를 부른다. 새로 우린 뽕차를 찻주전자에 다시 채워주려고. 찻물이 채워진 찻주전자. 다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찻잔은 다시 비고,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은은한 차향기가 감도는 방안에서 차를 마시고 있노라니 바깥세상의 일이 까맣게 잊힌다. 태곳적부터 이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만 같다.

한 시간 반은 족히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언제까지나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일어섰다. 언제고 다시 찾아와 한가로움을 다시 만끽해야지, 하면서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섰다. 배낭을 메고, 신발끈을 조인다. 낙산사 후문으로 가는 길에 국수를 공양하는 식당을 지나치게 되었다.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1시 반까지 무료로 국수를 준단다.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 40분이 넘었다.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국수 한 그릇을 먹고 가야지. 식당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국수는 소박했다. 삶은 소면 한 덩어리에 국물을 붓고 양념간장 한 숟가락과 김치 몇 조각을 얹었다. 모자라면 더 먹으라, 는 말을 들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국물까지 죄다 마시고, 그릇을 씻어 엎어놓은 다음 식당을 나섰다. 이제부터 다시 걷는 거다.

해수관음상
 해수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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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많이 여유로워졌다. 예전에는 목적지를 정하면 그곳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는데, 요즘은 많이 더뎌졌다. 하도 걷다 보니 걷는 걸음은 빨라졌지만 걷는 마음은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길 위에 앉아 오래도록 쉬기도 하니 말이다. 여유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하조대.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양양읍내로 돌아갈 예정이다. 남편이 야간버스를 타고 양양으로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일 함께 구룡령 옛길을 걷기로 했다. 천천히 늑장을 부리면서 걸어도 해가 지기 전에 하조대해수욕장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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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를 나와 다시 낙산해수욕장을 지난다. 해변의 모래밭을 걷다가 길로 빠져나왔다. 모래밭은 걷기가 나쁘다. 발이 푹푹 빠져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힘이 도로를 걸을 때보다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해변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걷는다. 낙산대교를 걸어서 건너고, 다시 2차선 도로를 따라 걸었다.

오산해수욕장에서는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으려니,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파도가 밀려와 모래밭으로 파고든다. 아침에는 서늘하더니 낮이 되니 기온이 올라간다. 바람막이 점퍼를 벗고, 얇은 점퍼를 꺼내 껴입었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에 들렀다. 오산리 주변에 지금부터 6천 년 전에 사람들이 살았더란다. 신석기 시대였고, 사람들은 움집을 만들어 살면서 농사도 짓고, 수렵도 하고, 물고기도 잡았다고 한다. 오산리에는 쌍호, 라는 호수가 있어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그 쌍호에는 지금 갈대밭이 무성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갈대들이 대부분 누워 있어서 그렇지.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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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석기 유적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라는 오산리. 이곳에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는 데크가 깔려 있고, 움집 여러 채가 전시되어 있었다. 움집 앞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니 제법 넓다. 여름에는 비와 햇볕을 피하고, 겨울에는 추위와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곳, 움집. 이곳에서 야영 체험을 하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여직원들이 친절하게 맞이한다. 그래서 잠시 어리둥절했다. 지금까지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웃으면서 맞이하는 곳은 처음이다. 그렇다고 다른 곳이 특별히 불친절했다는 건 아니다. 내 배낭이 무거워 보였을까? 배낭을 맡기고 둘러보란다. 보관함도 있지만 안내실에서 직접 맡아주겠단다. 사진은 찍어도 되니 사진기는 들고 들어가고.

어딜 가나 친절한 사람은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배낭을 건네주고,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원시인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곳이 가장 볼만하다. 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무기를 만들고, 사냥을 하고, 생선을 잡아 말리고, 가죽에 무두질을 하고, 커다란 그릇에 먹을 것을 끓이는 사람들. 애초에 사람들은 아주 단순하게 살았다. 생존에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먹고, 자고, 입고. 그게 전부였다. 한데 지금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살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아니, 필요하다고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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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사는지 잘 모른다. 가장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건 아마도 이사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난해 가을, 이사하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뭐가 이리도 많아? 4톤 트럭을 꽉꽉 채우고도 남는 물건들. 가구와 가전제품들, 부엌살림과 옷들, 신발들, 옷들 등등. 비우고 버리면서 살아야 하는데, 늘 불필요한 것을 채우기에만 급급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닌가, 반성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잊고 만다. 물건들은 장롱이나 서랍이나 보관함 속으로 꽁꽁 숨어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원시인들을 보니, 그 생각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없애고, 가뿐하게 살아야지, 마음먹는다.

오산리 쌍호
 오산리 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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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여행을 떠나기 전 짐을 꾸릴 때도 마찬가지다. 걸어 다니므로 짐은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내려놓고 갈 줄도 알아야 여행이 즐거운 법.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막상을 짐을 꾸릴 때는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래서 물건을 들었다 놨다,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한다. 가끔은 꼭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지 않아 낭패를 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어차피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그것을 받아들이자, 고 마음먹으면 홀가분해지기는데 말이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은 볼거리가 제법 있다. 영상자료를 상영하는 곳에 들러서 동영상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린아이가 있다면 한 번쯤 들러서 원시인들의 삶을 탐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안내실에서 배낭을 받아 메고 있자니 여직원이 묻는다. 걸어서 오셨어요? 그렇다니, 어디로 가느냐고 또 묻는다. 오늘은 하조대까지 걸어가려고요, 대답했다.


태그:#도보여행, #강원도, #양양, #낙산사, #오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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