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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제목은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자사 제품 홍보 과정에서 감정 싸움을 벌인 것을 빗대어 뽑았습니다. [편집자말]
서울에서 천릿길, 진주는 거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진 문향의 고장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남강을 따라 천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물줄기가 크게 한 번 허리를 굽힌 곳에 지수면 승산리가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이 마을은 '부자동네'로 소문나 있다.

1921년 5월에 개교하여 2009년 3월 1일자로 폐교가 되어 인근 송정마을로 옮겼다.
▲ 지수초등학교 전경 1921년 5월에 개교하여 2009년 3월 1일자로 폐교가 되어 인근 송정마을로 옮겼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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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자동네로 불릴까? 그 의문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금세 풀린다. 골목마다 오래된 한옥들이 부지기수고, 마을의 지세를 보면 '풍수의 풍'자를 모르는 이도 부자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천석꾼은 명함 내밀기도 쑥스러울 정도로 부자가 많던 이 마을에는 폐교된 오랜 초등학교가 있다.

지수초등학교
 지수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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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지가 90년이 넘은 이 초등학교는 '지수초등학교'이다. 지금은 인근의 압사리 송정마을로 학교를 옮겼지만 예전에는 지수의 인재들이 초등교육을 받던 곳이었다.

폐교된 초등학교의 교정으로 갔다. 문을 닫은 지가 10년이 넘어 학교는 먼지로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학교는 말쑥했다. 학교 건물 앞으로 멀리서 봐도 예사롭지 않은 잘생긴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이른바 '재벌소나무'이다.

지수초등학교 출신인 LG그룹 구인회와 삼성그룹 이병철 등이 개교 당시인 1922년에 심었다는 소나무
 지수초등학교 출신인 LG그룹 구인회와 삼성그룹 이병철 등이 개교 당시인 1922년에 심었다는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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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잘생긴 반송으로 여겼으나 가까이서 보니 두 그루의 소나무 줄기가 붙어 있었다. 소나무 앞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교목: 소나무. LG그룹 구인회와 삼성그룹 이병철 등 1, 2학년 학생들이 개교 당시에 함께 심고 가꾸었다고 전해집니다.'

지수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소나무. 일명 재벌소나무라 불린다.
 지수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소나무. 일명 재벌소나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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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5월에 지수초등학교가 개교할 당시 LG창업주인 연암 구인회와 삼성창업주인 호암 이병철이 다른 학생들과 함께 심었다는 이야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병철이 전학 온 후인 1922년에 이 소나무를 심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구인회는 1907년생이고, 이병철은 1910년생이다. 연암 구인회는 당시 지수초등학교 2학년으로 편입하여 24년 중앙고보로 전학하기까지 3년여를, 이병철은 이듬해인 1922년 3월에 편입하여 9월 서울의 수송보통학교에 전학하기까지 6개월 정도를 다녔다고 한다. 당시 출석부에 구인회는 6번으로, 이병철은 26번으로 기재되어 있어 그들이 이 학교에 다녔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외에도 구인회의 장남으로 이 학교에 교사로도 근무했던 구자경 등을 비롯해  LG그룹, GS그룹의 주요 인사들이 지수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재벌을 키워낸 학교인 셈이다.

지수초등학교 출신인 LG그룹 구인회와 삼성그룹 이병철 등이 개교 당시인 1922년에 심었다는 소나무
 지수초등학교 출신인 LG그룹 구인회와 삼성그룹 이병철 등이 개교 당시인 1922년에 심었다는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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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화단 한쪽에는 구인회의 불망탑이 있다. 70여 년을 이어오던 지수초교는 재학생 수가 점차 감소하여 1999년에는 43명으로 폐교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총동문회에서는 학교를 살리자는 취지로 전학을 오면 살림집을 알선해주고 매달 30만 원씩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제안을 주요 일간지에 싣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에도 불구하고 2009년 3월 1일자로 결국 문을 닫게 된다. 학교는 인근 압사리 송정마을의 송정초등학교와 통합되어 '지수초등학교'라는 이름을 유지한 채 송정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학교 중심건물 옆으로 체육관이 있다. 이 건물은 폐교되기 전인 2002년에 총동문회장이었던 구자경 회장이 지었다. 자신의 호를 따서 '상남관'이라고 했다.

구자경 LG명예회장이 2002년에 세운 상남관
 구자경 LG명예회장이 2002년에 세운 상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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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리 마을사람들은 지금도 폐교된 지수초등학교에 아쉬움이 남아 있다.

"이곳에 학교가 있어야 하는데... 학생 수가 적어 결국 송정으로 가게 되었어. 학교 통폐합으로 어느 마을에 초등학교를 둘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가 있었지. 당시 송정하고 이곳 승산하고 학생 수 차이가 딱 3명이었지. 송정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어느 교사의 자제들이 이곳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송정으로 전학을 가면서 송정초등학교가 인원이 많아지는 바람에 송정으로 초등학교가 통폐합 되어버렸어."

마을에서 만난 주민 이동환씨와 허정완씨의 말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마을 주민들이 폐교된 학교에 얼마나 애착이 강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수초등학교 전경
 지수초등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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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수초등학교, #재벌송, #재벌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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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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