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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마을 입구에 세워진 비석
 회룡포 마을 입구에 세워진 비석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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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다. 언젠가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을 통해 회룡포의 절경을 보고 그곳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세월인지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경북 예천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고 회룡포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우리땅에 날 유혹하는 곳들이 워낙 많은지라 그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곳인데 다시금 기억을 되살려준 기회에 감사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회룡포를 소개하는 책자의 문구가 참 인상 깊다.

물을 그리워하는 섬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길과 몸을 섞고 싶은 육지라고 해야 할까요?

너무나 감성적인 소개글의 서두가 나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또한 이곳을 버선발을 닮은 안동 하회마을에 비유해서 금방이라도 가지에서 똑 떨어질 것 같은 호박을 닮았다고 표현한다.

낙동강의 제1지류인 내성천이 남쪽을 향해 흐르다 예천의 비룡산에 부딪쳐 굽이 굽이 돌아나가며 모래 사장을 만들었고, 그 위에 마을을 하나 뚝 떼어다가 얹어 놓은 것처럼 절묘한 물돌이 마을. 그 형상이 마치 용이 몸을 꼬며 돌아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회룡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회룡포 쉼터 주변에는 아직도 가을이 채 가지 않았다.
 회룡포 쉼터 주변에는 아직도 가을이 채 가지 않았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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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를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해서는 비룡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회룡대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 회룡포 마을에서 오르는 길과 장안사쪽으로 오르는 길이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장안사쪽으로 오르는 길이다. 회룡포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살핀 후, 마을 어귀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비룡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나선다. 꽤 가파른 길이 계속되어 숨을 헐떡거리게 된다. 게다가 시멘트 바닥이라 걷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나기 위해 이 정도의 고행은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10분쯤 걸었을까? 회룡포 쉼터가 보인다. 회룡포 쉼터라고 해서 음료수나 군것질거리를 파는 매점인 줄 알았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잡곡류와 약술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이제 곧 봄이 시작될 시기인데도 쉼터 부근은 아직도 때늦은 가을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곳엔 봄이 언제 오려나?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은 장안사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은 장안사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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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서 잠깐의 숨고르기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쉼터 뒤쪽으로는 아담한 사찰인 장안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우리나라에는 장안사라는 이름을 가진 3개의 사찰이 있다. 삼국 통일을 이룩한 신라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부산의 기장과 금강산, 그리고 예천에 같은 이름의 사찰을 지은 것이다.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는 이곳에서 '장안사에서'라는 절창을 지어냈다고 한다.

장안사에 머무르며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
하물며 고승 지도림을 만났음이랴
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는 나그네의 마음이더니
한 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
맑게 갠 절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
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옛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속에서 잦아드네

회룡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회룡대', 누각 아래쪽이 더 시야가 좋다
 회룡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회룡대', 누각 아래쪽이 더 시야가 좋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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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를 지나 길을 따라가다보면 큰 불상이 시선을 사로 잡고 그 옆으로 전망대에 오르는 계단이 이어진다. 이 계단은 300개가 넘는 만만치 않은 갯수이다. 1박2일에서 강호동과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며 올라갔던 것이 전파를 탄 후로 많은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똑같이 흉내를 내곤 한다고 한다.

100미터의 계단을 오르고 나면 회룡대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라는 것이 시야가 가장 잘 확보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나무가 시야를 가려 물돌이 마을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눈치 빠른 이들은 이미 전망대 아래에 내려가있다. 회룡대의 누각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회룡포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완벽한 물돌이 마을의 지형을 보여주는 회룡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완벽한 물돌이 마을의 지형을 보여주는 회룡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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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는 국토해양부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마을 1위로 선정되었고, 여행작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95명이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회룡포를 꼽았다고 한다. 예천 토박이이면서 문화해설사를 하고 계시는 분의 설명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룡포의 모습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 보통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찾아간 여행지는 기대가 큰 만큼 어느 정도의 실망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회룡포는 오히려 그 반대다. 보는 순간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은 기대 그 이상이다. 하얀 모래사장이 마을을 감싸고, 그 주변으로 물길이 다시 한 번 감싸고 있는 마을은 말 그대로 육지속의 섬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다시 한 번 산세에 보듬어진 마을은 포근한 느낌까지 안겨준다. 봄에는 화사함을, 여름에는 푸름을, 가을에는 황금들판을 보여줄 또다른 계절의 회룡포도 기대가 된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다. 전망대의 옆으로 난 계단을 내려가면 회룡포 마을로 갈 수 있다. 자가용을 가지고 갔다면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가 차를 가지고 마을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육지와 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 뿅뿅다리
 육지와 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 뿅뿅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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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와 '뿅뿅다리'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면 회룡포 마을에 들어선다. 마을에는 뿅뿅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가 2개가 있는데, 우리가 건너는 다리는 제2 뿅뿅다리로 불린다. 입에 착 달라붙는 이름을 가진 다리, 그 이름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다.

어느날 한 기자가 마을에 취재를 왔다. 마을 어르신은 바닥에 구멍이 퐁퐁 뚫려있어 퐁퐁다리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경상도 억양을 잘 못 알아 들은 기자가 돌아가 뿅뿅다리라고 기사를 냈고, 그 뒤로 이 다리의 이름은 뿅뿅다리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기자의 실수는 영광스러운 실수가 된 격이다. 아름다운 마을의 다리 이름을 지어낸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퐁퐁다리보다는 뿅뿅다리가 더 재미있긴 하다.

새로운 담장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여전히 운치있는 회룡포마을
 새로운 담장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여전히 운치있는 회룡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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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서니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굴길이 눈에 들어온다. 봄이 되면 화사해질 꽃길이 상상되어 흐뭇해진다. 회룡포마을은 경주 김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20여명의 주민이 모여살고 있으며, 우리나라 농촌이 그렇듯 5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낮은 담장 너머로 그들의 삶의 자취를 찾을 수 있어 운치를 더한다.

또한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준서와 은서의 어린 시절을 촬영했던 마을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준서와 은서가 자전거를 타며 놀았던 도로가 남아있다.

지금 회룡포 마을은 새단장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새로 쌓은 돌담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흙이 묻고 손때가 타면 훨씬 더 아름다운 마을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다만, 너무 큰 욕심으로 우리 농촌의 고즈넉함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사진찍는 것을 발견하고는 포즈를 잡아주시는 어르신
 사진찍는 것을 발견하고는 포즈를 잡아주시는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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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돌던 중 유쾌한 아저씨를 만났다. 일하는 농부의 모습을 찍고 싶었는지 한참을 밭두렁에서 쪼그려 앉아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는 일행에게 말을 걸어오는 아저씨. 사진 많이 찍었느냐고 묻더니 아니라는 말에 포즈를 잡고 한참을 멈춰 서 계신다. 시골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담는 걸 꺼려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호의를 베푸시니 사진쟁이들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덩달아 나도 한 컷 담아본다. 지역의 인심이 그 지역의 이미지를 만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분들이 있는 지역이라면 꼭 다시 한 번 찾고 싶어 지니까 말이다.

회룡포 마을, 공사가 끝난 후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마을에서의 민박도, 백사장에서의 야영도 좋을 것 같다. 마을을 나오는 길, 제1뿅뿅다리의 구멍은 앞서 보았던 제2뿅뿅다리보다 더 뿅뿅스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



태그:#경북, #예천, #여행, #회룡포, #뿅뿅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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