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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가운데 연기 기둥이 치솟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도 큰 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 화재현장 마을 한가운데 연기 기둥이 치솟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도 큰 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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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텃밭에 작은 비닐하우스가 몽땅 타버렸습니다. 뒤쪽으로 산더미 같이 쌓인 마른 짚이 있습니다.
▲ 불탄 비닐하우스 집 앞 텃밭에 작은 비닐하우스가 몽땅 타버렸습니다. 뒤쪽으로 산더미 같이 쌓인 마른 짚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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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면을 쓴 소방대원이 소방호로 화재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 화재진압 방독면을 쓴 소방대원이 소방호로 화재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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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후 6시, 하루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따뜻한 밥과 개구쟁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사무실을 빠져나와 큰길에 접어들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수 소라면 대포 마을 쪽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연기가 기둥을 세우고 하늘을 향하는 게 보통 불이 아닙니다. 핸들을 돌려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매캐한 냄새와 동네를 가득 채운 연기로 현장으로의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급히 달려온 소방차가 좁은 농로에 줄지어 서 있었고, 소방대원들은 쉴 새 없이 소방호수로 물을 뿌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화재와 달리 유독 연기가 많이 납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산더미처럼 쌓인 짚단에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멀리서 본 하얀 연기 기둥은 마른 짚단 때문이었습니다. 연기가 바람 따라 이곳저곳을 몰려다니는데 한 번씩 들이 마시면 호흡이 곤란할 정도입니다. 재까지 날려 순식간에 얼굴이 엉망이 됩니다. 구경하는 사람들 얼굴도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입니다. 참다못해 멀찌감치 도망가는 사람도 보입니다.

눈은 맵고 연기 때문에 사방은 보이질 않는데, 불 끄는 소방대원들은 그나마 방독면을 착용해서 다행입니다. 그들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연기 속을 쉼 없이 오갑니다.

바짝 마른 짚단에 붙은 불은 쉬 잡히질 않고

매캐한 연기 속에서 화재진압 중입니다.
▲ 연기 속으로 매캐한 연기 속에서 화재진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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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마을길로 진입 못한 소방차에서 소방호스를 연결했습니다.
▲ 소방호스 좁은 마을길로 진입 못한 소방차에서 소방호스를 연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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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잦아들었으나 짚단에 붙은 불은 쉬 잡히질 않습니다. 잠깐 동안의 휴식입니다.
▲ 휴식 바람이 잦아들었으나 짚단에 붙은 불은 쉬 잡히질 않습니다. 잠깐 동안의 휴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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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마른 짚단에 붙은 불은,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힘을 얻어 쉬 잡히질 않습니다. 누군가 굴착기로 짚단을 뒤 엎어야 한다며 달려갑니다. 그사이 소방호수는 연신 물을 뿜습니다.

마침 현장을 기록하고 있는 소방관이 있어 화재원인을 물었습니다. 불은 텃밭에 있는 작은 비닐하우스 안에 있던 짚 자르는 기계에서 발생해, 시골집과 텃밭 사이에 쌓아 둔 짚단으로 옮겨 붙었다고 합니다. 다친 이는 없는지 물었더니 집 주인아저씨가 가벼운 화상을 입은 정도랍니다. 소방관은 "정확한 원인은 더 조사해 봐야 안다"며 말을 끊고 현장조사가 바쁜 듯 잰 걸음을 놓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또 한 차례 바람이 붑니다. 꺼진 듯했던 불길이 다시 일어납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짚단에 불이 붙은지라 연기와 화기가 웬만해선 잡히질 않습니다. 그렇게 짚단에 붙은 불을 끄고 있는데 누군가 내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소 타죽는다. 빨리 소 끌어내!"

소리치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그곳엔 어미 소 두 마리와 송아지 한 마리가 있습니다. 소방대원이 소를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가려는데 도리어 경계하며 접근을 막습니다. 또, 뜨거운 불길과 연기가 코앞인데도 두 녀석은 날뛰지도 않고 어린 새끼를 자신들 뒷전으로 밀어 놓고 보호합니다. 사람 접근을 막을 뿐 아니라 사나운 불길과 연기도 새끼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둘러쌉니다.

큰 불 앞에 새끼만 신경쓰는 고집불통 어미 소

처음 화재가 발생한 짚 자르는 기계입니다.
▲ 화재원인 처음 화재가 발생한 짚 자르는 기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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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소들과 송아지가 아슬아슬합니다. 한번씩 바람 방향이 바뀌면 호흡이 곤란합니다. 불길이 소들에게 가지 않도록 연신 물을 뿌립니다.
▲ 위험 어미소들과 송아지가 아슬아슬합니다. 한번씩 바람 방향이 바뀌면 호흡이 곤란합니다. 불길이 소들에게 가지 않도록 연신 물을 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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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다리 사이로 두려운 듯 불길을 바라봅니다.
▲ 두려움 어미 다리 사이로 두려운 듯 불길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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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불길 앞에 놓았습니다.
▲ 보호 송아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불길 앞에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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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이 다급한 마음에 나무에 묶인 줄을 풀려하지만 연신 접근을 못하도록 신호를 보냅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큰 불 앞에 당황하기 마련인데 그 어미 소들은 코앞까지 불길이 번져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한 번씩 바람이 불어오면 흰 연기 덩어리가 사정없이 몰려와 숨쉬기도 힘든데 말입니다. 오로지 관심은 온통 어린 새끼에게 있습니다. 이리저리 돌아가며 새끼를 보호합니다.

결국, 소방대원은 소를 끌어내지 못하고 불길이 더 이상 소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소방호스로 연신 물을 뿌립니다.

가끔 언론에서 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의 품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아이'를 볼 때 모성의 지극함을 느낍니다. 그런 사연을 들을 때마다 경황 중에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존경스러웠는데 오늘 그 현장을 봅니다. 그 모습이 또 다른 감동입니다.

두어 시간의 사투 끝에 큰 불길은 잡히고 소방대원들도 한숨을 돌립니다. 그러나 흰 연기는 끊임없이 나오고 검은 재는 온몸을 감쌉니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뒤늦게 주인 할머니가 나타났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우는데 현장의 처참함과 더불어 통곡 소리가 더 크게 울립니다. 그나마 키우던 소가 무사해서 다행이라 여깁니다.

불길처럼 닥쳐오는 시련, 가족이 있어 고맙다

그렇게 퇴근길에 접한 화재현장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현관문을 여는데 평소 퇴근시간 보다 늦은데다 매캐한 연기를 달고 온 저를 아내가 타박합니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아내와 아이들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여러 어려움을 만납니다. 어떤 시련은 뜨거운 불길처럼 닥쳐옵니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 견뎌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불길 속에서 생명을 내놓고 어린 소를 빙 둘러싼 어미 소의 모정은 저에게 가족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언제나 조심해야할 일이 불입니다. "물난리 나면 건질 것 있어도 불난리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는 늙은 노모의 말이 생각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복지방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포마을, #화재,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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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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