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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인영 최고위원과 김영춘 최고위원이 귓속말을 하고 있다.
2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인영 최고위원과 김영춘 최고위원이 귓속말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선비' 이인영이 뿔났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더니, 이제야 그 속뜻을 알겠다며 무릎을 쳤다.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팽팽한 정치게임, 도무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얼굴을 붉혔다. 더 이상 '반칙'을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도 높였다. 그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4·27 재보선 야권연대 정치협상이 디테일에서 꼬이고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29일 경남 김해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시민단체가 그토록 주장했던 '국민참여경선 50%, 여론조사 50%'의 후보단일화 방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유시민 대표가 이제야 시민중재안의 종결자가 되는구나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새로운 조건이 나왔고, 민주당은 또 발끈했다. 받니 못 받니 실랑이는 30일 저녁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며 협상은 난항 중이다.

유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아주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협상을 진행 중"이라면서 협상타결 임박을 예고했다. 다만, 민주당이 주장하는 국민참여경선이 구체적이지 않고 불법적인 요인이 없는 건지 확실하지 않지만, 이 방식이 아니면 민주당이 안 하겠다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한번 해보자고 수용한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이어 그는 "우리가 이기기 위해 야권연대를 하는 건데 이렇게 전력을 소모하고 모든 역량을 쥐어짜서 끝까지 밀어붙이는 식의 경선을 할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며 "손 대표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고, 이것은 야권의 맏형인 민주당의 도량 문제"라고 비판했다.

거대 정당과 소수 정당의 프레임

30일에도 유 대표는 MBN의 뉴스M에 출연해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김해을 후보단일화 문제에 대해 정치적 결단을 해달라"며 "민주당은 100% 확실히 이기는 경선만 하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제1야당이 도량 없이 대결정치로 가려고 하면 손 대표가 어렵게 내린 결단도 빛이 바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경선방식(현장투표)을 그대로 쓸 경우에는 경선 실제 비용이 3억 원이 넘게 든다"며 "이것은 국회의원 선거비용(본선거비용)보다 더 많아서 우리 같이 작은 정당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유 대표는 "야권이 후보단일화를 하는 것은 시민들의 뜻에 부합하는 후보를 내서 승리하자는 건데 이렇게 모든 자금력과 조직력을 총동원하는 식의 어마어마한 경선을 굳이 해야 할까에 대해 충심으로 말씀드리고 있는데 참 어렵다"며 "당세가 약한 우리 당은 몹시도 부담스럽고 불리한 경선규칙이지만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로 해보려고 하니까 세부사항에 대해서 상식에 부합하게 해주시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그는 연거푸 이틀째 '제1야당의 도량'을 언급하며 소수정당의 어려움과 '맏형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거대 정당 대 소수 정당의 프레임을 짜고 약체 정당임을 내세우는 전략이다. 다른 면으로 보자면 어떻게든 이번 재보선에서 국회의석 1석을 차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경이 표출된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상황을 접한 국민들이 언뜻 보기엔 유 대표의 읍소가 설득력 있어 보인다. 돈과 조직이 많고 큰 민주당이 새로 시작하는 국민참여당의 앞날을 위해 양보 좀 하지 왜 그래? 생각할 수 있다. 민주당이 너무 야박한 것 아닌가 볼멘소리도 터져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 한 동네에 살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절대 안 받아들이려는 동생의 요구를 계속 받아주기만 해야 하는 것이냐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이인영 "설계변경 자주 하면 사고 위험성이 커진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30일 아침 경남 김해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민참여당을 정조준했다. 이 최고위원은 "예선에서 시간을 끌어 후보가 되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본선에서 확실히 승리하는 대승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며 "불리한 룰을 유리한 룰로 만들려는 심정은 이해하나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최고위원은 "협상이 교착되는 건 디테일에서 새로운 조건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라며 "공사 진행 중 설계변경을 자주 하다보면 비용도 증대하지만 사고 위험성도 높아진다"고 비유했다.

국민참여당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시민단체가 제안한 시민중재안을 '원안의 정신'에 따라 충실하게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통합의 정신은 노무현 정신"이며 "곽진업 민주당 후보가 민주진영 전체의 대표후보가 돼야 하고 4·27 재보선에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팽팽하게 맞서는 그 디테일이란 것은 도대체 뭘까.

이미 알려진 대로 4·27 김해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야권후보단일화 방법으로,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 100%' 국민참여당은 '여론조사 100%'를 주장했다. 시민단체는 양당의 입장을 절충해 '국민참여경선 50% 여론조사 50%'를 중재안으로 냈다. 민주당은 '조건 없이 받겠다'고 했지만, 국민참여당은 '조직동원'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반대했다.

이 같은 입장이 전달되면서 국민참여당이 국민참여경선에 반대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큰 틀에서 이는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 현장투표는 안 된다고 조건을 걸었다. 시민단체는 '큰 틀에서 수용한다'는 입장에 '크게 환영한다'고 했지만, 뒤늦게 '현장투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접하고 공문을 보내 확인 작업에 나섰다. 국민참여당은 공식 답변이 없었고, 그 사이 3월 넷째 주 주말이 흘러갔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간 신경전으로 야권연대 정치협상에 진전이 없으니 이번엔 민주노동당이 나섰다. 민주노동당은 현장투표에 참여할 선거인단 모집에 야4당이 모두 함께 하자면서 이른바 '민노당 중재안'을 냈다.

조직적으로 민주당 당원들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모두 함께 선거인단을 모집하면 될 게 아니냐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3(민노·진보·참여) : 1(민주)'의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꺼렸지만 애당초 '조건 없이 수용한다'는 원칙에 따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국민참여당도 더는 빼기 어려웠다. 민주노동당의 제안대로 야4당이 함께 선거인단을 꾸리는 것에 합의했다.

여기서 협상이 끝나고 종지부를 찍는가 싶었으나, 새로운 조건이 또 나왔다. 선거인단 모집방법이다. 민주당은 애당초 시민단체의 안대로 무작위 추출에 의한 선거인단 구성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의 생각은 또 달랐다.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할 시민들의 참가신청은 무제한으로 받되 성별, 연령별, 거주지별 인구비례에 따라 모집단을 구성해 현장투표를 실시하자는 것.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22일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을 찾아 손학규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22일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을 찾아 손학규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국민참여경선, 2002년 모델이냐 2007년 모델이냐

민주당은 발끈했다. 여론조사 50%에 현장투표를 포함한 국민참여경선 50%가 아니라 '여론조사 50%+현장여론조사 50%'를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분개했다. 무작위 추출이어야 현장투표의 의미가 사는 것이지, 이를 성별 연령별 거주지별로 나눈다면 여론조사를 또 하는 것이나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이건 수용불가 안이라고 비토했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국민참여당은 현재 회의투쟁을 벌이고 있다"며 "시간을 끌면서 실제 현장투표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거나 아니면 확실히 자당이 이길 수 있는 룰이라야 수용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조금의 불확실성도 인정 못하겠다는 태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백만 국민참여당 대변인은 "조사방법론의 기본이 있지 않느냐"며 "연령별, 성별, 거주지별 인구비례로 조사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여론조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국민참여경선은 주민등록증까지 제출한 상태에서 벌이는 작업이기 때문에 반드시 연령별, 성별, 거주지별 인구비례로 모집단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공정성이 있는 국민참여경선이 열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02년 대선 민주당 국민참여경선 때도 성별·연령별·거주지별 인구비례로 모집단을 모았다"며 "민주당이 지금 주장하는 무작위 추출방법은 2007년 박스떼기로 얼룩졌던 경선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호남 표몰이' 방식으로 얼룩졌던 2007년 대선 민주당 참여경선을 다시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다.

그렇다면 2002년 대선 민주당 국민참여경선 때는 어떻게 했을까. 당시 국민참여경선 방법을 짰던 정창교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는 간명하게 설명했다. 총 200만 명이 참여신청을 했던 2002년 대선 민주당 국민참여경선 당시 성별·연령별·거주지별 인구비례로 모집단을 구성했던 것은 맞다고 확인해줬다. 다만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것은 참여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정창교 이사는 "국민참여경선도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당시 민주당은 지역별로는 호남편중, 성별로는 남성편중, 연령별로는 고령층이었기 때문에 이걸로는 제대로 된 여론을 알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성별·연령별·지역별 구분을 두고 참여경선을 벌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이사는 "국민참여경선의 핵심은 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은 각각 룰을 정하는데 몰두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탄생했던 미국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인구는 모두 4500만 명이고, 본선에서 오바마가 얻은 표는 6500만 표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게다.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2000만 표, 버락 오바마가 2500만 표를 얻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주력할 것은 투표소를 많이 설치하거나 모바일 투표를 가능하게 해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것"이라며 "자꾸 정치권에서 룰과 관련된 첨예한 입장만 강조하면 국민들에게 감동이 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최종 야권연대 판이 깨질 것을 우려한 시민단체들은 30일 오후 기자회견에 열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31일 오전 11시까지 '시민단체의 중재안' 수용여부를 밝혀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자당의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계속 바꾸는 상황에 국민들은 지쳐 있는 것 같다. 4·27 재보선 야권연대로 한나라당과 야권이 1 대 1 구도를 만들라는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MB정권에 경고를 보내고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 달라는 국민적 요구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현재 모습을 계속 쫓고 쫓기는 만화영화 <톰과 제리>에 비유하면 억측일까.


#톰과 제리#국민참여당#민주당 #4.27 재보선#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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