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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신관 입구에 걸린 구본창전 포스터
 국제갤러리 신관 입구에 걸린 구본창전 포스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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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대표 이현숙)에서 2006년에 이어 구본창(具本昌 1953~) 사진작업 30년을 회고하는 사진전이 지난 24일부터 4월 30일까지 열린다.

구본창, 그를 보는 순간 이렇게 지적이면서도 눈빛이 해맑은 작가가 있나 싶다. 구본창이라는 이름은 알지만 그가 누구인지 잘 몰랐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면모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전에서는 그가 오래 수집한 만물상과 '한국 탈', '백자', '곱돌' 시리즈 등 48점을 만날 수 있다. 1980년대 독일 유학시절과 귀국 직후 찍은 미공개 사진과 88올림픽 전후 어색할 정도로 급변한 당시 한국사회의 도시표정을 담은 컬러사진도 선보인다.

6살부터 준비된 탁월한 시각예술가

구본창의 개인컬렉션 액자, 상자, 본(本) 등등. 오랫동안 모아온 컬렉션은 구본창의 시간의 저장고로 영감의 원천이다
 구본창의 개인컬렉션 액자, 상자, 본(本) 등등. 오랫동안 모아온 컬렉션은 구본창의 시간의 저장고로 영감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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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린시절 섬유업을 하는 아버지와 일본(적산)가옥에서 유복하게 살았고 3남 3녀 중 차남이었다. 6살 때부터 하찮은 사물에도 호기심이 컸으며 물건모으기를 좋아했다. 그는 집 정원에서 비온 후 흠뻑 젖은 돌과 대화를 시도하며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타고난 예술가였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왕따를 당하거나 이상한 아이로 오인받게 하기도 했다.

그는 전시회에 지금까지 모아온, 다 버려도 될 것 같아 보이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텅 빈 상자, 작은 의자, 프레밍, 본(本), 서랍, 목공예 등 100여 점의 오브제를 들고 나왔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수집한 컬렉션의 일부로 그의 작업과정과 작가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오브제를 어떻게 예술로 바꿔나가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의 기획자인 김성원씨는 이런 물건들이 르네상스 시기의 '호기심의 방(cabinet de curiosité)'을 연상케 한다며 구본창은 사소한 삶에서 귀중한 가치를 발견하는 작가로 그의 작업에서 일관된 맥락과 관점을 추적하고 30년간 작업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덧붙였다.

독일 유학하며 재발견한 '한국미의 매력'
 
'MGM 07'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프린트(Archival Pigment Print) 80×62cm 2009. 프랑스 기메박물관의 '한국의 탈' 컬렉션사진
 'MGM 07' 아카이브용 피그먼트 프린트(Archival Pigment Print) 80×62cm 2009. 프랑스 기메박물관의 '한국의 탈' 컬렉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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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인기학과였던 연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미대를 다니려 했다. 하지만 집에서 찬성할 리가 없었다. 1975년 졸업한 후 '대우실업'에 취직해 다니다 6개월도 못 가 그만뒀다. 당시는 해외에 나가기고 힘든 때라 유럽근무를 할 수 있다는 회사로 옮겨 독일에 갔지만 이도 포기하고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 입학한다.

섬유업을 한 아버지 때문인지 실과 섬유를 좋아해 한국에선 핀잔을 받던 그가 독일교수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자 자신감을 얻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곳 아시아 박물관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리문화재가 턱없이 초라해 보여 안타까웠으나 그는 거기서 드러나지 않는 여백의 미를 재발견하고 그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다.

하찮고 대수롭지 않는 것에서 아름다움 발굴

'OSK 17-30-31 BW' Archival Pigment Print 63×50cm 2005-2007 오사카박물관의 '백자' 컬렉션사진
 'OSK 17-30-31 BW' Archival Pigment Print 63×50cm 2005-2007 오사카박물관의 '백자' 컬렉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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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위에서 보듯 아주 흔한 것들이다. 그는 고아처럼 버려진 하찮고 평범하고 무생물인 대상에 말을 걸며 거기서 혼과 숨결을 집어넣은 후 그걸 앵글에 담는다. 그러기에 그가 생각하는 부자는 심미안을 가지고 대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개념은 세계적 작가인 김수자의 '보따리' 작업이나 존재감이 없는 것에 오감오색을 불어넣는 것으로 유명해진 설치미술가 양혜규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이런 점에 대해 물어보니 그 자신도 이에 공감한단다. 그러고 보면 그는 남성작가이나 시대정신에 어울리게 여성적 감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실로 꿰매는 사진으로 유명한 구본창은 어찌 보면 사진의 이단아 같기도 하고 아웃사이더 같기도 하고 광인 같기도 하고 구도자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드러나지 않는 것에 스며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기에 그의 관점이 빛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미지가 배고팠던 세대의 노스탤지어

청소년시절 수집한 사물(Objects from artist's teenage years) 김찬삼의 '세계일주무전여행기' 책표지(오른쪽)
 청소년시절 수집한 사물(Objects from artist's teenage years) 김찬삼의 '세계일주무전여행기' 책표지(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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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초에 태어난 구본창, 그의 세대는 너무 볼거리가 없었고 이미지에 굶주렸다. 그가 유년기에 본 시어스(Sears) 카탈로그나 청소년기에 형이 봤던 뉴스위크, 타임, 라이프잡지를 아직도 버리지 않고 모아둔 이유다. 또한 해외에 나갈 수 없던 시대에 전 세계를 누볐던 '김찬삼'은 그의 영웅이었고 그의 책 <세계일주무전여행기>는 그의 이상향이었다.

게다가 그는 1960년대 반공교육의 세례를 엄청 받는 세대로 고등학교 때는 교련검열까지 받았다. 그래서 그가 1985년 독일에서 귀국해 찍은 사진 중에는 청소년기의 트라우마와 1980년대 독재정치의 그림자가 중첩되면서 집단주의를 암묵적으로 풍자하는 사진이 많다.

잘못하면 청소년기 그의 예민한 감수성이 손상을 입을 수도 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그런 면 때문에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그런 와중에서도 자신만의 관점을 지켰기에 이제 와 사진 분야에 보물과 같은 문화브랜드가 되었다.

한국적인 것이 뭔지를 생각케 하는 작가

'OSK 15 BW' Archival Pigment Print 106×85cm 2005.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의 '한국백자' 컬렉션사진
 'OSK 15 BW' Archival Pigment Print 106×85cm 2005.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의 '한국백자' 컬렉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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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한국적인 것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나 또 그만큼 한국적이라는 것이 왜곡되거나 굴절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사진을 통해 정말 한국적인 것이 뭔지를 생각하게 한다.

기자와의 간담회에서 빛의 예술인 사진을 하지만 작품에 그림자가 없고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많이 놀랐다. 그림자 없는 빛의 예술 이건 역설인데 그는 이를 해냈다. 특히 조선백자를 찍을 때는 그 배경으로 한지를 사용한단다.

구본창은 그런 기질 때문인지 '다이내믹 코리아'를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예술이 스포츠나 관광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의 작품이 주는 분위기는 폭풍우나 해일이 일어난다기 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고요한 바람에도 출렁이는 잔잔한 물결 같다.

"동시대 구본창 같은 작가와 함께 살고 있어 행복하다"

'MGM 01-02-04-05-07-08' Archival Pigment Print 80×62cm(each) 2009. 프랑스 기메 박물관의 '한국의 탈' 컬렉션사진
 'MGM 01-02-04-05-07-08' Archival Pigment Print 80×62cm(each) 2009. 프랑스 기메 박물관의 '한국의 탈' 컬렉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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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드러운 미소처럼 전시장은 화기애애하다. 작가의 행복과 관객의 만족스러움이 만나 전시장주변을 맴돈다. 1960년대 반도호텔에 처음 갤러리가 생겼을 때부터 그림을 봐온 미술애호가 강인구(66)씨는 그의 작품을 보자마자 "동시대에 구본창 같은 작가와 함께 살고 있어 행복하다"고 탄성을 터뜨린다.

아직도 4대 강국에 치여 분단국으로 살아가는 한반도에서 1980년대, 미술도 아니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사진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진가가 된다는 것은 형극의 길이나 그는 그 고비를 잘 넘겨 한국사진의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위 한국의 탈에서 느껴지는 미소는 하회탈과 분위기가 좀 다르다. 형언할 수 없이 신기(神氣)가 넘친다. 한국인이 연출할 수 있는 가장 자애로운 미소라고 할까. 표정은 은은하고 잔잔하나 그 내면에 많은 사연을 머금은 얼굴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장교가 이걸 가져간 것을 보면 이 신령한 가면에 반한 것이 틀림없다. 

남이 버리는 걸 내가 취하는 독특한 관점

'JM-GD 34' Archival Pigment Print 97×76cm 2007. 일본 도쿄민예관이 소장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곱돌' 컬렉션사진
 'JM-GD 34' Archival Pigment Print 97×76cm 2007. 일본 도쿄민예관이 소장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곱돌' 컬렉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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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백자와 대조를 이루는 곱돌로 심연이 깊은 검은색이 이를 데 없이 듬직하면서 안정감을 보인다. 수천 년 지각변동 속에서 견디어 낸 부드러운 흙으로 만든 이런 조형미는 질리지 않고 융숭하고 그 품이 넉넉하다. 동양미의 극치인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맛 즉 '졸(拙)의 미'를 생각나게 한다.

예술이란 창조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미를 발굴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이 버리는 걸 내가 줍는 빼어난 미감이다. 달빛아래 몽유병자처럼 이 세상의 갖가지 오브제에 숨겨진 미를 찾아 헤매는 구본창이 이런 오브제를 놓칠 리 없다. 이 '한국곱돌'은 일본 도쿄민예관이 소장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컬렉션이다.

구본창은 백자도 그렇지만 위에서 보는 곱돌의 처연한 검정을 보면서 그 옛날 장인들의 미적 수준이 얼마나 높고 깊었는가를 헤아렸다. 구본창은 그들의 순절한 심경 속으로 들어가 첨단문명의 이기인 카메라의 눈을 통해 우리가 내다버린 미의식을 되찾아왔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15년 걸리는 느림의 미학

국제갤러리 2층 전시장. 구본창작품을 감상하는 프랑스관객들
 국제갤러리 2층 전시장. 구본창작품을 감상하는 프랑스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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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주변에 문화재 아닌 것이 없고 아름답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다만 그와 우리의 차이는 같은 시간대를 살아도 그는 우리보다 수백, 수천 배 이미지를 축적하고 있다는 것. 사물을 볼 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작품이 결코 우연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업태도를 보면 그는 오랜 시간 뜸 들이고 정성을 다하는 대기만성 형이다. 1989년대 백자를 보고 첫 감흥을 일으킨 후 이를 작품화하여 세상에 내놓은 것이 2004년이니 무려 15년이 걸린 셈이다. '곱돌 시리즈'도 그렇게 나왔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이라 외국인에게도 한국미가 잘 전해지는지 오프닝행사에 외국인 관객도 꽤 많았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전쟁 중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주제로 작품을 하겠단다. 정말 이제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휴머니스트 사진작가가 나올 기세다.

구본창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곳
[구본창(Koo Bohnchang 1953~) 작품 소장처]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박물관, 휴스턴 파인아트미술관, 뉴욕 헨리 불(Henry Buhl) 컬렉션,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박물관. 함부르크 예술공예박물관, 호주 브리스 베인 퀸즈랜드아트갤러리, 호주 시애틀 아시아미술박물관, 아이슬란드 레이캬빅사진박물관, 도쿄 샤데이갤러리. 교토 카히츠칸미술관, 스위스 바젤헤르초크 재단,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삼성리움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선재미술관(경주), 시립(서울, 부산, 대전)미술관, 정보가 너무 많아 나머지는 홈페이지 참고 http://www.bckoo.com  혹은 국제갤러리 www.kukjegallery.com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신관 종로구 소격동 59-1번지 02)735-8449, 733-8449 www.kukjegallery.com
전시기획:김성원(서울시립대교수) 개관시간 월요일-토요일: 10am-6pm 일요일: 10am-5pm



태그:#구본창, #한국백자, #한국의 탈, #한국 곱돌,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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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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