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얼마나 추웠는지,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근처의 밭에 심어놓은 마늘이 다 얼어죽었다는 기별이 작은 누님에게로부터 왔다. 그 자리에 토란이라도 심자고 하시는 어머니는 오랜만에 쉬는 아들의 눈치를 보신다. 말만 던져 놓으시고, 아들의 대답을 기다리시는 어머니를 보니 자식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유류비가 올라 원주에 갔다오려면 최소한 5만 원, 이것저것 하면 돈 10만원 깨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냥, 추석 때 토란 10만 원어치 사먹으면 편할 것 같다. 그래도, 그게 아니지. 작은 누님과 매형도 뵐겸 서울에서 원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토란을 심을 밭을 정리하기 전 봄나물이라도 할까 산책을 나섰다가 나목사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새집은 아니다. 그렇다고 낮은 야산인데, 겨우살이도 아닐 터인데 하며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겨우살이가 맞다. 겨우살이의 열매를 먹은 새가 저 나뭇가지에 앉아 일을 보았을 것이다. 끈적끈적한 겨우살이 씨앗은 저 나뭇가지에 붙어 뿌리를 내렸을 터이고, 이제 제 몸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자랐을 터이다.
겨우살이의 효능에 대해서는 항암작용도 있다하고 좋은 약재라고 하지만, 어떤 나무에서 자란 것인지도 중요하고, 약재를 달이는 방법 등도 단순히 인터넷에서 얻은 지식에 근거하여 복용하기에는 조금 버겁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전문가들의 손길과 조언에 따라서 약재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동안 내가 만났던 겨우살이 중에서는 가장 만만한 높이에 있는 것이다. 그동안 몇 번을 만났지만, 차마 나무에 오를 엄두가 나질 않았고, 가지 몇 개라도 얻어보려고 돌팔매질도 하고, 나뭇가지도 던져보았지만 허탕이었다.
늘 망원렌즈가 절실하던 순간뿐이었다. 그래서 겨우살이의 예쁜 열매를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냥 소망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날 행운처럼 그런 날이 오길 고대하면서.
나뭇가지를 살펴보고, 올라갈 만한 높이인가 조심스럽게 타진해 보았다. 마이크로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둘러매고 여분으로 초접사 마이크로렌즈를 파카호주머니에 집어놓고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어릴 적 나무타던 솜씨가 녹슬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겁났다. 혹시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다치는 것은 둘째치고 카메라도 성하지 않을 터이다.
드디어 사진을 담을 만한 위치에 안착을 했다. 모자가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져버려서 따가운 봄햇살에 얼굴이 후끈거린다. 지난 겨우내 얼굴을 조금이라도 희게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도 기왕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왔는데 그냥 내려갈 수가 없다. 땀은 삐질삐질,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다. 니뭇가지라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으니 사진 한 장 담는 것이 고역이다. 잘못하다가 카메라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성할리가 으니 이를 악물고 참는다.
순간, 나이 오십에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땀을 삘삘 흘리면서 30분간 나뭇가지에서 원숭이처럼 매달려서 사진을 담았다. 웃도리가 다 젖어 척척하다. 찜질방에서도 이만큼 땀을 흘려보진 않은 것 같다.
촬영보조라도 있었으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좋을 걸, 친구라도 같이 왔으면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사진을 담는 것도 한 장 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난생 처음 보고 담은 겨우살이 꽃에 만족하며 나무에서 내려왔다.
누님 집에 돌아오니 토란심을 밭을 트랙터로 갈아놓은 조카가 어디 갔다왔냐고 한다. 장황하게 설명을 하며 "아따, 겨우살이 찍다가 죽는 줄 알았어" 하니 기가 막히다는 듯 한 마디 한다.
"삼촌, 또 올라가시면 제가 삼촌 사진찍는 거 찍어드릴게요."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자 또 한 마디가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에이, 얘기하지 그랬어요. 대나무에 톱 달아서 따면 땅에서 쉽게 찍을 수 있는데….""아니다. 내가 겨울에 와서 열매 열린 거 찍어야지. 그때나 도와주라. 너, 그거 몸에 좋다고 따먹지 마라. 없어지면 니가 따먹은 줄 알거야. 잘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