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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27 재보선에서 전현직 여야 대표가 맞붙는 분당을은 전체 선거의 승패를 가늠하는 최대 승부처다. 야권의 대선주자가 출사표를 던진 터라 정권심판론을 기반으로 한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는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선거전 초반 분위기는 혼전이다. 강 후보와 손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의 박빙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

 

상대를 '철새'로 규정하면서 지역일꾼론을 들고 나온 강재섭 후보의 '조직력',  중산층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으로 연결하겠다는 손 대표의 '바람'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될 선거전 현장을 5일 동행 취재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 조용한 선거운동, '이재오 장관' 닮았네

 

"15년 분당 사람 강재섭입니다."

 

한나라당의 후보로 확정된 바로 다음날인 5일, 강재섭 후보는 골목 곳곳을 누비며 만나는 지역 주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멘 어깨띠에는 한나라당 로고보다 "15년 분당 사람"이라는 문구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강 후보는 분당 정자동 백현로 일대 식당과 카센터 등 상가 한곳 한곳을 일일이 방문해 "기호 1번 강재섭", "분당 사람 강재섭"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강 후보는 동행하는 취재진들에게 "카메라가 따라다니면 주민들이 악수를 안하려고 한다"며 "취재진 때문에 선거운동에 지장이 많다"고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강 후보 일행의 규모도 작았다. 길거리를 누비는 그의 곁에 수행원이라고는 명함을 들고 뒤를 따르는 2명이 전부였다.

 

강 후보는 "세를 과시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다니면 역효과만 난다"며 "명함도 내가 직접 줘야 대화가 되고 덕담도 듣는다"고 말했다. 

 

강재섭의 조용한 선거전... "나는 토박이, 손학규는 철새"

 

이런 강 후보의 '나홀로 선거운동'은 지난 해 7·28 재보선에서 은평을에 출마했던 이재오 특임장관의 선거운동 방식과 닮았다. 이 장관은 혼자서 은평을 지역 곳곳을 걸어다니며 주민들을 직접 만나 '90도 인사'를 하는 '조용한 선거' 전략을 구사해 '정권 실세' 심판론을 넘었다.

 

 

강 후보를 공천하기보다 정운찬 전 총리를 영입하려 했던 이 장관과는 공천 갈등을 겪으면서 관계가 껄끄러워졌지만 선거 운동 방식만큼은 의견 일치를 본 셈이다. 하지만 5선의 강 후보는 "나는 원래 항상 이렇게 선거 운동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강 후보가 이 장관과 같은 선거운동 방식을 택한 것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맞상대가 되면서 선거가 '정권 심판'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는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할 만큼 분당은 전통적인 텃밭이지만 부동산 침체와 전셋값 등 물가 인상 등으로 바닥 민심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당의 판단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강 후보는 손 대표와 엎치락뒤치락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강 후보가 민주당의 정권심판론에 맞서 '분당 토박이'와 '지역일꾼론'을 앞세우는 것은 이런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선거운동의 기본 원칙도 '겸손하고 낮은 자세'다. 그는 이날 동행중이던 기자와 만나 "분당을 주민들은 이 지역과 인연이 있고 연고가 있는 후보,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살릴 수 있는 후보를 원하고 있다"며 "(주민들은) 아무런 연고도 없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날아온 후보를 응징해야겠다고 벼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당 지원 거부한 강재섭 "인기 없는 사람들 와봐야..."

 

강 후보는 중앙당 차원의 지원도 거부했다. 그는 "인기 없는 사람들 와봐야 도움도 안된다, 중앙당에도 여기 오지 말라고 했다"며 "돕고 싶으면 개별적으로 조용히 와서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강 후보는 이날 확고한 지지층인 60대 이상 노년층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분당노인종합복지관과 아파트 경로당을 방문해 노년층의 손을 잡았다. 노년 지지층이 두꺼운 만큼 복지관과 이들 경로당은 강 대표에 홈그라운드와 다름 없었다. 상당수 노인들은 강 대표와 악수를 나누면서 "꼭 될 거다", "무조건 강재섭이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분당노인종합복지관 식당 앞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여기는 안 와도 다들 찍어줄 거다, 소형 평수(사는 사람들)를 공략해야 이긴다"며 "젊은 사람들에게 집중하라"는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강 후보에게도 손학규 대표에 비해 열세를 보이고 있는 30~40대 지지율이 고민거리다. 투표 당일인 오는 27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 연령대 직장인들이 서울-분당간 고속도로 교통체증을 피해 투표장에 올 수 있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강 후보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젊은층 지지율이 낮은 것에 대해 "손 대표는 현직 대표라 인지도가 높지만 나는 3년간 정치권을 떠나있어 인지도가 낮아 생기는 일시적 현상"이라며 "내가 나이도 (손 대표보다) 더 젊고 정치도 개혁적으로 해 왔다, 곧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민주당 후보] '종횡무진' 선거운동에 젊은층 관심

 

'종횡무진'

 

분당을에 출사표를 던진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선거유세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렇다.

 

5일 오후 분당 서현역 앞에서 길거리 유세를 펼친 손 대표는 갈지자로 걸음을 옮기며 눈에 띄는 시민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나눴다. 길거리 오른편에 있는 분식집에 갔다가 어느새 맞은 편 카페로 들어가 인사를 하는 통에 따라다니는 취재진과 보좌진들의 걸음도 덩달아 바삐 움직였다. 저 멀리 돌아가는 시민의 뒤를 꼭 쫓아가 악수 한 번을 나누고서야 돌아서는 그의 '집념'에 시민들은 멋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앉아있는 시민 곁에서는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서 말을 나눴다. '오메가 3' 약통을 옆에 둔 할머니 옆에서는 "어디가 안 좋으시냐, 손에 굳은 살이 가득하다"며 두 손을 맞잡았다. 할머니는 "발에도 굳은 살이 가득하다"며 웃었고, 손 대표는 "발도 좀 보자"며 넉살을 부렸다. 서현역과 연결된 대형쇼핑몰에 쇼핑을 나온 아주머니들에게는 "분당 살기 좋죠, 공기도 좋고"라며 말을 걸기도 했다.

 

손 대표의 '종횡무진' 선거운동은 젊은 층들의 관심을 끄는 모습이었다. 한 30대 여성은 손 대표를 발견하고는 먼저 다가가 악수를 나눴다. 그는 인터뷰는 극구 사양하면서도 "정말 만나고 싶었다, 너무 반갑다"며 호감을 숨기지 않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손 대표의 유세를 지켜보며 사진을 찍은 김현철(31)씨는 "작년에 결혼했는데 이 정부는 애를 키울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아 걱정"이라며 "분당에서 바람이 시작돼 내년 선거에도 (야권에)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현역 앞에서 PC방을 운영한다는 김씨는 "PC방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은 대학생인데 등록금 때문에 정부를 욕하더라"라며 "이런 반감 때문에 민주당 쪽으로 젊은층의 표가 많이 넘어왔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길거리 민심은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여론조사기관 코리아리서치(KRC)가 분당 지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30대에서 손 대표는 72.6%,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는 9.8%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젊은층의 호응은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 민심을 반영한다"며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흐름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노년층에게 먹히는 '철새론', 젊은층은 '새 바람' 기대

 

60대 이상의 노년층에게는 취약하다는 평을 듣는 손 대표지만, 서현역 부근 민심은 조금 달랐다. 손 대표의 보좌진이 나눠준 명함을 한참 들여다 본 손아무개(68)씨는 "그동안 분당은 너무 한나라당만 뽑아서 이 지역을 너무 만만하게 본다"며 "이 기회에 바람을 일으켜서 한나라당이 충격을 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와 악수를 나눈 최아무개(63)씨는 "주변에서는 손 대표가 당적을 옮겼다고 못 마땅하게 생각하지만 난 손 대표가 인물 자체는 괜찮고, 지금은 새로운 바람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 손 대표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노년층은 손 대표의 한나라당 탈당 전력에 부정적이었다. 특히, 고급 주상복합 건물과 중대형 아파트가 즐비한 분당 정자동 노년층의 민심은 뚜렷한 '반 민주당'이었다. 정자동 분당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천영태(75)씨는 "강 후보는 여기 사람이지만 손학규는 철새로 갑자기 나타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개포동에서 살다가 정자동으로 이사 온 지 15년째 됐다는 이아무개(65)씨 역시 "손학규는 분당에서 살지도 않다가 여기 와서 대선에 나가도 될지 테스트를 하고 있다"며 "지역 사업을 돌봐야지 정치적 야망으로 계산속을 차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손 대표의 '중산층' 공략, 먹힐까?

 

이 같은 노년층의 반대 기류를 넘어서기 위해 손 대표는 중산층의 개혁마인드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손 대표는 "분당은 대표적인 중산층 도시로서 변화를 선도할 뿐 아니라 양극화 사회의 통합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분당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분당 시민들에게 '개혁 코드'가 먹힐지는 미지수다. 동네 친구와 함께 복지관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이아무개(67)씨는 선거 얘기를 꺼내자 "이재명 성남시장이 싫어서 민주당이 싫다"며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 선언을 왜 하냐, 분당은 그렇게 돈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이 시장이 판교특별회계 전입금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게 성남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이 같은 부정적인 기류를 넘어서기 위해 개혁진보성향의 30~40대 유권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보선의 낮은 투표율을 감안하면 이들 젊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게 가장 큰 변수다. 손 대표는 이들의 투표참여율을 높여 줄 '바람'을 기대하고 있다. 중산층의 변화 욕구를 정권심판 바람으로 키워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태그:#강재섭, #손학규, #분당을,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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